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보는 배우 김강우(40)가 극장가와 안방극장을 가벼운 템포로, 무거운 분위기로 유영한다. MBC 주말특별기획 ‘데릴남편 오작두’에선 해맑고 낙천적인 초긍정 약초꾼 오작두, 스릴러 영화 ‘사라진 밤’에선 재벌가 회장 남편인 대학교수 박진한으로 두 얼굴을 내미는 중이다.

 

지난 7일 개봉한 ‘사라진 밤’(감독 이창희)은 극장가 비수기에도 누적관객 81만명을 모으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 있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소유욕 강한 대기업 회장 설희(김희애)로부터 벗어나고자 그녀를 살해하고 완전범죄를 꾸미다 파멸해가는 인물이다. 잃어버린 꿈을 일깨우는 여대생 혜진(한지안)과 불륜관계에 빠져들며 사건을 벌인 그는 주도면밀함, 불안함, 내밀한 욕망을 단단하게 풀어간다.

“원작인 오리올 파울로 감독의 스페인 영화 ‘더 바디’와 비교해서 관람하는 분들이 있으실 거예요. 특이한 스릴러여서 각광받았잖아요. 저희 영화의 경우 기존 스릴러와 형식이 다른 데다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스토리라 흥미도가 떨어질 수 있거든요. 관객들이 어떻게 봐주실지 긴장했는데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 다행이에요.”

배우가 리메이크 작을 연기하는 건 상당히 부담스럽다. 김강우 역시 홍콩 느와르 대표작 ‘영웅본색’ 리메이크 영화 ‘무적자’(2010)를 해본 적이 있기에 절감하고 있다. ‘사라진 밤’ 원작이 유럽영화라 감정적으로 와 닿지 않는 부분이 있었고 박진한 캐릭터도 기능적으로 그려진 것 같아 연민이 가질 않았다. 그런데 각색 과정에서 한국적 정서가 덧입혀지며 우려를 불식할 수 있었다.

 

 

“작품 결정 기준들이 있는데 이번엔 작품만 봤어요. 어떨 땐 캐릭터를 중점으로 보기도 하거든요. 솔직히 캐릭터만 놓고 봤을 땐 확 끌리진 않았죠. 호감 받을 수 없는 캐릭터잖아요. 하지만 특색 있는 스릴러라는 점, 한정된 공간에서 찍는 점, 신인 감독의 패기와 풋풋함이 주저하던 저를 일으켜 세웠어요.”

극중 사건의 진실을 좇는 형사 중식 역 김상경, 김희애는 중앙대 연영과 선배들이다. 이른바 ‘김 트리오’가 주고받는 호흡도 꽉 찬 느낌이다.

“간만에 막내가 돼서 좋았어요. 누나, 형님들과 연기하는 기회가 점점 적어지니까. 김희애 김상경 선배는 관객 입장에서 원래 좋아하던 배우들이라 꼭 한번 공연해보고 싶었죠. 상경이 형과는 잠깐 학교생활을 같이 했으나 연극을 안 해봤고, 김희애 선배님과는 언젠가 멜로로 만나길 원했거든요. 이번엔 징글징글한 멜로를 해서 아쉬웠으니 다음 기회에 꼭! 좀 더 나이 들어 원숙한 멜로를 해보고 싶어요. ‘유아인과도 했는데 나라고 못 할쏘냐’ 했어요.”

영화에는 진한의 전사가 별반 등장하질 않는다. 관객들은 처음부터 그가 범인임을 알게 된다. 김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악역이다. 진한이 관객의 호흡을 가져가지 않으면 흥미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머리가 뜨거워질 정도로 연기 계산을 많이 해야 했다.

 

 

“아내의 시체가 사라진 국과수에 들어가 사람들을 대할 때와 혼자 있을 때 호흡이 틀려야 관객도 상황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어요. 한 공간, 하룻밤의 일이라 시간대별로 진한의 모습과 톤을 계산하는 게 필요했죠. 전사가 없으므로 해결책은 설희와의 몇몇 장면에서 그간의 역사가 보여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10년간 억압당해오고 자신이 원하는 결혼생활이 아닌 잘못된 선택이었음이 눈빛, 함축적인 대사에서 표현돼야 한다고 여겼죠.”

‘사라진 밤’이 어둡고 무거운 톤이라면 ‘데릴남편 오작두’는 밝고 경쾌하다.

“밝고 동적인 작두가 연기하기에 편해요. 표현방식 다양하고 계속 던지니까. 박진한 경우 취조실에 앉아만 있고 감정을 보여주면 되지 않나 싶은데 계속 나한테 오는 자극을 달리 반응해야 하니까 더 어려워요. 이런 정적인 캐릭터는 동작이 없어서 그렇지 에너지는 더 써요. 연극적으로 강하게 나갈 필요도 있고, 계산해야 해서 머리가 아프죠. ‘데릴남편 오작두’ 현장에선 수다도 엄청 떨고 예열을 많이 시키곤 해요.”

 

 

영화, 드라마뿐만 아니라 지난 15년 동안 욕망해왔던 연극무대에도 발을 담그고 있다. 지난해 10월 막을 내린 연극 ‘햄릿-더 플레이’에서 뜨거운 연기혼을 분출했다.

“고전이고 대학 때 했던 공연이라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용기를 냈어요. 흥행하기 좋은 현대물을 하기 보다는 도전하기 힘든 원작에 도전하는 게 맞다 싶었죠. 연극인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요. 연극할 땐 머슴밥을 먹여야 버틸 수 있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정말 도움이 많이 됐어요. 트레이닝뿐만 아니라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돼요. 연기라는 게 소중하고 귀한 일이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고요.”

연극학과 출신이고, 연극으로 연기를 배웠음에도 데뷔 이후 시간을 빼기가 만만치 않았다. 연극 한 편에 출연하기 위해선 연습기간부터 막공까지 5개월을 온전히 투자해야 한다. 특히 김강우는 두 작품을 병행하지 못하는 체질이라 “해야지...해야지” 하다가 지난해 다른 모든 것을 제쳐놓고 ‘햄릿’에 뛰어들었다. 앞으로 몇 년에 한 작품이라도 계속 해나갈 계획이다.

느릿느릿 진지하다가도 의외의 웃음을 유발한다. 여배우들과의 호흡에 대해 언급하다가 “유이(데릴남편 오작두)랑 열 살 넘게 차이가 나는데 윤여정 선생님(돈의 맛)과도 했잖아요. (상대역) 나이 폭이 가장 넓은 배우 아닐까요. 제가”라고 오늘의 명코멘트를 남겼다.

 

사진= 씨네그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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