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예진은 흥행 불패 신화를 써내려온 충무로 대표 여배우다. 올해 들어 의외다 싶은 선택을 해오고 있다. 한중 합작 액션영화 ‘나쁜 놈은 죽는다’에서 살벌한 미스터리 우먼, 스릴러 ‘비밀은 없다’(6월23일 개봉)에선 중학생 딸을 둔 정치인의 아내, 8월 개봉하는 시대극 ‘덕혜옹주’에서는 조선의 마지막 황녀를 연기한다. 익숙함에서 벗어나 낯선 도전을 게을리하지 않는 그녀와 눈을 맞췄다.

 

 

■ 극한의 감정표현...매신 감독과 논쟁

‘비밀은 없다’의 연홍은 인기 앵커 출신 종찬(김주혁)의 국회의원 선거운동을 물샐 틈 없이 내조하는 주부이자 중학교 3학년생 딸을 둔 엄마다. 딸이 실종된 뒤 집요하게 범인을 좇는다. 모성애, 혼돈, 절망과 분노 등 극한의 감정이 쏟아진다. 이뿐이랴. 긴장 넘치는 스릴러부터 코미디, 액션, 판타지 연기를 종횡무진 오간다.

“딸을 잃어버린 엄마 이야기는 익숙하지만 딸의 실종과 관련된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이 무척 흥미로웠어요. 어떤 영상으로 완성될지 궁금했고요. 전에도 새로운 도전을 많이 했으나, 과거와는 다른 새로움이랄까. 영화를 보니 누구나 다 공감하기 힘든 지점이 있기에 논쟁을 일으키는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캐릭터 접근이 과거와 달랐다. 점층적으로 감정을 쌓아가다가 폭발시켰다면, 연홍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감정이 복합적으로 보여져야 했다. 걱정스러운 대사톤으로 말하고 싶었는데 이경미 감독은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를 원했다. 울어야 할 때 웃기를 요구했다.

“감독님과 계속 다른 시각이라 매신 논쟁의 연속이었어요. 하지만 이 영화의 색깔은 감독님의 개성이라고 봤어요. 뜻을 따라야 저 역시 새로운 연기를 보여줄 수 있잖아요. 제가 납득하고 이해되는 연기를 한다면 계속 비슷해질 수밖에 없으니까. 감독님을 믿고 따르다보니 어느 순간, 감독님이 원하는 연홍이 돼가고 있더라고요. 거기서 묘한 희열을 느꼈죠. 그때부터 자유롭게 몰입할 수 있었어요.”

 

 

■ 부담 없는 모성애 연기...친숙한 파트너 김주혁

연홍이란 여성 캐릭터는 정형화된 인물이 아니다. 아름답고 단아한 외모지만 약간의 백치미가 있으며, 뭔가에 집착할 때는 ‘감’이 매우 빠르다. 선거운동을 위해 행복하게 김밥을 말고, 유세 때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홍보송을 부르며 춤을 출 정도로 적극적이다.

“독특한 여자예요. 어릴 때 꿈이 영부인이었을 만큼 욕망 많은 사람이죠. 종찬을 내조하면서 대리만족을 많이 했을 거라 여겼어요. 이렇게 큰 딸을 둔 엄마 역은 처음인데 모성애 연기를 어렵게 접근하지 않으려 했고요. 저에 대한 엄마의 마음, 친언니가 조카를 키우는 감정, 주위 사람들의 모습이 많은 영향을 줬어요.”

2008년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연애를 거쳐 결혼에 골인하는 남녀 주인공을 맡았던 손예진 김주혁이 8년 만에 다시 부부 호흡을 맞췄다. 더욱이 이번엔 영화 초반부터 부부다.

“첫 촬영 때 전혀 어색하지를 않았어요. 그게 쉽지 않은데. 보통 배우들은 호흡 맞추는데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주혁 오빠는 여전히 착하고 배려심이 많아요. 예전보다 더 유머러스해졌고요. ‘아내’ 때는 불쌍한 공처가 남편이었는데 이번엔 정반대로 냉정하면서 섹시한 모습을 자기 옷을 입은 것 마냥 표현하더라고요. 너무 잘 어울렸어요. 오빠가 연기면에서 칼을 갈고 있었나봐요.(웃음)”

 

 

■ 3색 장르·캐릭터 “다행”

‘비밀은 없다’ 전후로 의미 있는 작품을 배치했다. 강제규 감독이 공동 제작을 맡고, 중국감독 손호, 대만 스타 진백림이 출연한 ‘나쁜 놈은 죽는다’의 국내 흥행은 저조했다.

“원래 국내 개봉 없이 철저하게 중국관객을 위한 영화라 그 프로젝트에 참여했어요. 많은 분들이 ‘나쁜 놈은 죽는다’의 아쉬움을 말하시는데 문화적 차이, 외국작품이라는 이유가 있을 거예요. 저한테는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도전해보자란 마음에 선택했고요. 앞으로 중국 쪽에서 더 활발하게 활동하지 않을까 싶어요.”

허진호 감독이 연출한 대작 ‘덕혜옹주’는 손예진의 첫 실존인물 연기를 감상할 수 있는 영화다. 더욱이 비운의 황녀다. 지난 3월 촬영을 마쳤다.

“아직도 여운이 커요. 역사적으로 가슴 아픈 여인의 일생이라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고민이 커 다큐멘터리, 관련 서적을 섭렵하며 공을 들였어요. 무조건 잘 해야만 했어요. 배우 입장에서 여러 모로 부담이 컸죠. 다행스러운 건 ‘나쁜놈’ ‘비밀’ ‘덕혜옹주’가 너무 다른 장르, 역할이라는 점이에요.”

 

 

■ “관객과의 공감이라는 강박 덜어내”

최근작들을 훑어보면 밝고 화사하기보다 깊고 어두운 컬러 일색이다.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영화에 출연해도 손예진의 캐릭터는 코믹과는 반대이곤 했다.

“어렸을 때부터 보이는 모습이 다가 아닌, 깊은 이야기나 어두운 이야기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배우들의 경우 고통스럽고 고민하면서 하는 연기에 끌리는 게 분명히 있고요. 행복하고 웃기는 작품의 미학도 충분히 있지만 삶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지점을 연기하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이젠 밝은 것도 해보고 싶네요. 드라마 대본을 몇 편 검토하는 중이에요.”

작품을 선택하고, 캐릭터를 표현하는 마인드의 변화가 어슴푸레 읽혀진다.

“이제까지는 관객의 공감을 늘 염두에 뒀어요. 같이 슬퍼하고 즐거워할 수 있도록 연기했는데 이번 역할에선 달랐어요. 어떤 측면에선 개선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게 흥미로운 점이었고요. 뭐랄까...두려움이 덜어지면서 자유로워졌어요.”

 

P.S. 극중 정치인의 아내를 경험했다. 현실에서 여배우 최명길 심은하는 정치인의 아내로 살아가고 있다. 미혼인 손예진에게 정치인 남편감은 어떠냐고 묻자 “이번에 해보니...사양할래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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