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보다 여성 캐릭터에 대한 갈망이 드높다. 관객들은 이제 극에서 소품으로만 존재하는 여성 캐릭터를 원하지 않는다. 때로는 우아하게, 때로는 잔인하게, 때로는 발랄하게 이야기 속에서 뛰어 다니는 그들을 조명한다. 극장가를 이끄는 여성 주인공들의 매력을 살펴본다.

 

◆ 청년공감 100%, 혜원 - '리틀 포레스트' 김태리

‘아가씨’ ‘1987’을 통해 영화계 핫 아이콘으로 떠오른 김태리가 ‘리틀 포레스트’로 커리어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 그는 20~30대 관객들이라면 공감할 법한 캐릭터 혜원으로 분했다. 순박한 듯 귀여운 모습은 ‘아가씨’ 속에서 보인 당찬 모습과는 상반돼 그녀의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실감케 한다.

극 중 혜원은 시험, 연애, 취업 무엇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도시 일상을 뒤로하고 시골 고향으로 돌아와 1년 4계절을 살아간다. 내 미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청년의 현실을 전유하는 혜원의 사연은 관객의 몰입을 이끌고, 그녀가 친구들과 펼치는 맛있는 음식은 그 어디서도 느끼지 못했던 힐링을 선사한다.
 

◆ 숭고한 결단력, 캐서린 - '더 포스트' 메릴 스트립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21번이나 연기상에 노미네이트 된 ‘명배우’ 메릴 스트립이 신작 ‘더 포스트’에서 워싱턴 포스트의 회장인 캐서린 그레이엄으로 변신했다. 70년대 당시 미국 사회에 만연했던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깨부수는 그의 열연이 빛난다.

캐서린 그레이엄은 1971년 미국 정부가 감춰온 베트남전의 비밀이 담긴 ‘펜타곤 페이퍼’의 보도를 두고 고뇌하는 인물이다. 아버지가 일궈온 회사가 하루아침에 망할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올바른 보도를 해야 한다는 언론인의 신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내면연기가 감탄을 자아낸다. 그리고 ‘위대한 결단’을 향해 걸음을 내딛는 그녀의 눈빛 연기는 숭고함으로 다가온다.
 

◆ 만찢 싱크로율, 홍설 - '치즈인더트랩' 오연서

영화 '치즈인더트랩'은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영화는 무엇보다 완벽한 캐스팅으로 화제를 몰았다. 웹툰이 한창 연재되던 몇 년 전부터, 주인공 홍설 역에는 오연서가, 유정 역에는 박해진이 딱이라는 '가상 캐스팅'이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에서 크게 호응을 얻었다.

시간이 흘러 대학생 역을 하기엔 이제 배우의 나이가 너무 많은 거 아니냐는 여론도 있었으나, 오연서는 '뽀샤시'한 화면 연출 속에서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싱크로율을 뽐냈다. 특유의 고양이 같은 눈매는 그가 바로 홍설임을 증명했다.

 

◆ 조용한 힘, 엘라이자 -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샐리 호킨스

제 90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아카데미 감독상은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에게 돌아갔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수상의 영광을 안을 수 있었던 힘에는 샐리 호킨스의 열연으로 완성된 엘라이자가 있었다.

엘라이자는 언어장애인 청소노동자로, 세상의 변두리에 있는 사회적 약자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고 주체적으로 드러낸다. 더불어 스트릭랜드라는 차별주의자 앞에서도 당당하다. 또렷한 시선과 침묵으로 극을 이끄는 엘라이자의 표정을 따라가면 어느새 '사랑의 모양'을 심장으로 감각하게 된다.

 

◆ 착하지 않다, 밀드레드 - '쓰리 빌보드' 프란시스 맨도맨드

상처와 편견 투성이 인간들의 연대를 뼈 있는 유머로 풀어낸 '쓰리 빌보드'의 밀드레드는 강렬한 입체감을 뿜는다. 그를 한 마디로 설명하면 '딸을 잃은 엄마'지만, 밀드레드는 슬픔에 잠식돼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보수적인 어머니상을 깨부순다.

범인을 잡지 못한 채로 딸의 살인 사건이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지자 밀드레드는 마을 외곽 대형 광고판을 이용해 경찰을 도발하는 광고를 낸다. 그는 투쟁을 멈추지 않는다. 프란시스 맥도맨드가 그리는 전투적이고 거친 밀드레드는 무엇보다, 약자가 권리를 주장하려면 선하고 정의로워야 한다는 편견을 뛰어넘는다는 점에서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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