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엔 ‘영화 비수기’라는 이름표가 따라 붙곤 합니다. 사람들이 산으로 들로 놀러가다보니 영화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어진 까닭이지요. 실제로 지난 한 달간 극장가엔 “흥행이 안 된다”는 이유로 ‘대작’이라고 불릴 만한 한국 작품은 보이지 않았고,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용이 투입된 영화들이 주를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시원시원한 블록버스터 영화를 기대하는 관객들은 실망스러울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저는 이런 봄 극장가의 분위기를 좋아합니다. 대작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 다르게 생각해보면, 흥행공학이 아니라 실험적인 영화를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니까요. 그 중에서도 올해는 특히 ‘곤지암’(감독 정범식)이 눈에 띕니다.

지난달 28일 개봉한 ‘곤지암’은 개봉 7일만에 156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요 몇 년 간 극장가에서 힘을 쓰지 못했던 호러 장르의 약진이라는 점에서 우선 눈길이 가는데요. 심지어 이 장르에 어울리지 않는 계절, 흥행배우 없이 신인들로만 이루어진 출연진 등등을 생각해보면 이 흥행은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 십수 년간의 정량적 분석으로 쌓아올린 흥행코드를 총체적으로 부정하는 ‘쿠데타’ 같은 인상이죠. 어쩌면 ‘곤지암’의 영화 실험이 관객들에게 신선함으로 다가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곤지암’은 기존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형태의 영화입니다. 사실 큰 줄기의 서사만 봤을 때는 별 내용은 아니긴 한데요. 유명 호러 유튜브채널 ‘호러타임즈’를 운영하는 하준(위하준)이 7명의 멤버를 모아 곤지암 정신병원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공포체험을 떠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범식 감독은 이 간단한 내러티브에 여러 장치들을 더해 독창적인 작품으로 주조합니다.

첫째로 눈에 띄는 건 영화는 이 공포의 근원을 추리해 해결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대게 많은 한국 공포영화들은 한(恨)을 품은 원귀에 대한 위령서사를 따라가곤 했지요. 결국 원귀가 주인공의 희생에 모든 한기를 거두고 성불하게 된다는 스토리는 공포영화를 마음 편히 즐기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곤지암’에서는 정신병원의 사연을 추측할 뿐 왜 그 장소가 ‘귀신의 집’이 됐는지를 명확히 밝히진 않습니다. 이유를 모르다보니 주인공들은 허둥지둥 도망치려할 뿐이죠.

 

둘째로는 스크린 내부와 극장 안을 직접 연동하는 유려한 연출입니다. 영화의 카메라는 모두 셀프카메라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모큐멘터리 형식으로 과거에 실제 있었던 일인 것처럼 꾸며진 시점의 형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성입니다.

그런데 보통의 파운드 푸티지는 카메라를 들고 있는 인물의 정면을 바라보는 화면이 주를 이루는 데 반해, ‘곤지암’에선 이 뿐 아니라 각각 인물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채로 고정된 고프로 화면을 수시로 내보이지요. 귀신의 실체를 명확히 보여주는 것보다, 캐릭터 리액션을 통해 관객의 감정을 스크린 속으로 직접 연동시켜 ‘체험’을 이끕니다. 쉽게 말해 그들의 표정대로 관객의 심장을 쥐락펴락하는 것이지요.

카메라는 다르게 말하면 ‘관객의 눈’입니다. 많은 영화들 속 카메라는 극영화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연출가의 의도대로 관객들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곤지암’은 완전히 극 중 캐릭터들의 시선과 관객의 시선을 일치시킵니다. 덕분에 관객들은 캐릭터들과 함께 집단 치료실, 실험실, 문이 열리지 않는 402호(심지어 에디터의 집도 402호라 더 현실감을 느꼈습니다)를 둘러보는 느낌을 전달 받게 됩니다. 체험공포라는 ‘곤지암’의 목적을 완전히 성취합니다.

 

이 대목에서 가장 중요하게 드러나는 게 바로 유튜브 방송이라는 소재인데요. 돌아보면 ‘블레어 위치’ ‘파라노말 액티비티’ 등 많은 파운드 푸티지 장르의 영화는 과거시제입니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곤지암’의 유튜브는 실시간 방송입니다. 영화 중간 중간 계속 나타나는 ‘호러타임즈’ 로고가 영화 자체를 실시간 유튜브 방송으로 꾸밉니다.

결국 극 중 곤지암 정신병원에서 이들이 경험하는 모든 일들이 은연중에 마치 현재 일어나는 일처럼 여겨지게 됩니다. 관객-영화의 시간이 일치하게 되면서 더더욱 영화 속 체험에 현실감이 가미되지요. 어찌보면 진일보한 파운드 푸티지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곤지암’은 아주 오랜만에 극장가에 찾아온 훌륭한 호러 무비입니다. 물론 한국호러의 명작으로 불리는 ‘여고괴담’ ‘소름’ ‘장화, 홍련’ ‘알포인트’ 등보다 더 좋은 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 공포감만큼은 앞선 어떤 영화들에 뒤지지 않는다고 확신합니다.

어찌됐거 관객들의 호응을 받으면서 흥행 순항하고 있는 '곤지암'의 선전은 참 반갑습니다. 요 몇 년 간 부진을 면치 못했던 한국 호러무비 부흥의 단초가 될 수 있을지, 흥행 위주의 한국영화계를 향한 ‘곤지암’의 쿠데타는 이제부터 시작인 것 같습니다.

 

사진='곤지암' 스틸컷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