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떠진 청국장 향기를 풍기는 신 스틸러 김상호(46). 그가 절절한 부성애로 스크린을 물들였다. 범죄수사영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6월16일 개봉)에서 딸을 향한 사랑을 콧등 시큰하게 전했다. 차분하던 캐릭터가 거침없는 직설과 욕으로 인터뷰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 명품 신 스틸러, 부성애로 눈물 쏙

영화 ‘범죄의 재구성’(2004)에서 불광동 휘발유 역을 맡아 주목 받기 시작했다. 이후 ‘똥개’ ‘너는 내운명’ ‘타짜’ ‘이끼’ ‘완득이’ ‘해무’ ‘미쓰 와이프’ ‘대호’에 출연하며 신 스틸러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드라마 ‘넝굴째 굴러온 당신’ ‘특수사건전담반 텐’ 등에선 반골기질과 푸근함이 공존하는 서민적인 캐릭터를 어필했다. 지난해 판타지 로맨스 영화 ‘뷰티 인사이드’에선 우진 역을 맡아 애틋한 멜로 남주까지 소화했다.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에선 대해제철 며느리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린 사형수 순태로 분해 딸 동현(김향기) 바라기의 면모를 그려내 눈물을 쏙 뺀다.

“책을 덮고 나서 내 이런 면을 봐주셨구나란 생각이 들어 정말 잘 해내고 싶었다. 감독님께 ‘내가 주연인가요?’라고 물은 뒤 ‘순태를 참 잘 사용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잘 해내고 싶었다. 마침표는 개봉한 뒤 관객들이 찍어주실 테고 감독님과 아주 재밌게 했다.”

 

 

■ “30만 하는 연기...과거 경험 끌어오지 않아”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스틸 하나가 떠올랐다. 눈보라가 지나가기를 묵묵히 기다리는 야생동물이었다. 그냥 버티고 있는 동물이 감방에 갇힌 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순태로 느껴졌다.

“현장에선 수위 조절이 관건이었다. 감정이 너무 과해서 부담을 주지 않을까, 드라이해서 밋밋하게 다가가지 않을까를 고민했다. 순태가 관객에게 믿음을 얻지 못하면 우리 영화는 무너질 거라 여겼다. ‘그런 게 어딨어?’란 반응이 나오는 순간, 나머지 배우들이 아무리 화려한 연기를 펼쳐도 관객이 감정 몰입을 하지 않을 테니. 그래서 굳이 100을 하는 대신 30만 하는 걸로 정했다. 나머지는 관객이 생각하시도록.”

보통 배우들이 연기할 때 과거의 경험이나 감정을 끌어오는 경우 많은데 이번에 김상호는 굳이 끌어올 필요가 없었다. 생활이자 자신 역시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순태는 자신이 억울하다 말하지 않는다. 명예회복하게 해달라고 요구할 뿐이다.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싸우는 거다. 아버지란 존재는 자식에게 자기보다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하고, 맛있는 걸 먹이고 싶어하지 않나. 관객이 이 영화를 보고 ‘행복한 2시간을 보냈다’는 말만 해줬으면 좋겠다.

 

 

■ 롤러코스터 연극배우 인생

극단 배우극장, 예우에 몸을 담았다가 아동극을 몇 편 했다. 혼자 대학로에서 포스터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93년 청우(현재도 소속 배우)에 입단했다. 이듬해 연극 ‘종로고양이’에 출연했으나 생계 탓에 배우활동을 접고 1년6개월간 막노동, 라면집 운영, 신문배달 등을 전전하다 다시 연극판에 복귀했다.

“이만큼 노력했으면 잘 방이라도 보장해줘야 하지 않나...열 받아서 연극을 때려치웠다. 돈 벌 수 있는 자신은 있었다. 움직이니까 돈이 들어왔고. 그런데 너무 연극을 하고 싶더라. 나중에 자식한테 ‘아빠 왕년에 연극 했어’란 자랑이 비겁해보일 거 같았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아이를 독려할 수 없을 거란 생각에 다시 돌아갔다. 이후 한 연극들이 호평을 받았다. ‘김상호 눈빛이 변했다’란 말이 쏟아졌다. 사람은 시련을 겪어야 해!”

 

■ 선후배들의 연기향연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에는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명연이 넘실댄다. 신구 김영애 김뢰하 이문식 성동일 김명민 박혁권 김향기과 함께한 김상호의 입꼬리에 웃음이 걸렸다.

“김뢰하 선배님과 명민이가 사우나에서 대면하는 신에서 불쑥 옷 입고 탕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정말 멋있었다.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 역 문식이 형은 (극중) 가끔 와서 패고가고...향기는 예뻐 보이고 멋있게 보이고 싶어 할 나이인데 있는 그대로 연기해서 놀라웠다. 쟁쟁한 분들을 모셔와서 100프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감독님이 지휘를 참 잘하신 것 같다.”

 

 

■ "거짓 연기 하고 싶지 않아"

현재 MBC 드라마 ‘운빨로맨스’에서 대박소프트 사장 대해로 페이소스와 웃음을 전하는 중이다. 오는 8월 개봉할 범죄액션영화 ‘조작된 도시’에선 악역 마덕수로 관객과 만난다.

“연극은 에너지가 대단한 장점이 있다면 영화는 디테일한 표현이 가능해 재미있다. 또 내 감정을 잡아주기 위해 엄청난 기술이 들어오니까 스펙터클한 매력이 있다. 지금은 늙어 죽을 때까지 다른데 의존하지 않고 연기만 해서 잘 먹고, 잘 살고 싶다. 연기라는 게 거짓말인데 그럼에도 거짓말하는 연기는 하고 싶지 않다. 예를 들어 내가 웃기려고 노력하는 순간, 관객은 웃지 않는다. 무대든, 스크린이든, TV든 관객은 귀신처럼 알아차린다.”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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