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남성 중심적 사고"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 제니(이엘)"


영화 ‘바람 바람 바람’은 롤러코스터 디자이너로 활약하다 제주에 정착해 택시 운전사로 일하는 석근(이성민 분), 그리고 바른생활 사나이 봉수(신하균 분) 앞에 치명적인 매력의 여성 제니(이엘 분)가 나타나며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그린다.
 

체코 영화 ‘희망에 빠진 남자들’(이리 베데렉 감독)을 ‘스물’의 이병헌 감독이 리메이크 한 작품으로 이른 바 ‘어른들의 코미디’를 표방했다. 앞서 ‘써니’ ‘과속 스캔들’ ‘오늘의 연애’ 등에서 보여준 이병헌 감독 특유의 차진 말맛과 이성민, 신하균, 송지효, 이엘이라는 배우 라인업이 자연스레 관객들의 눈길을 끈다.

코미디 기근이었던 극장가에 ‘바람 바람 바람’은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경쾌한 스타트를 끊었다. 하지만 흥행성적표와 달리 극단적인 관객들의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아니지만 영화는 자연스레 시대상을 반영할 수 밖에 없다. 동시대의 정서를 고려했을 때 ‘바람 바람 바람’은 논쟁의 여지가 많은 영화다. ‘어른들의 코미디’를 표방한만큼 불륜이라는 소재 자체는 큰 부담이 아니다. 다만 이 사회적인 화두를 개인적인 시선으로 옮겨 왔을 때 발생하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불편함’을 유발한다.

영화는 경쾌한 삽입곡과 제주라는 공간이 주는 특수성을 통해 바람과 일상을 분리시키는 것에 성공했다. 감독의 말처럼 “바람 자체를 미화하거나, 옹호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남성적인 시선에서 일방통행 하듯 풀어내려간 캐릭터들에 대한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석근의 아내 담덕(장영남 분)은 뻔히 남편의 만행을 알면서도 이를 인내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심지어 석근이 불륜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선물한 가방을 자랑하려고 시장에 가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를 그린다.

무능력하지만 성실한 가장 봉수가 바람의 세계에 눈을 뜨는 원인제공자는 아내 미영(송지효 분)인 것으로 해석된다. 미영은 남편의 말에 귀를 닫고 일방통행 하는 아내로 그려진다. 마치 불륜을 정당성에 힘을 실어주는 듯한 설정은 바람의 주체인 봉수보다 미영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남성 판타지의 조합으로 완성된 제니는 언뜻 보기에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캐릭터로 느껴진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제니에게 남성들이 현혹되는 요인은 ‘잘 들어주고’ ‘잘 이해해주는’ 수동성에 있다. 특히 상대를 유혹하는 노골적인 대사와 액션, 그리고 극이 전개될 수록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행동들이 더해지며 개연성마저 잃어버렸다.

영화는 불륜이라는 빗나간 관계를 통해 늘 곁에 있어 퇴색한 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영화다. 그러나 이를 그려낸 방식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이 다각적일 수 있다는 셈범을 놓쳐버린 듯 하다.

물론 영화적으로 접근한다면 이병헌 감독의 재치있는 대사와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이 특유의 리듬감을 만들어내며 웃음을 이끌어내는 유쾌한 코미디물이다. 그러나 상업 영화인 ‘바람 바람 바람’이 어느 때보다 젠더 이슈, 특히 남녀 서로에 대한 혐오로 예민한 이 시류에 어울리는 영화인지는 분명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