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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파, 울면서도 욕할 수밖에 없는 그 이름

얼마 전 ‘그것만이 내 세상’을 보고 왔습니다. 영화는 장단점이 확실했습니다. 별로라고 생각할 만한 지점도 있었지만 재밌게 볼 만한 여지도 충분한 영화였는데요. 극장 밖을 나서던 제 친구가 나지막이 한 마디를 외치더군요. “아놔 울어버렸어...” 영화를 보다가 울 수도 있는 건데, 그 친구는 울었다는 사실에 무척 자존심이 상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또 조용하게 그 이유를 덧붙였습니다. “신파 따위에 눈물을 낭비하다니...”.

  


최근 극장가에서 한국영화의 선전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신과함께-죄와 벌’이 14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역대 2위에 올랐고, ‘그것만이 내 세상’도 2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상대적으로 작은 영화임에도 관객들의 호응을 끌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개봉한 ‘염력’도 박스오피스 1위를 질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관객들이 선택한 영화임에도 댓글이나 관람객들의 반응은 꽤나 아이러니 합니다. “또 한국형 신파 등장했다” “눈물이 아깝다”는 평가들을 심심찮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신파라는 비난이 있는 작품들은 대개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어쩌면 신파적 속성은 상업영화가 영원히 가져가야 할 풀 수 없는 족쇄인지도 모릅니다. 보기 전엔 헛웃음을 치더라도 막상 보고 나면 눈가를 훔칠 수밖에 없는 게 가슴 아픈 신파인 것이지요.

엄정한 잣대를 가지고 바라봤을 때, ‘신과함께’나 ‘그것만이 내 세상’ ‘염력’은 소위 말하는 상업영화입니다. 이들은 또한 관객의 감정에 큰 파도를 치게 만들겠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는 ‘흥행공학적’ 작품입니다. 물론 그 공학적 고뇌는 오랜 시간 정량적 분석에 따라 고정된 시스템이기에 관객들의 감정을 쥐고 흔들어댑니다. 목적을 성취한 것이지요. 그러나 제 친구놈처럼 영화를 보면서 오열하다가도 끝나고 난 후엔 도대체 왜 본인이 울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신파 논란 없이 감동을 전했던 작품들이 있다는 점을 상기해봤을 때, 한국형 신파와 감동영화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똑같은 가족애를 다루면서도 ‘그것만이 내 세상’과 ‘염력’은 신파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는 신파가 아닌 이유는 무엇일까요. ‘신과함께’에서 자홍(차태현)과 수홍(김동욱)의 죽음은 신파라고 불리면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의 존 밀러 대위(톰 행크스)의 죽음은 왜 감동으로 다가오는 걸까요.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영화 스토리의 문제입니다. 신파라고 불리우는 작품들이 관객의 감정을 움직이면서도 비난을 받는 이유는 바로 극적 몰입에 실패한 까닭입니다. ‘신과함께’ 속 귀인 자홍의 지옥 재판기는 다소 억지로 보이고, 원귀의 폭주로 저승이 혼란해진다는 설정도 설명이 잘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서 주인공이 러닝타임 내내 이고진 슬픈 사연은 관객의 공감을 끌지 못하게 됩니다.

다만 영화는 스스로도 그 약점을 알고 있는 듯, 슬플 수밖에 없는 장면에 힘을 주며 감정을 이끌어내는 능력은 탁월합니다. 대표적으로 ‘신과함께’에선 어머니를 두고 죽은 아들이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남깁니다. “나 하늘나라에서 법관이 됐어”. 절대로 슬프지 않을 수 없는 한 마디지요. 이 한 마디로 아들이 어머니를 생각하는 애틋함이 전달됩니다. 이는 영화의 힘이라기보단, 관객들이 살아가면서 경험해온 감정들이 바탕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시퀀스 하나로 영화는 앞서 허술했던 스토리를 '퉁' 칩니다.

 


두 번째는 한국 관객들의 보편적인 공감대를 자극하는 방식입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슬플 수밖에 없는 모성애 혹은 부성애를 기본으로 깔아두는 건 기본이고, 최근에는 비극적인 사회 상황을 엮어서 관객들의 감정을 억지로 이끕니다. 마치 이 모습을 보고 울지 않는다면 나쁜 사람이 되는 듯한 찝찝함이 마음에 남습니다.

최근 극장가에 등장한 ‘염력’은 아버지 석헌(류승룡)이 딸 루미(심은경)를 구하기 위해, 부성애에서 비롯된 초능력을 발휘하는 데, 이는 꽤 노골적으로 비교적 가까운 역사인 용산참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택시운전사’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라는 비극적인 역사에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라는 대사에서 비롯되는 부성애 감정을 중첩시켜 영악하게 죄책감을 활용합니다.

그러나 이런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하고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는 건 이들의 핵심 코드인 가족애와 희생, 애틋함이 고스란히 가닿았다는 얘기이지요. 마냥 욕할 건 아닌 것도 같습니다. 어쩌면 N포 세대, 1인가구가 늘어나면서 각박해진 사회 속에서 감정을 느낄 겨를이 없는 요즘 관객들이 ‘감정만’ 넘치는 이 영화들을 통해 대리만족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간 각박하지 않은 삶 속에서 신파영화가 흥행에 고전하는(?) 그 날을 기대해봅니다.

 

 

에디터 신동혁  ziziyazizi@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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