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배우 지현우(34)는 ‘국민 연하남’의 이미지다. 2004년 드라마 ‘올드 미스 다이어리’로 연상녀 예지원에게 직진하던 그의 모습이 너무도 강렬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20대의 풋풋함을 벗고 30대 베테랑 연기자가 된 그는 오는 25일 개봉하는 영화 ‘살인소설’(감독 김진묵)로 새로운 도약을 예고했다.

  

‘살인소설’은 시장 보궐선거의 후보로 지명돼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맞은 경석(오만석)이 유력 정치인인 장인의 비자금을 숨기려고 들른 별장에서 수상한 청년 순태(지현우)를 만나 충격적인 사건에 휘말리는 24시간을 그린 서스펜스 스릴러다. 지현우는 말 한 마디조차 믿을 수 없는 의문스러운 사내 순태 역을 맡아 연기 변신을 시도한다.

“‘살인소설’은 큰 규모의 작품은 아니에요. 요즘 인기 있는 스펙터클한 영화라기보단 굉장히 연극적이죠. 순박한 시골사람들이 나오는데, 그 이면의 무서움이 묘사돼 참 재밌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시골 양아치 법대로, 똑같이 차로 칠까?’라는 부분이요.(웃음) 예전에 제 이미지였으면 할 수 없을만한 대사인데, 막상 해보니까 약간 희열도 느껴지고 재밌더라고요. 순태의 그런 면면을 찾아보면서 캐릭터를 구성해가는 소소한 재미가 있었죠.”

지현우가 맡은 순태 역은 의문스러움이 가득한 인물이다. 경석이 차로 치고 지나간 누렁이로 수육을 삶아 모른 척 대접하질 않나, 낫을 들고 “5000만원으로 합의 보시죠?”하며 조곤조곤 협박을 하기까지 한다. 늘 ‘스윗가이’로만 여겨졌던 지현우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면모였다. 그 또한 자신의 연기가 꽤나 낯설었다고 고백했다.

“저도 무척이나 어색했어요. 순태는 러닝타임 내내 어두운 곳에서만 있는 인물이잖아요. 근데 제가 20대 때 맡았던 역할들은 늘 여배우들과 함께 밝은 곳에만 있었거든요.(웃음) 그런데 어느 순간 제 주변에 남배우들만 많더군요. 어두운 곳에서 음흉하고 웃는 제 모습이 딱 스크린에 비치는데 낯설었어요. 대사도 ‘좋아한다’는 일차원적인 말이 아니라, ‘개가 개를 먹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라는 식으로 의미를 꼬아서 하잖아요. 그렇게 변한 제 모습에 조금은 쾌감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이 같은 변신은 20대 스타들이 30대로 넘어가면서 겪는 통과의례 같은 과정이다. 하지만 문득 지현우 스스로 과거 ‘연하남 이미지’에 거부감이 들었던 건 아니었는지 궁금증이 일어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그는 “그런 이유보단, 배우로서 성장하는 일면”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변신이라는 것에 굳이 목적을 두고 출연한 건 아니에요. 물론 소속사 입장에서는 제 연기폭을 넓혀서 다양한 역할을 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시겠지만요. 제 개인적으로는 과거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역할을 이제는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예전에도 무겁고 센 역할들이 들어오긴 했어요. 그때는 나완 너무 다른 배역에 대해 공감을 잘 못했던 것 같아요. 자연히 그런 연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게 됐죠. 그런데 이제는 30대 중반에 들어서고 나니, 조금씩 제 시야가 넓어진 것 같아요. 어떤 배역을 만나도 예전보다는 더 깊게 생각할 수 있게 됐죠.”

대개는 한 살씩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만, 지현우는 “30대 모습이 좋다”고 전했다. 스무 살 때 KBS 공채 20기로 배우 생활에 입문한 후 꼬박 15년이 흐른 지금, 과거와 비교해 달라진 지점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는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을 이어갔다.

“솔직히 ‘올드미스 다이어리’나 ‘매리대구 공방전’ 할 때가 지금보다는 마음이 편했던 것 같아요. 늘 막내니까 당돌하게 연기에 임할 수 있었지요. 연기를 잘 못해도 귀엽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예전보다 패기는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웃음) 이제는 ‘열심히’ 보다는 ‘잘’ 해야 하는 때가 된 것 같아요. 그만큼 책임감도 크지만 일에 대한 애정이 더 늘었어요. 제것만 하는 게 아니라 주변 분들을 더 챙길 만큼 시야가 넓어졌죠.”

 

“연기에 대한 책임감이 늘었다”고 말한 지현우는 ‘살인소설’ 뿐 아니라 최근 ‘송곳’ ‘도둑놈, 도둑님’ ‘원티드’ 등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에도 다수 출연하고 있다. 영향력이 큰 배우로 성장한 만큼 사회에 대한, 팬들에 대한 책임감도 부쩍 느끼고 있는지도 물었다.

“‘송곳’ 이후에 그런 메시지를 품은 작품들이 많이 들어오는 것 같아요. 덕분에 좋은 작품을 계속하게 됐고, 이번 ‘살인소설’까지 만나게 됐죠. 작품의 메시지에 대한 책임감도 물론 느끼고 있어요. 어느 덧 제가 팬 분들을 만난지도 벌써 13년이 됐잖아요. 이정도 키워주셨으면 이젠 되돌려드려야 하지 않나 싶어요. 아직도 제가 철없는 역할을 맡으면, 팬분들이 부끄러워하실 것 같아요. 좋은 작품과 좋은 연기로 보답해드리는 것. 그게 제 책임감이지요.”

하지만 아직도 많은 팬들은 지현우표 멜로 작품을 기대하고 있다. 그들을 대신해 “다시 예전 같은 멜로는 찍고 싶지 않은가”라고 물었다. 이 물음에 싱긋 웃은 지현우는 “당연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제가 사랑 이야기는 좀 오래 쉰 것 같아요. ‘송곳’은 참 좋은 작품인데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이젠 저도 가볍게 볼 수 있는 것도 함께 하고 싶어요. 이젠 아마 20대 때완 다르겠죠. 최근에 감우성 선배님이 나오신 ‘키스 먼저 할까요’를 재밌게 봤어요. 정말 그 캐릭터에 빠져서 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더라고요. 물론, 그건 저보다 더 높은 내공의 배우분들이시니까 가능한 것 같고요. 저도 언젠간 그런 감성의 멜로를 해보고 싶어요.”

 

이제 ‘연하남’ 이미지의 스타에서 진정한 배우로 자리매김한 지현우는 이제 곧 극장가를 찾아올 ‘살인소설’ 예비 관객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영화 제목 때문에 많은 분들이 공포영화라고 생각하시더라고요. 근데 ‘살인소설’은 공포영화가 아니에요. 오히려 유쾌함을 가득 품고 있지요.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에 와서 봐주셨으면 해요. 배우들, 스태프들 모두 열정을 가지고 유쾌하게 촬영했습니다. 그 기운이 관객분들에게도 전해질 거라고 믿고 있어요. 또 굉장히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마 다른 영화에선 느끼기 힘드셨던 재미도 가져가시지 않을까해요.”

 

사진=스톰픽쳐스코리아 , 페퍼민트앤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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