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승호가 또 한번 '사극'으로 스크린에 출격한다. 7월 6일 개봉하는 영화 '봉이 김선달(감독 박대민)'에서 그는 조선 팔도를 누비는 사기꾼 김선달로 연기 변신을 꾀했다. 22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유승호를 만났다. 언제 아역이었냐는듯 한껏 성숙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 성장기를 겪고있는 배우의 두려움과 열정을 하나둘씩 꺼내놓았다. 

 

유쾌한 사극 액션 속 '섹시' 김선달

영화 '봉이 김선달'은 유명한 대동강 설화를 재해석한 코믹 퓨전 사극이다. 성인이 된 이후 처음으로 도전하는 코믹 영화다. 그동안은 멜로, 장르물 등 진중한 연기가 필요한 작품들로 필모그래피를 채웠다면, 이번 영화는 다양한 캐릭터가 혼재하지 않았던 연기 경력에 색다른 점을 찍어줬다. 

"저는 항상 어떤 장르든지 다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나이가 어려서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죠. 물론 지금은 어렸을 때보단 넓어지긴 했지만요. 코믹이 너무 하고 싶었어요. 그동안 너무 우울한 운명을 지닌 캐릭터들만 연기해 왔잖아요"

능글맞은 캐릭터의 옷을 입어야 했다. 조선의 젊고 유쾌한 사기꾼 김선달은 당대의 무시무시한 거물에게 대동강까지 팔 정도의 여유를 지녔다. 김선달 역에 유승호를 낙점한 감독의 요구는 '섹시한' 김선달이었다. 유승호의 낯선 모습에 여성팬들은 자지러질 수 있을까.

"사실 저는 섹시함과는 거리가 멀거든요. 어떻게 하면 섹시해질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보신 분들은 어떻게 느끼셨을지 모르겠지만, 주모를 꼬시는 장면에선 결의를 다졌죠. 아, 여기서 보여줘야 돼! 그래서 촬영 전에 낮게 깔린 목소리라든지, 느끼한 대사, 얼굴을 쓰다듬는 등 제가 해보지 못했던 행동들을 많이 연습했던 것 같아요"

 

현장 분위기만큼은 '봉이 김선달'이 甲

현장은 즐겁고 밝은 에너지가 만연해 있었다. 초반엔 고창석, 조재현 등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배우들을 마주할 때마다 큰 긴장감을 안아야 했다. 배우 대 배우의 입장이라 생각하고 편안한 마음가짐을 가지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조재현 선배님 앞에만 서면 너무 긴장되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제가 떨고있다는 걸 아셨는지, 카메라만 멈추면 장난도 쳐주시고 이야기도 많이 걸어주시더라구요. 고창석 선배님과는 아역 시절 '부산'이란 영화를 함께 한 적 있는데, 그 당시엔 선배님이 굉장히 무서웠어요. 이번 작품을 통해 많이 친해지고 편안해졌죠. 정말 아기자기하고 귀여우세요"

김선달의 껌딱지 견이 역을 맡은 시우민과는 비교적 또래여서 그런지 급격히 친해졌다. 아이돌이라는 직업 때문에 베일에 가려진 인물처럼 느껴졌으나, 친해지고나니 그 내막은 달랐다.

"아이돌이라 후광이 번쩍거릴줄 알았죠. 하지만 촬영장에서의 시우민 형은 트레이닝 복에 슬리퍼를 신은 채 '승호야 왔어?'하며 인사하는 평범한 동네 형이었어요. 연기 할 때도 딱히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일단 형 외모가 굉장히 동안이잖아요. 실제로 제 옆에서 형님 형님 거리면 진짜 저보다 어리고 귀여운 동생처럼 느껴졌죠"

 

나는 재미없는 사람

'봉이 김선달'을 택한 이유는 순전히 '재미'였다. 캐릭터가 자신과 정확히 반대되는 유쾌한 사기꾼. 확실히 '훈남' 이미지가 짙은 유승호는 스스로를 코믹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했다.

"망가지는 걸 꼭 해보고 싶었어요. 말로 웃길 수 없다면 몸으로라도 재미를 더 해보자 싶었죠. 이왕 하는거, 어중간하게 망가지지 말고 나를 한번 놓기로 했어요. 우스꽝스런 뻐드렁니를 껴보기도 하고, 여장도 시도했죠. 여장할때 CG를 공들여 했다고 들었어요. 틴트를 바르고 피부를 밝게 해도 제 남성성을 숨길 순 없겠더라고요"

배우라는 직업으로 인해 이성 관계조차 심심하다.

"여자와 남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연애하는 게 아니라면 이성과 굳이 가깝게 지내는 편도 아니구요. 애초에 문제 생길 거리를 만들지 말자는 주의예요. 몸을 사리다보니 친구들하고도 건전하게 놀아요"

 

또 다시 사극 도전, 많은 고민

전작인 '조선마술사'와 개봉 간격이 길지 않은 시점에, 또 한 번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으로 관객을 만나게 됐다. 두 영화에서 맡았던 캐릭터는 '유쾌한 마술사'와 '사기꾼'이라는 점에서 꽤 유사하다. '조선마술사'의 흥행이 저조했던지라, 이번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도 마음이 무겁다.

"작품이 잘 될때보다 안 풀리는 경우에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저번엔 정말 많이 힘들었거든요. '밤을 새가며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는데, 왜?'라는 생각들에 사로잡혀서 뭘 해도 안 될것 같았어요. 이번 영화가 개봉하면서도 사람들 앞에 서고 싶지 않았어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마음을 붙잡으려고 하는데, 사실 그게 잘 안돼요"

 

공부, 여행… 연기 외에도 생겨나는 소망들

배우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학 진학은 포기하게 됐다. 가끔은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괜히 폐만 끼칠 수 있단 생각에 접었다. 그래도 무언가를 배운다는 건 언제나 흥미롭다. 한때는 에스파냐어를 독학했고 지금은 독일어를 배우고 싶다.

"언어라는 게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혼자 에스파냐어를 공부한다고 엄마한테 말씀 드렸더니 차라리 일본어, 영어, 아니면 중국어 중에 하나를 하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하지만 그쪽은 안땡겼죠. 독일어 같은 경우엔 특이한 숨소리가 너무 멋있고 듣기 좋아서 관심이 가구요"

언어 이야기에, 여행을 갔다온 적 있냐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돌아오는 답변은 의외였다. 한국을 떠나 타지로 나가본 경험은 싱가폴 여행 딱 한번 뿐이란다.

 

국민 남동생의 뼈 아픈 성장

2000년 아역배우로 데뷔했다. 16년이나 지난 지금의 나이는 아직도 스물넷. 연기를 하면서 겪게 되는 시련을 완전히 떨칠 수도 없는 나이다. 아역 시절부터 성장을 지켜봐온 대중의 기대가 가끔 부답스럽긴 하지만, 아직까진 연기가 좋기만 하다.

"예쁜 아이 선발대회에 사진을 재미로 보냈다가 카탈로그를 찍게 됐고 CF, 드라마, 영화 등 줄줄이 일거리가 들어와 계속 하게 됐죠. '집으로'가 성공을 거둔 뒤에는 쭉 연기를 해왔는데, 때로는 이 일이 제게 아픔을 주기도 해요. 하지만 현장에 있을 땐 정말 즐겁고 행복하다는 걸 느껴요"

 

 

사진 이완기(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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