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에 잡초

평일 오후 두 시.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홀로 산책을 한다. 공원에 꽃이 잔뜩 피어있다. 대학생 커플이라는 꽃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웃음꽃이 피어있다. 이 꽃들이 얼마나 만개했는지 한강 공원을 다 뒤엎고 있다.

공강인지 자체휴강인지,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에 이들은 왜 여의도 한강공원의 꽃이 되어 피어있을까. 밝은 옷차림과 그리고 그보다 더 밝은 얼굴로 봄의 생기를 내뿜는 그들. 그 사이에서 어두운 옷차림과 그보다 더 어두운 얼굴로 혼자 걷고 있는 나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다. 마치 화사한 꽃밭에 뜬금없이 박혀있는 잡초가 된 것 같다. 이 놈이 눈치도 없이 꽃밭에 박혀있네, 이러면서 모두가 뽑아버리고 싶어하는 그런 잡초.

그런데 억울한 생각이 든다. 잡초가 꽃밭에 있으면 안 되는 걸까? 왜 예쁜 꽃들만 모여있어야 하고 그들만 색을 뽐내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는 걸까? 원래 자연에서는 꽃이든 나무든 잡초든 모두 어울려서 사는 곳 아니었나.

잡초는 왜 이 꽃밭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면서 살게 된 걸까. 근데 이런 생각도 든다. 어쩌면 잡초는 뽑혀나간 것이 아니라 스스로 꽃밭에서 나간 것일 수도 있겠다고. 얼른 이 자리를 떠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걸음을 빠르게 한다.

 

군중 속의 고독

퇴근시간 신도림역. 1호선과 2호선이 만나는 곳. 나는 이 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치고, 스쳐 보내고, 기억 속에서 금방 지워버릴까. 이 사람들 중에서 내가 갑자기 말을 걸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같은 성별인 남자에게 말을 건다면 아마 관심을 보이지 않을 거다. 내가 여자가 아니니까. 그럼 여자에게 말을 건다면? 역시 호감으로 반응하진 않을 거다. 위험해 보이는 얼굴을 가진 낯선 남자를 당연히 경계할 테니까. 더구나 흉흉한 범죄뉴스를 하루 걸러서 접하게 되는 요즘엔 그 정도가 더 심할 거다.

그나마 얼굴이 잘생기거나 인상이 괜찮다면 모르겠지만 난 오히려 그 반대편에 서있는 남자다. 당연히 호감의 반응을 기대하기 어렵다. 성격이 유쾌하거나 재미있거나 사교적이지도 않다. 결국 다른 꿍꿍이 없이 순수하게 외로움에서 나온 마음으로 새로운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어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도림역에서 모르는 사람과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상상으로 시도해본다. 실천은 못한다. 나에게 돌아올 냉담한 반응을 상상하면 여전히 겁이 난다. 그냥 조용히 이어폰 꽂고 걸어가야겠다.

 

여의도역 사거리에서

그런 저녁이 있다. 피곤하긴 한데 괜히 집에 들어가기는 싫은 저녁. 이대로 하루를 끝낸다면 매우 안타까울 것 같은 저녁. 특히 다음날이 토요일이라면 그 안타까운 마음이 몇 배는 더 심하다.

어느 금요일 저녁, 알바를 끝내고 집에 돌아가던 중 여의도역 사거리에서 걸음을 멈추고 생각했다. 이대로 아무 일 없이 집에 들어가긴 싫다고. 봄날의 금요일 저녁을 이대로 빼앗길 수는 없다고. 그런데 특별한 약속도 없고, 누군가에게 연락하기에도 주저하게 된다.

그나마 나처럼 백수였던 친구를 자주 만났었는데, 그 친구도 얼마 전에 취업을 해서 이젠 만나자고 하기가 어려워졌다. 언제까지나 나와 함께 할 동지일 줄 알았지만 떠날 사람은 떠나야 했다. 질투하거나 시기하지는 않는다. 진정 축하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이젠 동병상련할 누군가가 없다는 것 때문에 외롭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새삼 깊이 생각하게 된다.

 

여의도역 버거킹 2층 창가에 앉아 여의도역 사거리를 내려다본다. 정장을 입은 직장인들이 퇴근을 하고 있다. 반바지를 입은 허름한 옷차림의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언제까지 이도 저도 아닌 삶을 살 수 있을까. 버거킹을 나와서 지하철 역으로 들어간다. 금요일 저녁이라고 뭐 별거 있나. 역시 그저 집에 갈 수밖에 없다. 누군가를 만나기엔 자신감이 없나 보다.

 

Epilogue: 빼앗기지 않은 것

나는 걸음이 빠르기도 하고 느리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같이 있다가도 금방 떠나간다. 이 사람과 계속 같이 걸어도 괜찮을지 확신이 서지 않고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도 내 걸음이나 걷고 있는 길에 대한 확신이 없고 자꾸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어두운 길을 혼자 걷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면 정말 외롭고 두렵다.

그래도 한때나마 옆에서 같이 걸어준 사람들이 고맙다. 그리고 내 발걸음에 맞춰주며 지금도 같이 걸어주고 있는 사람들이 고맙다. 걸음이 다소 느리고 불안하더라도 어쨌든 한발한발 걸어가고 있는 것은 이런 사람들 덕분이다. 기분이 나아졌다. 힘들었던 계절 봄이 때마침 끝나간다. 힘을 내서 다시 걸어야겠다.

 

백수감성 로드에세이

출처= http://magazinewoom.com/?p=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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