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씨는 10여년 전 출산을 앞두고 3개월의 출산휴가 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법적으로 1년의 육아휴직이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었지만,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쓴 여직원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 번 신청해볼까요?”라고 A씨가 운을 떼자, 회사의 상사는 “괜히 남들 안 하는 말 하고 고생하지 말고 그냥 3개월만 쉬어”라고 충고해 주듯이 답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 뒤 타 부서의 남자 직원이 ‘용감하게’ 1년의 육아휴직을 냈습니다. 회사 사람들은 “남자 육아휴직이라니 웬말?”이라는 반응이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1년을 잘 쉬었습니다. 그 뒤로 남녀를 불문하고 육아휴직 1년을 내는 사람들이 더 생겼습니다.  

 

검찰 내부의 각종 폭로를 보면서 저의 후배이기도 한 여성 직장인 A씨가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요. ‘성추행’이라는 충격적인 소재가 아닐 뿐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인 것 같습니다.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 이후 곳곳에서 ‘미투’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방향도 여러 가지입니다. 또 다른 여성 검사인 임은정 검사는 이어서 자신이 당한 성추행 폭로는 물론 검찰 성폭력 진상조사단 단장 조희진 검사에 대해 불신임을 발표하는 등 계속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안미현 검사는 강원랜드 채용 비리 사건 수사에 대한 외압을 밝혀 시선을 집중시켰습니다. 

우연이 겹친 것인지 ‘여성’ 검사 3인이 검찰 내부 비리 폭로의 도화선이 되면서 일부에서는 ‘여자 대 남자’의 대결 구도로 이 문제들을 해석기도 합니다. 

 

서지현 임은정 안미현 검사[사진출처= JTBC, MBC, 페이스북 캡처]

“여성들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남성들 중심의 조직에서 참다 참다 결국 들고 일어났다”는 것인데,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들이 용기를 내서 목소리를 낸 것은 ‘여성이라서’이기보다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열정’ 때문으로 보입니다. 

일부에서는 ‘인사에 대한 불만 때문에 터뜨린 일’이라고 반론을 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메가톤급 폭로를 한 뒤 걸어가야 할 앞길이 과연 더 편할까요? 오히려 더 험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이 권력 지향적이어서 벼르고 벼르다 ‘인사 불만’을 터뜨렸다는 얘기는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권력 지향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십자가를 등에 질 만큼 순수해 보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A씨의 경험담은 성폭력에 대한 것도, 거대한 채용 비리 사건에 대한 것도 아닌 흔한 일화에 불과하지만, 왜인지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폭로 사건들과 함께 떠오릅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A씨는 “‘당연한 권리’이고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인데 왜 남들이 가만히 있는다는 이유로 말을 못했는지 모르겠다”며 “지금 같은 분위기였다면 나도 쉽게 말을 꺼냈을텐데…”라고 말했습니다. 

‘당연한 것’에 대해 입을 여는 용기는 오히려 몇 년 뒤 다른 남자 직원이 발휘했습니다. 그는 ‘내가 이렇게 해서 자식 세대 때는 사회가 더 나아지길 바란다’고 했고, A씨는 깊이 공감했다고 합니다. 

성추행에 대한 고백 이후 피해자가 더 고초를 겪고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는 지금까지도 너무 많았습니다. 당연히 가해자가 나쁘고 피해자는 잘못이 없는데도 그렇습니다. 여기서 피해자 대다수는 물론 여성이지만, 사건별로 보면 남녀 역전은 물론 동성끼리의 사건도 많습니다. 단순히 남녀간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이야기지요. 

이번에도 검찰 내부 비리 고발에 앞선 사람들이 혹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고, 남자들 중에서도 ‘미투’에 동참하는 이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A씨의 이야기에 등장한 남자 직원은 ‘미투’는 물론 사회 곳곳의 부당함에 적극 대응하는 요즘 남자들의 모습과 겹쳐집니다.

시시비비가 명확히 가려져야겠지만 여검사들이 ‘당연한 것’에 대해 용기있게 입을 연 것이 맞다면, 우리의 자식 세대 때는 좀 더 그러기가 쉬워지길 바랍니다. 물론 이런 폭로를 할 일이 아예 없다면 가장 이상적일 테고요.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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