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와 시대극, 섬세한 연출

원작 소설 ‘핑거스미스’의 팬 입장에서 ‘주인공들이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근거로 ‘아가씨’를 만들었다. 이 희망에 다양한 의미를 담기 위해서 유독 대사도 많이 사용했고, 처음으로 시대극을 도전했다. 여러모로 많은 바람과 욕심이 담긴 작품이다. 그 동안 해보고 싶던 것들을 원 없이 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지금까지는 과묵한 영화를 주로 찍었죠. 그래서 한 번쯤은 대사가 많은 영화를 해보고 싶었어요. 생생하고 적나라한 표현보다도 문학성이 가미된 대사로요. 중의적이고, 역겨운 내용을 점잔빼며 표현하죠. 일상적인 곳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대사라서 시대적 배경을 1930년대로 잡았어요. 한국 전통 요소와 일본, 서양이 어거지로 섞여있는 시대니까요. 시각적으로 굉장히 흥미롭죠. 이 룩(Look)은 새로운 스타일의 차원을 넘어서 식민지 시대 상류계급 사람들의 내면 풍경인거에요. 아름다워 보이지만 삐뚤어지고, 어그러지고... 영화 속 모든 장치가 그걸 표현하고 있어요.”

 

 

동성애? 보편적 사랑!

흔히 동성애를 그린 영화에서 ‘남자 역할’과 ‘여자 역할’을 나누려는 시도를 한다. 하지만 사랑이란 감정에서 굳이 성역할을 구별하고 싶지는 않다.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게 꼭 남성적인 건가?’를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저는 동성애를 그렸을 때 ‘같은 성인데 좋아해도 될까?’ 이런 가치관 고민이 없는, 그런 투쟁조차 없는 영화를 보고 싶었어요. 아가씨를 담담히 챙겨주는 모습에선 하녀가 남자 같다고 느낄 수도 있고, 또 마지막에 남장을 하는 아가씨의 모습에선 느낌이 또 바뀌죠. 역할을 구별하기 힘들다는 단선적인 의미를 넘어서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이 존재하는 가’를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아끼는 장면

대화를 나누면서 ‘아가씨’를 아끼는 그의 마음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정성과 깊은 고민이 짙게 묻은 영화였다. 모든 신이 다 기억에 남겠지만 그래도 혹시 가장 아끼는 장면이 있는지 물었다.

“원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하녀가 아가씨의 이를 갈아주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을 아주 작은 소리와 솜털까지 보일 것 같은 가까운 시선 맞춤, 채취까지 여러 감각으로도 느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원작과 달리 목욕신으로 처리했죠. 영화가 후각을 느낄 수 없는 매체지만 그래도 욕탕 특유의 향을 자극하고 싶었어요. 물 찰랑이는 소리까지. 생각한대로 잘 나온 것 같아요.”

 

 

김민희와 김태리 여배우 앙상블

1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 된 김태리와 능숙한 김민희의 조합은 꽤 신선하다. 처음 작품을 구상했을 때부터 그려왔던 이미지에 꽤 잘 부합하는 배우들이다. 캐스팅에 대한 만족은 100%다.

“아가씨 히데코를 상상했을 때는 ‘하얀 고양이’ 같은 이미지를 그렸어요. 김민희양은 그에 가까운 이미지를 가졌죠. 1부의 연약한 인물에서, 2부는 굉장히 잔인한 구석이 있는 양면적 캐릭터인데 한꺼번에 표현을 잘 해줬어요. 태리양은 오디션 때 딱 감이 왔어요. 눈치 보지 않고, 예뻐 보이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잘하려고 애쓰지도 않고... 담담히 있는 그대로 자기를 표출하는 태도가 맘에 들었죠. 절대 그 태도가 건방져 보이질 않았어요. ‘올드보이’ 때 강혜정씨를 만났을 때처럼 제 감각이 선택한 배우인 거죠. 선택은 옳았습니다.(웃음)”

 

 

깐느박이 바라본 영화 속 깐느박

최근 개봉한 ‘대배우’에서 깐느박 역으로 출연한 이경영이 박찬욱 감독과 높은 싱크로율을 선보이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혹시나 자신이 조금은 희화화 됐다는 사실이 거북하지는 않은지 조심스레 물었다.

“제가 영화 연출부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경영이 형이 조연으로 출연했었어요. 그때부터 이미지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웃음) 그때 인연이 돼 같이 영화도 작업하고 그랬었죠. 그 정도 흉내 내는 건 괜찮아요. 재밌지 않나요?”

 

 

 

 

사진=권대홍(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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