2016년 ‘동주’로 각종 신인상을 휩쓸며 '차세대 연기 신(神)'으로 시네필들의 마음속에 폭 들어온 배우 박정민(31)이 2018년에도 열일을 예고했다. 올해 첫 활동으로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감독 최성현)을 선택했다.

17일 개봉한 ‘그것만이 내 세상’은 퇴물 복서 조하(이병헌)가 서번트 증후군에 피아노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동생 진태와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박정민은 서번트증후군을 갖고 있지만 피아노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남자 진태 역을 맡았다.

“저보다 앞서서 서번트증후군을 연기했던 선배님들이 많으셨어요. 대표적으로 조승우 선배님이 하셨던 ‘말아톤’이 있었죠. 너무 연기를 잘하셔서, 저도 참 좋아하는 영화예요. 극장에서 몇 번이나 봤던 기억이 있어요. 워낙 선배님이 잘 해주셨다보니까 비교가 부담스럽지 않느냐고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사실 제 몫을 해내기에도 바빠서 부담을 느낄 시간도 없었어요.(웃음)”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연기만으로도 조심스러운데 대역이나 CG 없이 피아노 연주를 해야 했던 점도 쉽지 않았다. 관객들은 그의 연주에 감동을 느꼈지만, 정작 박정민 본인은 “피아노를 칠 때 몸짓이나 시선 등도 고민해야 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피아노 연주신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라서 더 신경이 쓰였어요. 영화에서 편집 된 것까지 합쳐서 총 9곡을 연기했어요. 사실 제가 악보도 못보고, 도랑 레가 어떤 건반인지도 모를 만큼 ‘피알못(피아노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죠. 어릴 때 피아노 좀 배워둘 걸 그랬어요. 그래서 위치를 외워서 한 부분씩 연습했어요. 6개월을 매일이요. 물론 완곡은 못해요.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원곡은 40분이더라고요. 저는 알짜배기만 편집해서 4분만 할 줄 알아요.(웃음)”

보통 영화에서 어려운 연주를 연기해야할 때는 CG나 대역을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유독 이번 작품에서는 최성현 감독부터 박정민 본인도 직접 연주를 고민했다고 한다. 특히 ‘피알못’인 박정민이 그런 고집을 피웠다는 게 의아했다.

“처음 감독님과 미팅을 가졌을 때, 하필 ‘라라랜드’가 개봉했어요.(웃음) 라이언 고슬링이 피아노를 그렇게 쳐버리니까. 감독님도, 저도 ‘직접 해야한다’는 이상한 고집(?)이 생겼어요. 그리고 저는 피아노를 만져본 적도 없어서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 몰랐죠. 정말 피나는 연습을 했죠. 그런데 CG로 하는 것보다 실제로 하는 게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좋은 것 같아서 만족해요.”

  

이번 ‘그것만이 내 세상’은 충무로에서 내로라하는 연기 고수들이 총출동한다. 배우 이병헌이 진태의 형 조하 역으로 등장하고, 형제의 엄마로는 노배우 윤여정이 나섰다. 말 그대로 하늘같은 선배들과 함께하는 촬영이 부담스러웠을 법 하지만 그는 “그저 좋았다”는 소감을 전했다.

“처음에 이병헌 선배가 이 작품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왜?’ 싶었어요. 이렇게 소소한 드라마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스타의 이미지시니까요. 그런데 실제로는 아주 이상적인 선배셨어요. 저를 어린 후배로 보시지 않고 동등한 동료로 대해주시는 느낌이었죠. 그래서 저도 더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용기가 생겼어요. 관객 분들이 좋아해 주시는 걸 보니 ‘우리가 참 재밌게 찍었구나’ 싶어요.” 

그리고 이어 박정민은 촬영 전, 윤여정과의 만남도 상기했다. “무서울 것 같았다”고 토로한 그는 대선배와 친해지는 비법을 살짝쿵 공개했다.

“윤(여정) 선생님은 제가 태어나기 한참 전부터 연기를 하셨으니까요. 조금 무서웠어요. 그런데 또 예쁨 받고 싶었지요. 고민을 하다가 처음 만나러 가는 자리에 선물을 샀어요. 향수집에 가서 ‘윤여정 선생님께 선물 드리려 한다’니까 성심성의껏 도와주시더라고요. 무척 좋아하시더라고요. 또 워낙 달변가셔서 말씀을 듣기만 했는데, 그걸 또 예쁘게 봐주신 것 같아요.”

 

어려운 역할을 치열하게, 또 즐겁게 촬영한 덕인지 이번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도 박정민에 대한 연기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차세대 연기 신"이라는 표현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만족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밝혔다.

“칭찬을 들으면 언제나 좋아요. 그럴 때일수록 제 자신을 다잡으려고 노력해요. 언젠가 실력이 들통날지도 모르잖아요.(웃음) 하지만 지금은 찾아주는 사람이 있고, 또 계속 일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해요. 그래도 완전히 인정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계속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지요.”

박정민에게 2017년 지난해는 평생을 통틀어 가장 바쁜 해였다. 그는 지난해를 돌아보면서 “중간중간 고비가 있었다”고 전했다. 그 덕에 올해 개봉을 앞둔 영화만 5편, 현재 작업 중인 영화만 2편이다. 팬들은 좋지만, 스스로는 휴식 없이 달려와 지칠 법했다.

“2017년엔 진짜 쉬는 날 없이 일만 했어요. 힘든 적도 많았죠. 그런데 황정민 선배가 ‘넌 지금 빠른 거다. 조급할 필요 없다. 쉬고 싶으면 쉬고, 재밌게 연기 해’라고 조언을 해주셨어요. 정말 가슴 깊이 다가오는 조언이었어요. 또 ‘변산’을 찍을 때 이준익 감독님께서 ‘혼자 짊어지지 말라’는 말씀도 참 힐링이 됐어요. 두 분이 아니었으면 진작 병원 신세 졌을 걸요?(웃음)”

 

2018년에도 열일을 예고한 박정민에게 ‘그것만이 내 세상’은 새해의 첫 발을 떼는 작품이다. 이를 관객들이 어떻게 봐주었으면 좋겠는지를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에선 영화에 대한, 관객에 대한 그의 애정이 묻어났다.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해 본 결과, 이 영화의 강점은 웃길 때 웃기고, 감동일 땐 감동인 것 같아요. 그런데 감동 포인트는 사람마다 제각각 다른 것 같아요. 아마 개인사에서 나오는 것인 것 같아요. 어떤 분은 병헌 선배가 전단지 나눠줄 때 울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영화의 감정이 일반적인 것 같아요. 뻔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두가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감정이란 뜻이겠죠.”

 

사진 지선미(라운드 테이블)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