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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와이프] 예능이 되어선 안될 '미투'

영화 ‘살인의 추억’에는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냐?”라는 명대사가 나옵니다. 요즘은 세상에 대놓고 이렇게 물어보고 싶을 만큼 어디를 가도 ‘미투’ 이야기입니다. 

정치권으로 번져간 ‘미투’ 덕에 정봉주 전 의원을 놓고 “절대 아니다”라는 본인의 입장과 “맞다”는 언론사 기자 측의 폭로가 첨예하게 대립 중이고, 성폭행 폭로의 대상이 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습니다. 연극연출가 이윤택, 김기덕 감독 등 각종 의혹에 휩싸인 여러 유명인들에 대해서도 앞으로 경찰 조사가 예정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앞으로 진행될 조사의 결과보다는 당장 드러난 충격적인 내용들에 치를 떠는 데만 집중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가해자 의혹을 받고 있는 이들이 내놓는 입장과, 피해자들이 주장하는 다양한 방식의 성폭행, 성추행의 구체적인 면면을 비교하고 분노하며 욕하고 SNS를 통해 퍼뜨리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메신저 서비스를 통해 전파되는 이른바 ‘찌라시’부터 각종 댓글까지 수단은 다양합니다. 

특히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심하게 ‘못된 짓’을 했는지 모두 관심이 많습니다. ‘성’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다루고 있는 데다, 그게 가장 쉬운 관심의 방식이기 때문이겠지요. 

이러한 ‘쉬운 방식의 관심’ 끝에 배우 조민기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가 이런 선택을 함으로써 수많은 의혹의 진위는 밝혀지지 않았고, 피해자들 또한 피해를 당하고도 평생 찜찜한 느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게 됐습니다. 

그런 가운데 조민기의 빈소에 조문을 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논쟁이 벌어지고 있고, SNS를 통해 추모의 뜻을 밝히는 것은 또 잘 하는 일인지 아닌지를 놓고도 설왕설래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크게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은 이런 이슈들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약간의 관심과 함께 지켜보는 중입니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조금이라도 있는, 이를테면 ‘미투’에 동참할 만한 과거의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미투’의 정신에 반하는 문제들이 계속 불거져 나오는 것이 과연 달가울지 모르겠습니다. 

‘미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발생한 문제를 철저히 조사해 재발을 방지하고 가해자에게 죄값을 치르게 하는 것뿐이 아닙니다.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평범한 사람들 또한 그 취지에 공감하고 함께 분노하며 동참하도록 이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함께 분노하고 동참’하기보다는 주말 저녁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출연자들을 논평하는 것처럼 가벼운 관심으로 시시각각 터지는 사건들을 본다면 ‘미투’는 그저 흥미거리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투’ 덕분에 이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자신이 당한 부당한 처사를 좀 더 쉽게 고백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습니다. 그럼에도 유명인이 아닌 가해자들이 대부분인 일반 직장 내에서의 성 추문이 사실 가장 해결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기도, 법적인 절차를 밟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잡기 쉬운 선정적인 내용들만을 훑어보고 그에 대한 논평에 열중하기보다는 나와 내 주변을 둘러싼 환경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떤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는지, 혹시 갖춰져 있는 제도에 미비한 점이나 사각지대는 없는지를 살펴보는 실질적인 움직임이 필요해 보입니다.

‘강간의 왕국’은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가벼운 흥미를 가지고는 해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에디터 이예은  yeeuney@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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