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극장가에 불어오는 여성감독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최근 개봉한 저예산영화 ‘우리들’을 비롯해 곧 개봉을 앞둔 ‘비밀은 없다’ ‘삼례’ ‘우리 연애의 이력’이 모두 여성들의 작품이다. 그동안 임순례, 방은진 감독을 제외하고 크게 주목 받지 못했던 국내 여성 감독들이 특유의 섬세하고 깊이 있는 시각으로 시네필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우리들 - 윤가은 감독

지난 16일 개봉한 ‘우리들’은 초등학교 4학년 교실을 무대로 주인공 선이(최수인)의 외로움, 불안함을 차례로 보여주며 천천히 걸음을 떼는 영화다. 세밀한 연출을 따라 선이의 감정을 따라가는 어른 관객들은 아직 우리 안에 있는  기억과 감정이 서로 뜨겁게 공명함을 느낀다. 그리고는 살포시 알 수 없는 감각에 젖어든다.

감독의 10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가 특별한 점은 어린 여자아이들이라는 이제껏 한국영화엔 드물었던 주인공을 소환한데 있다. 전형적으로 그려지곤 했던 순수하고 어리숙한 ‘어린애’의 모습이 아니라 생생한 날 것을 관찰했다. 독창적인 감각을 인정 받아 제6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러닝타임 1시간 34분. 전체 관람가.

 

비밀은 없다 - 이경미 감독

‘비밀은 없다’는 여성 감독 특유의 느낌을 바탕으로 그간 한국 영화의 전형성에서 과감히 탈출을 시도한다. 한 유력 국회의원 후보(김주혁)의 딸(신지훈)이 선거를 앞두고 실종된다. 딸을 찾아나선 엄마(손예진)는 예상치 못했던 딸과 남편의 비밀과 맞닥뜨린다. 딸을 찾고 싶은 엄마의 안타까운 감정을 따라 갈 준비를 하던 관객들은 예상치 못했던 조류와 암초에 갇힌다.

연출을 맡은 이경미 감독은 전작 ‘미스 홍당무’에서 보여줬던 색다른 감성을 또 한 번 스크린에 옮겨 모성애와 스릴러를 불협화음 연주 스타일로 엮어낸다. 특히 소녀와 어른들의 세계를 탐구할 때 보이는 감각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감탄을 자아낸다. 러닝타임 1시간 46분. 청소년 관람불가. 23일 개봉.

 

삼례 - 이현정 감독

영화감독 이승우(이선호)는 무언가 “미친 힘에 의해 엮인 것”처럼 삼례를 찾지만, 허기를 채우기 위해 프랜차이즈 빵집을 찾는 어쩔 수 없는 도시 남자다. 하지만 언제나 여성적 화법을 고민해 왔다던 이현정 감독은 희인(김보라)이란 캐릭터를 통해 인간 본연에 대해 간접적 분위기와 결을 제시하며 문명을 벗어던진 승우를 조금씩 탐구하기 시작한다.

이 감독은 스크린 속에 자연의 모성적 특성을 담담히 소묘한다. 어렸을 적 외갓집에서 발견한 닭 도축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차용했다고 전해진다. 이 독특한 이미지로 잔잔하고 고요한 삼례의 풍경에 잠시 도심의 소음을 잊게 된 관객들은 영화의 분위기에 침윤하며 스스로의 내면을 탐구하며 힐링을 얻는다. 러닝타임 1시간 34분. 15세 관람가. 23일 개봉.

 

우리 연애의 이력 - 조성은

아역 배우 출신의 우연이(전혜빈)와 조감독 오선재(신민철)은 헤어진 연인이지만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계속 만난다. 그런데 그들의 시나리오가 영화화되면서 당연히 주인공 역을 맡으리라 생각했던 우연이는 오디션을 보라는 말을 듣고 크게 실망한다. 이별했지만 헤어지지 못한 우리네 연애를 다소 극단적으로 표현해 눈길을 끈다.

'우리 연애의 이력'은 조성은 감독의 이력에서는 꽤나 실험적인 작품이다. 이전 단편영화들은 무성영화('다시 찾은 크리스마스')이거나 거의 대사가 없었다('숲의 딸들'). 그에 비해 이번 영화는 최근 영화계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대사가 맛깔난 로코다. 특히 저작권을 주장하는 전혜빈의 연기는 통통튀는 대사에 어우러져 웃음을 자아낸다. 러닝타임 1시간 41분. 15세 관람가. 2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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