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 땅투기 의혹이 불거지자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25일 국회의원 및 대선 경선 후보 사퇴 기자회견을 열었다. 염치와 상식의 ‘윤희숙식 정치’를 강조했다. 보수·경제지를 중심으로 “정치의 품격” “신선한 결단”과 같은 상찬이 쏟아졌다.

하지만 80세 부친이 세종 농지를 구입한 2016년 당시 국책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실시하는 세종시 소재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윤 의원이 근무했고, 제부가 최경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의 보좌관이었다는 점 등 추가 의혹이 잇따르자 27일 해명 기자회견을 마련했다.

윤 의원은 이날 “저희 아버님에게 농지법과 주민등록법 위반 의혹이 있으며 투기 의혹으로 비칠 여지가 있다는 점을 변명하지 않는다. 아버님은 성실히 조사를 받고 그 결과에 따라 적법한 책임을 지실 것”이라고 했다. 이틀 전 “아버지가 농사 목적으로 땅을 구입했고, 위법한 일을 하지 않으셨을 것이라 믿는다”던 것과 달리 부친의 부동산 거래에 투기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윤 의원의 부친 인터뷰 내용만 보더라도 농지법 위반과 주민등록법 위반, 헌법상 경자유전의 원칙 위배 등으로 경찰수사를 받아야 할 입장이다. 이럴 경우 대부분 고개를 숙인 채 “국민께 송구하다” “성실히 (관련)조사를 받겠다”고 갈음하는 게 염치와 상식이다. 뻔해보일 지라도 주권자에 대한 기본 예의다.

그런데 반전이다. 자신의 투기 연루 의혹을 제기한 여당 의원들을 향해 “조사에서 어떤 혐의도 없다고 밝혀지면 의원직을 사퇴하라”고 역공하고 분노했다. 권익위 조사 결과와 언론 보도 등을 토대로 상식에 준해 합리적 의혹 제기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야, 보수·진보와 무관하게 해야 할 소임이다. 재판에서 패소한다고 공소를 제기한 검사가 사퇴하는 일도 없다.

윤 의원은 여당 정치인 10여 명과 방송인 김어준의 실명을 거론하며 “평생 공작정치나 일삼으며 입으로만 개혁을 부르짖는 정치모리배들”이란 원색적 비난을 쏟아냈다. 특히 이재명 캠프 소속 의원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꼭대기에는 이재명 대선 경선 후보가 있을 것이라 지목한 뒤 ‘이재명 사퇴’까지 밀어붙였다.

이틀 전 권익위 조사를 “야당 의원의 평판을 흠집 내려는 끼워맞추기 조사”라고 공격한 데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본인 동의와 소속 정당의 요청에 따라 국가기관이 진행한 조사 결과가 사실과 차이가 있고, 억울하다면 절차에 따라 소명하고, 수사를 통해 결백을 입증하면 그만이다. 이런 절차가 있음에도 덜컥 사퇴를 천명한 것도 자신을 뽑아준 지역구민(서초갑)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러기에 ‘사퇴쇼’ ‘피해자 코스프레’와 같이 의도를 의심하는 평가가 무성해지게 된 것이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이 권익위 조사를 받았고, 12명 의원이 의혹 판정을 받았다. 윤 의원은 이를 지켜봤고, 대상자들을 향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특히 모친의 농지법 위반혐의가 제기돼 제명된 양이원영 의원에게 ‘투기의 귀재’라고 쏘아붙인 당사자다. 이 정도면 ‘내로남불’이란 표현이 억지스럽지 않다.

자신과 가족을 둘러싼 의혹에 대한 해명과 반박을 넘어 분명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정치적 음모론’을 동원해 국가기관의 조사를 폄훼한다. 의혹을 제기하는 다른 당 의원들을 향해 데스노트를 날린다. 왜 윤 의원은 소속 당에서도 면죄부를 줘 요란하지 않게 마무리됐을 법한 이 사안을 정쟁화시켜 버렸을까. 자충수였을까 노림수였을까.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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