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매시간을 치열하게 보내는 게 미덕인 시대다. 태어나 말을 배우고 나면 입시 전쟁을 치러야 하고, 대학 졸업 후엔 취직에 매달려야 한다. 그 후엔 승진, 연봉 상승, 내 집 마련, 결혼, 출산 등의 과제가 차례로 허들처럼 서 있다. 이 중 한 가지 과제라도 실패하면 우리는 결승선을 통과할 수 없다.

 

 

작가 한재원(27)씨는 애초에 그 허들을 '왜' 넘어야 하는지에 질문을 던진다. 28일 발행한 에세이집 '괜찮은 척은 그만두겠습니다'에서 그는 자신의 개인적 일상을 통해 20대 청춘과, 더 나아가 한국 사회에 지친 모든 이들을 대변한다. 한재원씨는 현시대 20대에게 가장 필요한 것으로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꼽았다.

"그 생각이 뭐든, 나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온전한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교 들어가고, 취업하고 그다음까지의 삶이 되게 빠르잖아요. 아직 미성숙한 나이인데 말이에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할 시간이 없어요. 또, 'TMI'라는 말이 유행이듯, 너무 많은 정보에 노출된 경우가 많아요.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주체적으로 살려 해도 그런 것들에 의해서 내 선택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죠."

누구나 여유로워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쉬고 있으면 나만 도태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우리를 여유로부터 추방하는 것이다. 한재원씨도 이에 동의했다.

"불안해도 끝까지 가야 해요. 저는 그런 시간 없이 계속 쭉 살다가 큰 무기력이 왔거든요. 나는 뭘 한다고 이렇게 열심히 살았지 싶더라고요. 번아웃 증후군이었죠. 우울증도 있었어요. 지금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게 용할 정도예요. 그전까진 매사에 긍정적이고 발랄했어요. 네이버 포스트에 연재를 시작하고 글을 쓰는 과정이 치료가 되기도 했어요. 어느 순간 재발하긴 했지만요."

 

 

한성대 행정학과를 나온 그는 대학생 시절 욕심쟁이였다. 본 전공은 행정학이었지만, 복수전공으로 국문학과 연계전공으로 컨설팅학도 이수했다. 행정학으로는 일반사회 교직이수도 받아 교생 실습도 나갔다. 그 와중에 학보사 편집국장과, 네이버 포스트 에디터로도 활동했다. 누가 봐도 대학 생활을 알차게 보냈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한씨는 포스트로 인기를 끌어 네이버에서 '20pick' 에디터로 선정되기도 했다. 당시 연재하던 시리즈 '그러니까, 나는'은 '괜찮은 척은 그만두겠습니다' 출판으로 이어졌다.

"전 원래는 느슨하고 게으른 사람이에요. 부지런함과는 거리가 멀죠. 대학생 땐, 삼수를 하고 나니 조급함이 생겼던 것 같아요. 평소에는 자거나 빈둥거리면서 시간을 보내요. 생각을 정말 많이 해요. 자면서도 생각할 정도예요.(웃음) 될 수 있는 한 오래 누워 있어요. 지금은 쉬고 있지만, 요가도 했었어요. 잡다한 생각을 떨치고, 온전히 내 몸에만 집중하게 되죠. 생각을 하려고 해도 너무 힘들어서 할 수가 없어요."

2017년 키워드 중 하나는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현재의 삶을 즐기는 삶의 태도, '욜로'였다. 일각에서는 욜로의 유행은 '욜로'하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반증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기존의 삶에서 벗어나고는 싶지만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고, 스스로 생각할 시간도 없고, 그런 와중에 욜로라는 생각이 태어난 건 아닐까 해요. 남들이 말하는 삶이나, '엄친아' '엄친딸'과 거리가 먼 삶을 지향해도 된다는 신호탄이라고 보거든요. 이미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고요."

②편으로 이어짐.

 

사진 지중근(라운드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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