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귀엽고 달짝지근한데 묘하게 씁쓸하다. ‘고장난 론’을 본 후의 감상이 그렇다.

사진=영화 ‘고장난 론’
​사진=영화 ‘고장난 론’사진=영화 ‘고장난 론’

애니메이션 ‘고장난 론’(감독 사라 스미스, 진-필라프 바인, 옥타비오 E.로드리게즈)은 소셜 기능을 탑재한 고성능 AI 로봇 '비봇'이 전세계 아이들의 친구가 된다는 설정에서부터 출발한다.

작중 비봇은 학교 생활을 도와주는 것은 기본. 전화, 문자, 셀카, 게임에 이동수단으로서의 기능까지 모두 해결해줄 수 있는 만능 기기이자 친구이다. 비봇은 이용자의 취향대로 스킨을 입혀 커스터마이징 할 수도 있고 이동수단으로도 이용될만큼 강한 내구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진짜 기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모든 교우 관계가 비봇으로 시작해 비봇으로 끝나는 것. 영화 ‘고장난 론’ 속 아이들은 직접 친구를 찾아나서지 않는다. 비봇에 입력한 대화, 검색 내용, 찍은 사진 등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비봇의 알고리즘이 알려주는대로 아이들은 취향과 성격이 비슷하게 매치되는 아이만을 찾아 관계를 맺게 된다. 

주인공 소년 바니는 학교에서 유일하게 비봇이 없는 아이다. 비봇 없이 친해지기 없는 학교 생활은 따분하기만 하다. 바니의 고충을 눈치 챈 아버지가 우여곡절 끝에 고장난 비봇 론을 구해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진=영화 ‘고장난 론’
사진=영화 ‘고장난 론’

제목처럼 등장부터 고장난 상태로 등장하는 론은 이런 세태를 풍자한다. 입 안의 혀처럼 필요한 정보를 쏙 쏙 건네주는 다른 비봇들과는 달리 네트워크 접속이 불가한 탓에 기본적인 기능들은커녕 백지와도 같은 상태이기에 도리어 바니가 처음부터 끝까지 알려주어야 할 판이다.

이 과정에서 바니에 의해 친구라면 해야할 것들, 기대해야될 것들을 하나씩 학습해나가며 론은 기계이면서도 도리어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바니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겠다며 바니의 관심사나 취향을 하나 하나 분석해 온 동네에 포스터를 붙이고 다니는 등 소동을 일으키질 않나. 로봇이라는 직분을 어기고 바니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흠씬 두들겨 패주는가 하면 친구는 ‘양방향’이라며 바니에게도 자신을 동등하게 대할 것을 요구한다. 

사진=영화 ‘고장난 론’
사진=영화 ‘고장난 론’

진정한 우정과 관계 맺기. 어른들에게도 쉽지 않은 문제인데 바니와 론이 보여주는 친구란 명확하다. 친구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라는 점. 그 결말까지 가는 과정은 일견 수수하지만 술술 읽힌다. 파스텔 톤의 비주얼과 화려한 그래픽이며 연출, 클라이맥스에서 긴장감 넘치는 액션 씬까지. 3D 애니메이션에 요구하는 것들을 고루 갖췄기에 보는 맛은 충분하다. 

인간과 기계의 순수한 교류라니. 이는 ‘월-E’나 ‘빅 히어로’ 등 여타 애니메이션에서도 다룬 바가 있는 소재다. 그렇기에 이런 류의 영화를 봐왔던 이들이라면 뭔가 다른 이야기 전개를 바라는건 무리가 있겠다. 뭐, 그런 관객들이라면 이미 어린이가 아니라 유년기를 지난 ‘어른이’들이 대부분일테고.

사진=영화 ‘고장난 론’
사진=영화 ‘고장난 론’

도리어 어른들이 공감할만한 포인트는 전혀 다른 곳에 있다. 달짝지근한 포장지에 싸인 진실들은 씁쓸하기 짝이 없으니. 이를테면 안전장치가 없는 까닭에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론을 본 아이들이 자신의 비봇에 론의 기능을 복사해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부분은 간담을 서늘케 한다. 

작중 아이들은 말 그대로 피상적인 관계만을 거듭하게 된다. 과학이 좋다, 화려한게 좋다. 간단한 키워드 몇 개만을 갖고 쉽게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인터넷 밈을 소구하는 등 겉치레식 우정들을 나누는 모습이 작중 곳곳에서 드러나 씁쓸하게 한다. 여기서부터 인간 관계에 대한 ‘고장난 론’만의 고찰이 시작된다.

아이들이 SNS에 비춰지는 모습에 매몰되는 모습이나 인터넷 밈이 되어 골머리를 앓는 부분 또한 현실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아니, 뜨끔할 사람들이 참 많을거다. 저런 사람 아는데, 혹은 내가 그런데 하면서. 피상적인 인간관계나 무분별한 정보 확산이라는게 비단 아이들에게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 않은가.

사진=영화 '고장난 론'
사진=영화 '고장난 론'

이런 세태 풍자의 백미는 작중 악당으로 등장하는 버블사의 대표 앤드류가 속내를 드러내며 절정에 달한다. 개인의 취향을 천편일률적으로 재단하는 SNS 서비스의 알고리즘이나 이용자의 개인정보 보호는 무시한 채 이를 상업적 용도로 신나게 써먹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쓴웃음이 나올 뿐. 

이야기 구조가 워낙 간결하다보니 아이들의 눈으로 보자면 미래지향적이고 달콤한 판타지를 충분히 맛볼 수 있다. 스토리의 단순함에는 만족하지 못했더라도 상관없다. 세상살이에 적당히 찌든 어른이들이라면 그 안에 숨겨진 메타포들을 곱씹으며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을테니. 달콤한 초콜릿 속 도수 높은 위스키를 품은 위스키 봉봉과 일맥상통하는 영화라 평하면 너무 거창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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