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극장가는 유독 통통 튀는 영화가 넘친다. 그 중에서도 엉뚱한 유머와 심도 깊은 메시지로 무장한 블랙코미디 ‘머니백’은 백미다. 영화는 일곱 명의 서로 다른 사연을 가진 캐릭터가 단 하나의 돈가방을 둘러싸고 벌이는 코미디 추격극을 담고 있다. 그 유쾌함에 젖어 영화를 감상하고 나면 이 멋스런 디제시스를 주조해낸 감독에 대한 궁금증이 샘솟는다.

 

묘한 호기심을 가득 안은 채로 ‘머니백’ 허준형(43) 감독을 마주했다. “오랜 시간 준비해온 작품”이라고 고백하는 그의 말에는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무거운 현질에 대한 짙은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더불어 오랜 준비기간 끝에 드디어 관객들 앞에 작품을 선보인 신인감독의 마음가짐도 느껴졌다.

 

Q. ‘머니백’ 시나리오를 아주 오래 동안 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만큼 관객들 앞에 선보이는 소감도 남다를 것 같다.

A. 생각보다는 덤덤하다. 하도 오랫동안 준비해왔기에 그런 것 같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수십 번도 더 관객들에게 인사를 드렸다.(웃음) 원래 ‘머니백’의 프로토타입은 10년도 더 전에 완성됐다. 29살에 첫 상업영화를 준비하다가 엎어지면서 심적으로 가장 피폐했을 때 시나리오를 썼다. 그러다보니 극 중 상황에 내 입장이 많이 담겨있다. 최근에 정치‧사회적 분위기가 변하면서 디테일은 70% 이상 바뀌었지만 기본적인 메시지는 같다.

 

Q. 십여 년 만에 드디어 영화감독으로 데뷔를 하게 된 것인데, 메가폰을 들면서 걱정이 되는 건 없었나? 처음 현장에서 사인을 냈을 때의 느낌이 궁금하다.

A. 그 지점도 개봉할 때의 소감과 비슷하다. 준비기간이 길어지면 온갖 생각을 하는데, 그때 이미 ‘촬영 때 어떻게 해야지’라는 것도 생각을 해놨다. 오죽하면 박희순 배우가 “당신처럼 안 떠는 신인감독 처음 본다”고 할 정도였다.(웃음) 또 우리 영화가 예산이나 시간이 넉넉한 작품은 아니었다. 배우들도 많이 나오다보니 스케줄이 촉박했다. 아무리 신인이라도 감독이 버벅거리고 망설이면 안 된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 마음가짐이 수월한 환경을 만들어준 것 같다.

  

Q.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 ‘머니백’에 대한 기대가 적었다. 슬랩스틱이나 콩트류의 코미디물일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는데, 생각보다 세련된 유머가 이어져 놀라웠다. ‘웃픈’ 상황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능력이 신인답지 않다.

A. 기존 많은 코미디영화를 보면 캐릭터들이 먼저 바보처럼 웃어버리면서 관객도 따라 웃게 만든다. 어찌 보면 쉬운 웃음유발 장치인데, 개인적으로는 조금 식상해보였다. 그래서 배우들에게 “시치미를 떼고 코미디 하자”고 제안했다. 7명의 캐릭터가 돈가방을 두고 투닥투닥하는 상황자체가 아이러니한 재미를 유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코미디와 조금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전광렬, 김무열 배우를 캐스팅하는 게 적합했다. 그게 오히려 관객분들의 웃음을 자극하는 것 같아서 놀랍기도 했다.

 

Q.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한때 코미디언을 꿈꿨다”고 말했던 게 기억이 난다. 그게 영화 속 유머코드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을까?(웃음)

A. 거기까지는 모르겠다.(웃음) 예전에 대학을 다닐 때 개그서클에 들어가려 시험을 본 적이 있다. 서울예대 개그맨의 산실이라 불리는 서클이었는데, 지원한 12명 중에 2명이 떨어졌다. 그런데 그 2명이 나랑 내 친구다.(웃음) 둘이 팀이었는데 똑 떨어졌다. 아마 그때 붙었으면 개그맨을 하려고 했을 거다. ‘머니백’ 자체는 표면적으론 코미디지만, 내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슬픔을 보여주고자 하는 목적이 컸다. 유머에 대한 부분은 시나리오 작업 당시 치열한 고민에 대한 칭찬으로 듣겠다.

  

Q. 메시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덧붙여 질문을 해보자면, 참으로 지독하게 현실적이다. 취업에 실패하는 백수나 갑질당하는 택배기사 등등은 영화 속에선 재밌는데, 우리 사회의 씁쓸한 단면이다. 이 캐릭터들을 만든 감독이 조금은 염세적인 사람인가 싶었다.

A. 염세적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속 상황은 현실에서 많이 가져왔다. 사실적인데 영화로 보니까 작위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게 조금 우스웠다. 민재가 자살을 시도하는 모습이라던지, 택배 기사(오정세 분)가 고객에게 간장게장을 뒤집어 쓰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데 실제 현실이다. 우리가 생각해볼만한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Q. 그런 부분에 대해서 일각에선 지나치게 폭력적이라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A. 그건 개인적으로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지점이다. 수위를 조절한다고 했는데 실패한 것 같다. 캐릭터의 감정에 충실하려 집중하면서 폭력에 대한 생각을 놓쳤다. 다음 작품을 하게 된다면 조금 더 그런 부분을 신경 써야 되겠다고 결심했다.

  

Q. 이제 입봉작을 내면서 영화감독으로서의 첫 발을 뗐다. 어떤 감독으로 각인되고 싶은가?

A. 사실 감독으로서 가장 힘든 건 시나리오를 쓰는 일이다. 쓰면서도 ‘다음엔 안 써야지’ 생각하는데, 어느 샌가 다시 쓰고 있다.(웃음) 그런데 생각해보면 시나리오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면 영화도 그에 비례해 잘 나오는 것 같다. 계속 내가 쓴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아직 보여드릴 이야기가 많다. 관객분들이 나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감독’으로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Q.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는 말이 기대감을 키운다. 앞으로의 포부도 함께 들어볼 수 있을까?

A. 데뷔가 늦어지면서 시나리오를 참 많이 썼다. 그 중에 애착이 가는 게 두 편인데 하나는 ‘머니백’이고, 또 한 편은 멜로다. 의외로 제가 이와이 슌지 감독을 좋아한다.(웃음) 막연히 다음엔 눈물 뚝뚝 떨어지는 멜로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 ‘머니백’ 개봉이 정해지고 나서는 지금 은퇴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하나 완성하니까 욕심이 난다. 조금 더 좋은 작품으로 꼭 다시 찾아뵙고 싶다.

 

사진 지선미(라운드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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