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념치 않아도 되는 것일까.

‘미투 운동’과 함께 여러 유명인들의 성 추문이 도마에 올라 있는 가운데, 수행비서 성폭행 의혹으로 조사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텔레그램 메시지 중 ‘괘념치 말거라’가 유행어에 등극했다. 

SNS 상에서 해시태그로도 ‘괘념치 말거라’를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친한 사이에서는 “신경쓰지 마”라는 말을 “괘념치 마라”로 바꿔 쓰는 일도 많다. 이 말이 사극에 주로 쓰여 안 전 지사가 과거 재연했던 드라마 ‘도깨비’와 연관된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왔다. 아랫사람에게 말하는 듯한 ‘~말거라’라는 독특한 말투가 더욱 임팩트(?)를 선사했다. 

‘괘념치 말거라’와 함께 ‘~의 아름다운 풍경만 기억해라’ 역시 수많은 패러디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이 말들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인들의 일상에서만 허용된다. 이미 잘못 선을 넘어 ‘집중포화’를 당한 활용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성희롱 메시지의 이벤트 활용, ‘최악의 선택’

최근 아이스크림 브랜드 배스킨라빈스는 이른바 ‘조민기 카톡’을 SNS 이벤트 이미지에 해시태그 형식으로 등장시켰다가 비난 속에 공식 사과문을 냈다. ‘#너무 많이 흥분 #몹시 위험’이라는 이 말은 조민기가 보낸 것이라며 피해자가 공개한 카카오톡 메시지의 일부였다. 

‘성추행에 활용된 말을 어떻게 마케팅에 사용할 수 있나’, ‘개념이 있는 건가 없는 건가’라는 비난 속에 배스킨라빈스는 9일 사과문을 발표했다. ‘위험한 유행어’를 활용해 보려다가 타격만 받은 사례다. 안희정 전 지사의 ‘괘념치 말거라’ 역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보낸, 질타 받을 메시지라는 점에서 ‘위험한 유행어’다. 

 

#위험하지만 ‘귀엽게 봐줄’ 수준이란…

배스킨라빈스가 ‘벤치마킹’하고 싶었던 것은 이른바 ‘이병헌 문자’ 또는 ‘예원-이태임 사건 대사’를 활용한 마케팅 사례였을 것으로 보인다. 2015년 배우 이병헌이 여성들로부터 거액을 내놓으라는 협박을 받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병헌은 사건의 피해자였지만, 해당 여성들에게 ‘작업 문자’를 보낸 정황도 확인되면서 당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로맨틱, 성공적’은 그 ‘작업 문자’의 일부다. 당시 AK몰 등 온라인 쇼핑몰들뿐 아니라 다양한 TV 프로그램에서 ‘로맨틱, 성공적’을 패러디했다. 

역시 2015년에 동영상 유출이라는 찜찜한 경로로 세간에 알려진 ‘예원-이태임 사건’ 역시 이런 패러디의 대상이 됐다. 방송 촬영 현장에서 두 사람이 벌인 말다툼 영상에 “눈을 왜 그렇게 떠?”, “언니, 저 마음에 안 들죠?”라는 대사가 등장했다.

유명 소셜커머스 티몬에선 ‘눈을 왜 그렇게 떠?’라는 타이틀로 아이메이크업 기획전이 열렸다. 티몬은 자사 블로그에서 해당 기획전을 긍정적인 온라인 반응들과 함께 소개하며 '기발한 아이디어를 위해 노력한 사례'로 자평하고 있다. 또 두 사람의 말다툼은 ‘회사원 버전’, ‘동서 버전’, ‘군대 버전’ 등으로 다양하게 일반인들 사이에서 패러디됐다.

이 두 가지 사례는 당사자들에겐 심각한 사건이었지만, 사람의 목숨이 오가는 문제까지는 아니었기에 ‘위험한 유행어’임에도 대중이 ‘귀엽게 봐 준’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빵 터짐’과 ‘씁쓸함’ 사이의 줄타기?

‘귀엽게’ 봐 줬다고는 하지만 사적인 문자 내용과 당사자들이 알지 못한 채 유출된 민감한 내용의 영상 속 말들이 마케팅에 활용된 것에 씁쓸해하는 반응도 분명 있었다. “보자마자 빵 터졌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지만, “웃은 뒤에도 ‘이런 것까지 마케팅으로 써야 하나’라는 생각에 씁쓸했다”는 식이다. 

물론 마케팅에선 당연히 ‘보자마자 빵 터지는’ 반응이 무엇보다 소중한 만큼 ‘위험한 유행어’는 분명 버리기 아까운 카드다. 다만 선을 지키는 것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게 당연한 연예인이라는 직업 특성을 고려해도, 사건 당사자들로서는 분명히 괴로운 기억이 다시 한 번 웃음거리가 되는 경험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빵 터졌지만 씁쓸하다”고 말하는 대중이 이런 점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어찌됐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은 '괘념치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사진출처=JTBC 방송화면, 배스킨라빈스 SNS, AK몰, 티몬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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