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무인양품은 2017년, 몇 년 전부터 구상해 오던 ‘오두막’을 상품으로 출시했다. 물론 일본 내에서만 판매하는 것이라 해외에선 ‘그림의 떡’이었지만, 화제성은 충분했다.

1인 가구가 살기 딱 좋은 작은 크기와 무인양품 특유의 심플한 디자인은 한국의 미니멀리스트들도 사로잡을 만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3월, 한국에서 ‘하우스비전-서울’이라는 이름으로 오픈 세미나를 연 무인양품의 디자이너 거장 하라 켄야는 ‘오두막’과도 또 다른 미래의 주거 양식 여러 가지를 제시했다. 하라 켄야뿐 아니라 ‘하우스비전-서울’에 참여한 20여명의 한국 기획위원들 역시 한국의 수도 서울이라는 공간의 특성을 반영한 미래형 주택의 전시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하라 켄야가 기획한 ‘하우스비전’ 프로젝트는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진행 중이며, 그 나라의 상황에 맞는 ‘로컬 문화’를 반영해 미래형 주택을 구상한다.

이 때문에 한국 기획위원들이 생각한 미래형 주택에는 도시 재생과 1인 가구 증가 속 커뮤니티의 필요성 등 다양한 관심사가 반영돼 있다. 무인양품이 현재 판매 중인 주택은 물론, 미래를 바라본 ‘하우스비전-서울’ 세미나의 전시작들과 함께 한국의 ‘하우스비전’ 기획위원들이 준비 중인 미래형 주택 양식을 엿본다. 

 

★300만 엔짜리 초미니 공간, 무지 헛(HUT)

지난해부터 판매를 개시한 ‘무지 헛’은 오두막이라는 의미답게 최소한의 생활 공간만을 제공하는 미니 주택이다.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평면도를 보면 실내 공간 9.1제곱미터에 3.1제곱미터의 베란다가 딸려 있는 가로 3.51m, 세로 3.83m의 사각형 집이다. 부엌도 화장실도 없이 오직 생활 공간만을 제공하며, 미리 만들어 둔 건축 자재를 조립해서 만드는 ‘프리패브’ 방식을 채택했다. 

 

'무지 헛'의 모습. (사진=일본 무인양품 공식 홈페이지)

 

상품설명에 따르면 값은 세금 포함 300만 엔(약 3천만원)이다. 무인양품 유라쿠초점에서 실물을 볼 수 있으며 일본 도쿄와 치바 등을 비롯해 건축이 가능한 지역들이 나와 있다. 하지만 해외 판매 계획은 없다고 명시됐다. 그럼에도 이 집이 공개됐을 때 한국에서는 “살아보고 싶다”, “미래에는 한국도 결국 저런 방식의 주택을 지향하게 될 것”이라는 온라인 반응이 다수 나왔다.

 

★무인양품의 다른 집들…’나무의 집’, ‘창의 집’, ‘세로의 집’

‘무지 헛’이 마치 무인양품에서 판매한 첫 번째 주택인 것처럼 화제를 모았지만, 사실 일본에서 무인양품이 집을 판매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로 꽤 오래됐다. 그 중 2004년 출시돼 국내에도 알려졌던 것이 넓이와 스타일이 모두 각각 다른 세 가지 집인 ‘나무의 집’, ‘창의 집’, ‘세로의 집’이었다. 이 집들의 가격은 ‘무지 헛’보다는 훨씬 비싸서, 1억원대 후반에서 2억원대 중반까지 다양했으며 ‘오두막’과 달리 부엌과 화장실까지 전부 갖춘 완전한 형태의 집이었다.

 

무인양품이 내놓은 '나무의 집'. (사진=일본 무인양품 공식 홈페이지)

 

프리패브 방식으로 짓는다는 점은 ‘무지 헛’과 동일했다. 모양이 정해져 있긴 하지만 내부 구조 변경이 자유로우면서 무인양품이 내놓는 가구들로 꾸미기에 최적화된 사이즈와 형태를 갖추고 있어 일본에서도 무인양품 마니아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무인양품은 여전히 이 집들에 대한 공식 홈페이지를 두고 모델 하우스 및 비용 안내를 하고 있다. 

