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기 드라마에 등극한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밥누나)’에 아찔한 장면이 등장한 적이 있다. 

여주인공 진아(손예진)의 전 남자친구 규민(오륭)이 진아를 억지로 차에 태운 채 도로를 질주한다. 겁에 질린 진아가 차를 세우라고 말하지만 규민은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그 때 진아의 행방이 궁금해진 현 남자친구 준희(정해인)이 규민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고, 여기에 놀란 규민이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차는 옆 차선의 맞은편 차와 충돌할 뻔하다가 겨우 멈춘다. 차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이마를 다친 진아가 규민의 뺨을 때리며 화를 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드라마 속 일이지만, 실제로 이러한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리얼하게 그려질 수 있었던 장면이다. 사실 실제 상황이라면 결과가 더 나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등골이 서늘해지기도 한다.

그럼 우리는 ‘내 일이 될 수도 있는’ 데이트 폭력의 심각성과 그 대처법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전 남자친구의 차에 탄 채 공포에 질린 진아(손예진)의 모습. 사진=JTBC

 

★사회적 관심 반영, 드라마 속 줄 잇는 ‘데이트 폭력’ 

‘밥누나’ 뿐 아니라 요즘 대중이 즐겨보는 드라마에서 그려진 데이트 폭력 묘사에는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2016년 중앙대 성평등위원회는 한 세미나에서 남성이 여성을 억지로 벽에 밀치거나 침대에 넘어뜨리고 신체적 접촉을 시도하는 장면 등이 로맨스로 포장돼 ‘데이트 폭력’을 미화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몇 년 사이 데이트 폭력이 꾸준히 사회적 관심사가 되면서 로맨틱함과는 전혀 관계없이, ‘데이트 폭력’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장면들이 드라마들에 많이 등장했다. 

 

데이트 폭력을 당하는 딸을 보고 분개한 아버지의 모습을 그린 tvN '라이브'. 사진=tvN

 

주인공들이 연인 관계는 아니지만, 남녀 사이의 무자비한 폭행이 등장해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던 tvN ‘나의 아저씨’나, 딸이 남자친구에게 데이트 폭력을 당하는 장면을 보고 분개하는 아버지를 그린 tvN ‘라이브’의 한 장면이 대표적이다.

또 JTBC ‘청춘시대’에서는 이별 선언을 받아들이지 못한 전 남자친구에게 감금과 폭행을 당해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되는 여성이 등장해 아주 심각한 수준의 데이트 폭력을 그리기도 했다. 

 

★구세주가 있는 드라마, 피범벅 된 현실

드라마와 현실의 차이는 분명하다. ‘밥누나’에선 현 남자친구가, ‘라이브’에선 경찰관 아버지가 데이트 폭력에서 피해자를 구해줬지만 현실에서는 그러기 힘들다. 

불과 얼마 전 ‘부산 데이트폭력’ 사건에선 겉옷이 다 벗겨진 피해자가 전 남자친구에게 짐짝처럼 끌려가며 폭행당하는 장면이 대중에 공개돼 충격을 줬다. 당시 피해자는 한 인터뷰에서 “가해자를 만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의도적으로 나를 집 밖으로 나오게 유인하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해 더욱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SBS '궁금한 이야기 Y'에서 다뤄진 부산 데이트 폭력 사건. 사진=SBS

 

또 지난해에는 한 여성이 서울 송파구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 남자친구에게 흉기로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최악의 데이트 폭력 사건이 벌어진 바 있다. 

해외에서도 데이트 폭력은 매우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2009년에는 유명 가수 크리스 브라운이 여자친구이며 역시 가수인 리한나를 주먹으로 가격해 보호 관찰과 접근금지 명령을 받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밥누나’ 진아가 해선 안 됐던 일

끔찍한 현실의 데이트 폭력 사건들을 보면, 드라마 ‘밥누나’에서의 진아(손예진)가 하는 행동들은 언뜻 일상적으로 보이지만 매우 위험하다. 

진아는 분개한 나머지 비정상적으로 자신에게 집착하는 전 남자친구의 집에 혼자 찾아가 몸싸움을 벌인 적이 있다. 또 휴대폰을 비롯해 비상연락수단조차 없는 상황에서 전 남자친구가 운전하는 자동차에 무방비로 타기도 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진아(손예진)가 전 남자친구와 다투는 장면. 사진=JTBC

 

사실 ‘밥누나’의 진아 외에도 드라마에서 심각한 데이트 폭력에 해당되는 일을 당하고도 심각한 상황까지는 가지 않은 여주인공들이 많다. 이들에 대해서 “재수가 좋아서 살아남은 것”이라는 시청자들의 평가가 뒤따랐다. 

실제로 데이트 폭력으로 숨진 여성들 역시 마치 드라마 속 진아처럼 ‘최악의 상황’은 예상하지 않고 있다가 당한 경우가 많다. 또한 그들의 관계 역시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설레는 연애로 시작했다는 점 역시 간과해선 안 될 일이다. 

 

★미비한 처벌, 실제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은?

데이트 폭력은 사실 가족 관계보다도 더욱 느슨하게 여겨지는 연인 관계, 그것도 내밀한 남녀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이어서 쉽게 밖으로 드러내기 힘든 문제다. 처벌 또한 쉽지 않다. 

현실적으로 가장 유효한 방법이 피해자가 가해자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조심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이 씁쓸함을 던진다. 가족 및 가까운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필수이지만, 이 역시 비극을 완벽히 막지 못했다. 실제 사건인 ‘송파 주차장 살인사건’에서는 가해자를 피해 다니며 가족들과 함께 출근하던 피해자가 괜찮을 것 같다고 판단해 혼자 나간 날에 변을 당했다.

 

사진=여성가족부 '여성긴급전화'

 

신변 조심 외의 대처 방법은 여성가족부의 ‘여성긴급전화(1366)’, ‘한국 여성의전화’ 등에 신고해 상담을 받는 것이 있다. 데이트 폭력에서 여성만 피해자가 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 착안해 ‘한국 남성의전화’ 역시 운영 중이다. 또 대전 서부경찰서는 지난 1월 데이트 폭력 근절을 위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피해자의 ‘자가진단’을 유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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