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관이나 스크린 상에서 결혼이 또 다른 로맨스의 장벽이 되지 못한지는 꽤 됐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화양연화’ 등 ‘불륜 소재’임에도 명작의 대열에 당당히 올라 있는 작품들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하게 포진해 있으며, 2018년 현재도 불륜이 직간접적으로 등장하는 콘텐츠들이 화제작으로 눈길을 모으는 상태다. 

그런데 최근 등장한 이 ‘불륜물’들에서 과거와 달라진 점이 보인다. 천편일률적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코드에서 벗어나는 조짐이다. 

로맨스로 포장된 불륜 당사자들에 ‘애잔한’ 몰입을 요구하기보다는 불륜 관계의 외부에서 상처를 받는 배우자의 심리와 불륜이라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 배경을 조명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적어도 ‘짜릿함’이라는 소재로 눈길을 끌려는 얄팍한 불륜물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 장면 3가지를 들어본다.  

 

#장면 1: 드라마 ‘나의 아저씨’

방영 전부터 스무 살이 넘는 극중 남녀 주인공의 나이 차이, 제목에서부터 ‘불륜 로맨스’가 아니냐는 의혹으로 비난에 시달려야 했던 tvN ‘나의 아저씨’는 뚜껑을 열어 보니 로맨스 드라마가 아니었다. 또 일단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삶이 힘든 40대 가장 동훈(이선균)의 잘 나가는 아내 윤희(이지아)였다. 

지난주 방송에서 동훈은 윤희가 자신의 회사 상사이자 대학 후배 준영(김영민)과 외도 중이라는 사실을 파악했고, 드라마는 허탈하고 쓸쓸한 동훈을 오래도록 조명했다. 앞으로 ‘나의 아저씨’ 속 캐릭터들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주인공이 배우자의 불륜으로 상처받은 남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tvN

 

#장면 2: ‘바람 바람 바람’

3040세대 사이에서 뜨거운 입소문을 모으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영화 ‘바람 바람 바람’은 불륜이라는 아슬아슬한 소재 때문에 여전히 갑론을박의 대상이다. 하지만 ‘불륜 미화’에 반감을 가진 이들조차 동감하는 것은 결혼 8년차인 부부 봉수(신하균)와 미영(송지효)의 메마르다 못해 ‘브로맨스’나 다름없는 일상에 대한 조명과 공감 가는 대사들 덕분에 일련의 ‘바람’이 더 코믹하게 그려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봉수의 뒤늦은 바람만큼이나 대단한 미영의 ‘SNS’에 대한 사랑과, 봉수가 말하는 “부부가 키스란 것도 합니까?”라는 대사는 ‘바람’이 무미건조한 일상에 활력으로 작용하는 스토리에 설득력을 얹어줬다. 이 역시 불륜에 빠진 남녀가 로맨스를 키워가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헤어진다는 등의 과거 불륜물의 화법과는 다른 접근법이다. 

 

사진='바람 바람 바람' 스틸 컷

 

#장면 3: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

MBC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 역시 ‘불륜’과 ‘시한부’라는 두 가지 자극적인 소재로 역시 방영 전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불륜이라는 사건을 접한 당사자의 배우자가 어떤 충격을 받게 되는지는 이 작품에서도 그려지고 있다. 남녀 주인공이자 부부인 현주(한혜진)와 도영(윤상현)은 서로 아주 사랑하던 부부이지만, 시한부 판정을 받은 현주가 도영을 그의 첫사랑에게 보내주기로 결심하면서 양쪽 다 또 다른 인물에 흔들리게 된다. 

시한부라고 해서 사랑하는 남편을 다른 여자에게 보내야 하는 것인지, 또 그 상황에서 남의 남편을 빼앗으려는 첫사랑 여인의 태도는 맞는 것인지 여러 가지 논란거리가 있다. 그러나 도영은 자신 역시 첫사랑에 흔들리고도 의사(김태훈)와 아내의 포옹 장면을 보고는 괴로움이 가득하다. 어쨌든 아내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하는 도영의 모습은 ‘내로남불’보다는 훨씬 복합적인 감정을 다룬다는 점에서 단순한 ‘애잔 불륜 로맨스’와는 달라진 지점을 보여주고 있어, 이 작품의 향후 스토리 역시 궁금하게 한다.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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