 

★야구장 12개 규모의 대형 전시 'Co-DIVIDUAL' 

하라 켄야는 세미나에서 ‘집’에 대해 “헬스케어, 이동,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IOT, 빅데이터, 통신, 에너지 등 다양한 미래 산업의 교차로”라고 평하며 “인구 급감, 고령화, 1인 가구 급증, 인간 소외 등 당면한 과제를 진단하고 이에 대응하는 구체적인 라이프스타일 솔루션을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생각을 반영해 진행됐던 전시가 2016년의 'Co-DIVIDUAL'이었다.

 

Co-DIVIDUAL 전시의 전경. (사진=하우스비전)

 

Co-DIVIDUAL은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최소 단위의 사람들(1인 또는 2인 가구)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에 대한 담론을 담은 전시로, 모형이 아닌 실제 미래형 주택의 사례를 보여주기 위해 야구장 12개 규모의 넓은 공간에서 진행됐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현실은 인정하되, 이들이 어떻게 커뮤니티를 이뤄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줄지를 고민했다는 점에서 현재의 한국과도 연결고리가 분명하다. 

 

★'하우스비전-서울'의 또다른 미래형 주택들

이번 ‘하우스비전-서울’에서 무인양품은 고령화로 일손이 부족한 농촌을 위한 주택인 ‘테라스 하우스’를 제안했다. 농촌의 생활용품으로 실내 인테리어를 꾸민 사무실에서 젊은 사람들이 업무를 보며 농사 일도 도울 수 있게 한다는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위로부터 '테라스 하우스', '냉장고 하우스', '스파이럴 하우스'. (사진=서울디자인재단)

 

최고의 화제작은 택배회사 야마토홀딩스와 디자이너 시바타 후미에의 '냉장고 하우스(House with Refrigerator)'였다. 집을 비울 경우 물건 받기 힘든 1인 가구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대문 옆에 아예 냉장고가 설치돼 택배함 역할을 한다. 배달된 식품이나 약품 등을 상하지 않게 받되, 최첨단 보안시스템으로 밖에서 문 여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게 해 보안 문제를 해결한다.

또 파나소닉과 건축가 나카야마 요코가 설계한 '스파이럴 하우스(Spiral House)'는 사물인터넷 기술이 반영된 집으로, 달팽이처럼 돌돌 말린 원형의 하얀 벽이 스크린 역할을 해 집 안 어디에서든 온라인 쇼핑 및 영상 감상, 정보 검색 등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현재 준비 중인 한국식 미래형 주택은?

‘하우스비전-서울’에 따르면 한국의 기획위원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20여 명의 전문가들로, 서울이 직면한 과제인 고령화 시대, 도시 재생사업, 스마트 모빌리티 사업 등을 반영한 작품 발표와 전시를 준비 중이다. 

현재 구상되고 있는 작품은 14개 정도이다. 건축가 최욱의 80%의 미학을 담은 '선비의 집', 디자이너 오준식의 도시 재생을 위한 프로젝트 'Home Warehouse', 디자이너 김종범의 창문이 일하는 집 'Window House', 건축가 오상훈의 접히는 가벼운 집 'Paper House', 건축가 박진희의 아파트유닛 주거의 실질적 대안을 탐구한 '마이크로 공동체', 건축가 박관주의 움직이는 집 'Mobile Garage' 등은 제목만 들어도 기대가 된다.

 

송파 마이크로하우징 전경. (사진=SsD)

그 중 ‘마이크로 공동체’를 준비 중인 건축가 박진희는 이미 2014년 서울 송파구에 마이크로 공동체의 라이프스타일을 시도한 ‘송파 마이크로 하우징’을 지은 바 있다. 지하 1층, 지상 5층의 주거 겸 상업시설로, 법정 최소 크기인 12제곱미터의 주거 공간이 여러 세대 합쳐진 형태의 건물이다.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의 띠를 꼬아 건물을 둘러싼 외관부터 매우 특이하며, ‘하우스비전-서울’ 전시에서 준비 중인 미래형 주택에 대한 기대감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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