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 2021’에서 한국인 최초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인의 귀를 사로잡은 바리톤 김기훈이 국내 팬들을 위한 무대를 준비한다. 세계의 심사위원들을 울고 웃게한 그가 이번엔 코로나19 팬데믹 속에 지친 관객들에게 위로의 목소리를 전한다.

김기훈은 지난 6월 19일(현지시간) 영국 카디프에서 열린 ‘BBC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 2021’에서 한국 성악가 최초로 아리아 부문인 ‘메인 프라이즈'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인 최초라는 타이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늘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던 꿈의 무대에서 차지한 우승이라 더욱 뜻깊었다.

이번 콩쿠르에서 김기훈은 코른골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 중 ‘나의 갈망이여, 나의 망상이여(Mein Sehnen, mein Wähnen)’, 로시니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중 ‘나는 이 거리의 만능일꾼(Largo al factotum della città)’ 등을 선보였다. '월드클래스'라는 극찬과 더불어 심사위원들의 눈물을 이끌어내기까지 했다. 

"'카디프 싱어' 무대에 서보는게 하나의 소원이었어요. 그걸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루게 되니까 감회가 남다르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보고 싶었어요. 한국인 최초라는 타이틀도 따보고 싶었고요. 여러가지 의미가 있죠"

이번 '카디프 싱어'는 꿈꾸던 무대에서의 우승이라는 것도 있었지만 2019년 '차이코프스키 국제콩쿠르'와 '오페랄리아 국제 성악 콩쿠르'에서 연이어 2위를 차지했던 아쉬움도 털어낼 수 있는 전환점이 됐다.

"사실 앞선 콩쿠르들에서 2등 했을 때 별로 기분이 안 좋았죠. 당시 극장 관계자들이 왜 제가 1등 아니냐고 항의하기도 했어요. 또 관객분들이 1등 한 친구한테 야유하기도 해서 민망하기도 했고요. '오페랄리아'에서는 2등을 했지만 청중상을 받았어요. 청중들이 1등으로 기억해주신거니까 거기서 만족할 수 있었죠"

고등학교 3학년 시절,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하던 그는 우연히 참석한 세미나의 한 강사로부터 성악을 권유받았고 '세계적인 성악가가 될 자질이 있다'는 말을 들으며 본격적인 성악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김기훈은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수석 졸업 및 독일 하노버 음대 석사를 만장일치 만점으로 졸업했다. 2016년 서울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하며 본격적으로 수상행렬을 시작했다. 평소 목관리를 하거나 많은 시간을 연습에 투자하지도 않는다는 김기훈. 그의 이런 행보를 보면 타고난 재능 덕에 최고의 자리에 오른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정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군에서 성대결절의 아픔을 겪으면서 노래를 그만둬야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목을 아끼면서도 매 순간 이미지트레이닝으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는 어떤 순간에도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게 노래다"라며 마음을 다잡고 정진할 수 있었다. 

"진지하게 노래 이외의 것을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이게 제 전부라고 생각해요. 가장 잘하는걸 하고 싶었어요. 또 가장 좋아하는게 노래이기도 하고요. 관객들과 소통하는 것도 좋아요. 노래하면서 관객들과 눈 마주치고 끝나면 박수받을 때가 가장 좋아요. 제가 준 에너지를 다시 돌려받을 때. 그때 엄청난 힘을 얻죠. 거기서 감동을 받아요. 그게 음악하는 원동력이죠"

개인적으로는 남성적이고 영웅적인 곡들을 좋아한다는 김기훈. 그는 오는 9월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갖는다. 차이코프스키 '예브게니 옥네긴', 베르디 '가면무도회',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 등 그동안 김기훈이 선보여온 곡들을 모아 선보일 전망이다.

든든한 지원군도 얻었다. 소프라노 서선영과 테너 강요셉이 스페셜 게스트로 참여한다. 베르디의 '가면무도회', 차이코프스키 '예브게니 오네긴' 등을 통해 드라마틱한 무대를 선사할 예정이다. 김기훈은 "절 정말 많이 아껴주세요. 순수하게 제가 잘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조건 없이 도와주시기로 하셨죠. 지금도 실감이 안나고 너무 기뻐요"라며 두 사람의 참여에 감사를 전했다.

이번 공연 이후 김기훈은 영국, 독일, 미국, 러시아 등 해외 주요 극장에서의 활동을 앞두고 있다. "소프라노 하면 조수미 선생님 생각 나듯이 바리톤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김기훈. 이제 갓 30대에 들어선 젊은 바리톤의 앞날에 기대가 모이는건 당연해보인다.

"자만하거나 현상유지하려는 생각은 없어요. 항상 미래를 향해서 노력하는 바리톤이고 싶어요. 거시적으로 큰 꿈을 그리되 눈 앞의 현실적인 목표부터 하나씩 해나가고 싶어요. 정말 잘하는 바리톤 될래요"

사진=아트앤아티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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