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흥부: 글로 세상을 바꾼 자’(감독 조근현‧이하 ‘흥부’)는 정우(37) 본인에게 굉장히 의미가 남다른 작품이다. 첫 사극 도전이라는 점도 그렇지만, 지난해 10월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난 고(故) 김주혁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영화라는 점에서 형언할 수 없는 감상을 남기다.

  

찬바람에 조금씩 봄기운이 섞여 있는 늦겨울의 어느 날,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정우를 만났다. 그의 눈은 붉게 충혈돼 있었다. “영화를 어떻게 보았냐”는 질문에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다시 한 번 봐야할 것 같아요”라 조심스레 말을 잇는 그의 심정을 너무 커다랗게 느낄 수 있었다.

“제가 출연한 작품은 늘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해요. 그런데 그게 참 힘든 일이잖아요. 더구나 ‘흥부’는 더 객관적으로 보기 쉽지 않았죠. 촬영할 때의 기억이 뭉게뭉게 피어났어요. 스태프 분들, 배우 분과의 촬영 현장이 떠올랐지요. 모두가 공들여서 촬영하고 힘들었던 현장 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들면서 감회가 새로웠어요.”

정우는 ‘흥부’에서 일필휘지로 조선을 들썩이게 만드는 천재작가 흥부 역을 소화했다. 그동안 숱한 드라마와 영화를 만났던 그에게도 흥부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캐릭터인 흥부에 참신함을 더하기 위해 치열한 고민을 했다. 부담감이 컸지만, 정진영 김주혁 등의 명품 선배 배우들이 있었기에 연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부터 이야기가 낯설지 않고 친근했어요. 사실 ‘흥부전’이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토대로 하는데, 기존 흥부 이미지와 다른 이미지를 표현해야 해서 좋았어요. 그런데 타이틀부터 ‘흥부’ 잖아요. 사극은 처음이라 혼자서 영화를 끌어갈 자신이 없었는데, (김)주혁 선배님, 정진영 선배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OK를 했죠.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됐어요.”

 

정우는 촬영현장에서 딴짓(?)을 안하기로 유명하다. 그만큼 촬영에 집중하고, 본인의 역할을 고민한다는 의미다. 그만큼 역할에 몰입하는 그이기에, 이번 ‘흥부’는 더욱 힘들 수밖에 없었다. 익숙하지 않은 사극 톤, 깊이 있는 감정표현이 자꾸만 발목을 붙잡았다.

“해석이 어려운 캐릭터였어요. 사실 진짜 우리가 아는 흥부는 주혁 선배고, 저는 이름만 흥부잖아요. 그래서 상상을 하면서 만들다보니 고민이 길었죠. 또 흥부가 계속 소중한 사람을 하나씩 잃어버리잖아요. 그 감정의 깊이를 어떻게 채워야 하는가도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흥부’라는 게 특별한 영화잖아요. 그러다보니까 많은 분들이 응원을 해주시고, 기대를 해주시는 게 느껴졌어요. 그런 말씀을 많이 듣다보니까 부담이 아니라 힘이 되더군요. 그 기운이 흥행으로도 이어지면 좋겠네요.(웃음)”

최근 정우는 출연하는 작품마다 흥행에 성공했다. 2013년 방송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시작으로 영화 ‘히말라야’(2015), ‘재심’(2017)까지 흥행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냈다. 그래서 차기작이 더욱 부담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선택에 대한 고민은 언제나 늘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고민하는 것만큼 내실이 없어요.(웃음) 전체적인 플랜을 짜고 착착 움직일 정도의 머리는 없는 사람이라서요. ‘흥부’를 들어갈 때는 정말 선배님들만 보고 선택했어요. 정말 제겐 중요한 분들이지요. 저보다 안목이 좋은 분들이 선택했다는 건 이유가 있는 거예요. 다만 저는 제 몫만 해내면 되는 거죠.”

 

인터뷰를 이어가면서, 정우는 내내 조심스러웠다. 과거 인터뷰 자리에서 만났을 때와는 사뭇 다른 그의 모습에 조금은 머쓱했다. 정우는 “제가 어떤 발언을 하고 이슈가 되는 것보다, 주혁 선배를 더 많이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라는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그에게서 조금 더 고 김주혁에 대한 추억을 들어봤다.

“많은 응원을 받았다는 게 가장 기억나요. 참 배려심이 깊은 분이셨죠. 배우들은 카메라 앞에 서면 참 외로울 때가 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김주혁 선배하고 서면 든든했죠. 스토리 안에서 흥부와 조혁(김주혁)이 피로 맺어진 형제는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흥부가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면서 형제 이상의 감정을 가져요. 딱 저희와 비슷하죠. 시나리오 이상으로 많은 것이 느껴졌던 것 같아요.”

정우는 극중 “늘 꿈을 꾸라”고 말하는 조혁의 대사가 가장 감명 깊었다고 말했다. 마치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아 현실인지 영화인지 헷갈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 얘기를 듣고 스스로의 꿈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고 전했다.

“예전에는 주변 분들에게 참 많이 물어봤던 것 같아요. ‘넌 꿈이 뭐니?’ 그런데 누구도 선뜻 답을 못하더라고요. 꿈이라는 건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어릴 적 꿈은 배우였는데, 그 꿈은 이뤘잖아요. 이제 또 다른 꿈을 꿔야할 것 같아요. 요즘 ‘좋은 배우가 무엇일까’ 스스로 고민하고 있는데요. 그런 걸 고민하고 있는 걸보니, 제 꿈은 ‘좋은 배우’인 것 같네요.(웃음)”

  

좋은 배우라는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정우에게 ‘흥부’는 어떻게 기억이 될까 문득 궁금해졌다. 마지막 질문으로 그에게 “‘흥부’가 앞으로 어떤 의미로 남을지”를 물었다. 마지막 대답도 신중했다.

“매 작품 소중하죠. 그런데 ‘흥부’는 유독 더 크게 남을 것 같아요. 정말 좋은 배우와 함께 했기 때문이죠. 주혁 선배는 제가 꿈꾸는 좋은 배우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신 분이에요. 그래서 ‘흥부’를 떠올리면 선배님의 이름이 제 가슴에 가장 크게 떠오를 것 같아요. 좀 밝고 재밌는 대답을 해드리고 싶은데, 제 솔직한 마음이 그렇습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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