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에서 전통의 이름으로 여성 역할을 국한시켜버리는 행태와 그에 대한 반발이 '여혐' 논란을 낳고 있다. 이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생각을 요구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소녀와 여자’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는 아프리카에서 행해지는 여성 할례에 대한 부조리를 다루며, 억압 받는 여성인권에 대한 관객들의 재고를 부탁한다.

 

 

전통, 그 앞에서 작아지는 여성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자행되는 ‘FGM’(Female Genital Mutilation: 여성 성기 절제)은 전통이다. 소녀들은 정숙한 ‘진짜 여자’가 되기 위해 쾌락을 잘라내고, 목숨을 담보로 성인식을 치른다. 어떤 사람들은 문화의 상대성을 내세우며 FGM을 지키려 노력한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의 희생을 바탕으로 지속되는 부조리를 문화로 규정할 수 있을까?

FGM은 여성에게만 가해지는 폭력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욕망을 제거해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만들려는 의도다. FGM을 받은 소녀는 교육, 자유, 자아를 잃는다. 오직 얌전한 아내와 엄마의 삶만 강요될 뿐이다. 이 불합리함이 전통의 이름으로 당연하게 여겨진다.

 

영화의 시선

‘소녀와 여자’는 다큐멘터리의 기본 덕목인 중립성을 지키지 않는다. 당당히 FGM에 대해 반대 입장에 선다. 보는 사람이 스스로 답을 찾도록 이끌기보다 계몽시키려는 목적이 강한 영화다. 자칫 여론호도가 될 수 있기에 다큐멘터리에서는 그다지 옳은 자세가 아니다. 하지만 FGM이라는 문제적 대상을 생각해보면, 이 편향성에 기꺼이 동의하게 된다.

 

 

내레이션의 부재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내레이션은 이야기의 방향을 설정해주는 장치다. 그러나 ‘소녀와 여자’는 카메라 내부 소녀들의 이야기에만 집중하며 내레이션 등 다른 외부장치를 첨가하지 않는다. 김효정 감독의 섬세한 연출 덕에 화면 속 인물들과 직접 눈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는 느낌까지 건넨다. 익숙지 않지만 조금 더 스크린 속 현실에 푹 젖어들며 공감하게 만든다.

 

대한민국과 아프리카의 현실

유교 전통에 매몰돼 여성들에게 한정된 역할을 강요하는 대한민국과 여성에게 할례 전통을 강요하는 아프리카는 꽤 유사한 점이 많다. 전통적 여성상을 우아하다고 포장하며 스스로 교만에 빠진 윗세대들과 여성은 남성에게, 남성은 여성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비난 게임 등 아프리카의 문제점에 왠지 기시감이 든다. 영화는 이 부조리에 대해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것과 사회적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담담히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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