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통영지청 검사의 폭로로 시작된 미투 운동이 정치권으로 옮겨 붙었습니다. 차기 대권주자로 꼽혔던 안희정(53) 전 충남지사의 비서 성폭행이 알려졌고,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정봉주(58) 전 의원의 성추행 폭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사진=연합뉴스

두 사람은 민주주의를 위해 청춘을 불살랐던 386세대(1990~2000년대 초반 당시 30대였던 80년대 학번, 1960년대생) 학생운동권 출신입니다. ‘노무현의 오른팔’ ‘MB 저격수’란 별칭을 얻으며 치열하게 활동했고 옥고까지 치렀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치적 동지’ ‘공동 창업자’라고 언급했던 386 운동권 출신들은 참여정부 시절 국정의 중심축으로 활동했습니다. ‘반독재 민주화’ DNA를 장착한 이들은 기성 정치인들의 구태에서 벗어난 면모로 신선한 자극을 주기도 했으나 점차 기득권 세력화, 아마추어리즘 비판을 사며 빛과 그림자를 뚜렷히 남겼습니다.

이후 안희정은 중앙 정치무대를 떠나 충남도지사 연임에 성공하며 풍부한 행정실무 감각을 쌓는 동시에 지방분권 가치구현, 보수층으로의 외연확장 성과를 올리며 차세대 정치리더로 존재감을 키웠습니다. 10년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한 정봉주는 정치팬클럽 운영, 팟캐스트·방송출연, 강연을 정력적으로 펼치며 훗날을 준비해 왔고 지난해 말 특별사면으로 날개를 달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정치인으로서 화양연화를 앞둔 시기에 ‘미투 운동’ 쓰나미에 휩쓸려버린 모습입니다. 공교롭게 9일 안희정은 검찰에 자진출두해 포토라인에 섰고, 정봉주는 성추행 반박 보도자료를 발표했습니다. 각각 현직 정무비서, 현직 기자에 의한 폭로 이후 충격, 실망, 분노 등 복잡한 감정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기에 다행히(?) 다소 담담해진 마음으로 이를 지켜봤는데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의아함이 꼬리를 뭅니다.

말쑥한 정장 대신 롱패딩을 입은 채 나온 안희정은 몰려든 취재진 앞에서 “국민 여러분”이라고 외치더니만 “잘못했습니다. 저로 인해 상처 입으셨을 많은 국민 여러분들께 또 도민 여러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 올립니다. 제 아내와 아이들 가족들에게도 너무 미안합니다. 앞으로 검찰 조사에서 성실히 조사를 받겠습니다. 국민께서 주셨던 많은 사랑과 격려 감사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자신으로 상처 입은 첫 번째 인물은 피해자임에도 그는 국민과 도민을 앞세웠습니다. “많은 사랑과 격려 감사하다”는 말에선 유세에 나선 정치인이 포개졌고, “가족에게 미안하다” 대목에선 피해자 가족의 상처는 눈에 밟히지도 않나,란 생각이 들더군요. 향후 법리다툼을 벌이기 위해 책잡힐 말은 하지 않겠다는 계산, 감성적 호소는 단박에 읽혀지는 반면 성범죄 피의자로써 깊은 죄책감은 별반 느껴지질 않았습니다.

정봉주는 2011년 12월23일 여의도 모 호텔 로비 레스토랑 룸에서 일어난 성추행 폭로에 당일 시간대별 알리바이를 열거하며 “성추행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해명이 늦어진 이유와 더불어 미투 운동 지원, 향후 신중한 처신 약속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기자 지망생이었던 폭로자 A씨를 알고 지냈는지 일면식도 없는 관계인지, 23일이 아닌 다른 날 A씨와의 사이에서 부적절한 언행을 하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는지에 대한 해명은 없었습니다. 당일 행적만을 조목조목 나열하다보니, 의혹은 쉬 가라앉질 않습니다. 물론 즉각 피해자 A씨의 반박문이 공개됐습니다.

‘충남도지사’ 안희정이 성폭행 이후 피해자에게 한 “잊어라” “괘념치 마라”란 말투는 섬뜩합니다. 절대 권력을 지닌 사이비종교 교주가 떠올라서입니다. 피해자와 그의 지인이 증언한 ‘봉도사’ 정봉주의 발언도 사실 확인이 필요하나, 믿기지 않을 만큼 낯부끄러운 내용입니다.

법과 정의, 민주주의를 말해왔던 이들이 자신의 직업에 대해 그리고 자신에 대해 성찰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대의라는 미명과 권력에 도취돼 정작 도덕성과 책임감은 마취된 행동은 하지 않았나 돌아보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50대가 돼 어느 집단의 거장, 거물, 리더 소리를 듣고 있는 386세대 모두의 과제이기도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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