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신작 '용과 주근깨 공주'가 베일을 벗었다.

영화 '용과 주근깨 공주'는 일본 흥행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일본에서 지난 7월 16일 개봉한 이래, 공개 57일 만에 누적 관객 423만명, 흥행수익 58.7억엔을 돌파했다. 이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 역사상 최고의 흥행 성적이며 현재 진행형이다.

'섬머 워즈'부터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던 호소다 마모루의 메타버스 세계관의 절정을 보여주는 '용과 주근깨 공주'.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는 비단 호소다 마모루의 이름값과 메타버스라는 트렌디한 소재 탓만은 아닐텐데. 과연 '용과 주근깨 공주'만의 독특한 매력은 무엇이기에 이토록 매료되는 것일까.

#호소다 마모루식 현실X가상세계 'U'의 환상적인 조화

영화 ‘용과 주근깨 공주’는 제작비 300억원의 대작인만큼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역량이 총동원됐다는 평이다.

우선 ‘용과 주근깨 공주’에는 전작 ‘섬머 워즈’ 속 가상 현실인 'Oz'의 뒤를 잇는 'U'가 등장한다. 영화 도입부에서 주인공 벨이 'U'에서 노래를 부른 장면은 말 그대로 신세계로의 초대장.

건축가 에릭 웡이 구축한 초현실적 도시 위로 수많은 스피커들을 얹은 고래가 공중을 날아다니며 그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벨의 모습이 압권. 거기에 U의 인물들은 재패니메이션 특유의 캐릭터성에 할리우드풍 캐릭터 디자인이 합쳐져 동서양 그 어느 곳도 아닌 제3의 인물들을 만들어낸다.

반면 그 직후에는 호소다 마모루 특유의 색감으로 그려진 시골 풍경이 연결된다. 더도 덜도 아닌 호소다 식 일본 풍경과 U 사이의 간극은 그 스케일과 괴리감만큼이나 흥미롭다. 요는 소녀의 성장을 다루는 실제 세계가 호소다 마모루 고유의 그림체로 일본의 정경을 그렸다면, U의 세계는 50억 인류가 이용하고 있다는 설정에 걸맞게 무국적성의 광활한 공간감을 표현하는 것.

#Boy meets girl이 아닌 girl meets boy

'용과 주근깨 공주'에도 어김없이 주체적으로 변모해가는 소녀상이 등장한다. 극 초반 어머니를 잃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매사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스즈는 U 속에서 가수 Belle로 변신해 숨겨져있던 재능을 찾아낸다.

주인공 스즈가 U에서 사용하는 이름이 Belle인 것은 호소다 마모루가 공인했다시피 영화 ‘미녀와 야수’의 오마주. 그 이름처럼 야수를 구하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스즈의 모습은 호소다 마모루가 그간 그려왔던 '이상적인' 소녀의 모습이다.

이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부터 최근작 '미래의 미라이'까지 호소다 마모루의 작품을 관통하는 소재, 청춘의 성장통과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용과 주근깨 공주'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이 공식을 살짝 비튼다. 여타 작품에서 구원-연애로 이어지는 구조를 살짝 비틀어 또 다른 종류의 구원 서사를 만들어낸 것. 

다소 이야기가 복잡하며 스즈가 '용'에게 갖는 감정에 비약이 있다는 평도 있지만 스즈가 모친의 유지를 따라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장면은 소녀가 제대로 된 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 

#노래로 이끌리는 두 개의 자아

작중 이런 모든 장벽을 넘어서는건 주인공 스즈의 노래다. 어머니를 눈 앞에서 잃고 어머니와 함께 해왔던 음악을 더 이상 손에 잡지 못한 스즈는 U의 세상에서 비로소 노래할 수 있게 된다. 초반부 노래에게 “이끌어달라”며 절망과 고립감을 노래하던 스즈는 “넌 멋있어, 넌 아름다워”라고 말해주는 존재와 만나고 한단계씩 성장해나가는 모습은 극의 키 포인트이자 킬링 포인트.

연기에서 미흡함을 보이는 주인공 성우 나카무라 카호는 역시나 탁월한 가창력을 선보인다. 음악이 주요 소재가 되는만큼 극중 등장하는 곡들은 이야기 전개에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모습을 보여 관객에게 ‘소름 돋는’ 경험을 제공한다. 작중 벨의 콘서트 중 공중을 유영하는 장면에서는 음악과 시각효과의 합일이 어떤 쾌감을 주는 지 경험할 수 있다. 물 위의 파장, 시각화된 음파의 표현은 쾌감 그 자체. 

#결국 노래로 완성되는 판타지

U의 세상은 우리네 세상과 몹시도 닮아있다. 점차 각박해지는 인터넷 속 세태를 현실적으로 그려내는데 특히 작중 ‘용’의 실제 인물로 지목되는 인물을 찾아내려는 부분에서 극에 달한다. 

유명해지기 위해 자신을 둘러싼 루머를 적극 이용하는 아티스트, 사랑받지 못했다는 자격지심을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사람인 것처럼 SNS를 꾸미는 주부 등. 익명성에 기대 타인에게 악의를 쏟아내거나 인터넷 상의 유명세를 이용, 악용하는 행위들은 현실과 판박이. 유명 야구선수가 연습 때도 상의를 벗지 않는다며 등 뒤에 어떤 상처가 있는지 그를 의심하고 음해한다.

극 말미에 U의 세계에 현실 세계의 스즈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이질적인 두 가지 세계는 하나가 된다. 클라이맥스에서 보여주는 2D와 3D의 융합, 그리고 스즈의 노래에 황금빛으로 물든 인파가 사이리움처럼 반짝이는 모습은 호소다 마모루식 판타지의 절정.

헐거운 이야기 사이를 단단히 이어주는 노래의 힘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값어치가 있다. 호소다 마모루는 모든 것을 보여줬다.

사진=영화 '용과 주근깨 공주'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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