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역에서 내려 출구로 나서면 공연 티켓을 판매하는 청년들을 적지 않게 마주한다. 그 중에는 분명 멀지 않은 미래에 이름대면 알만한 ‘스타’가 숨어있을 지도 모른다. 채널이 다양해지고, 연기를 보는 시청자들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연극이나 뮤지컬 무대를 장식하던 극배우들이 TV에 진출하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창작 뮤지컬 ‘빨래’는 박호산, 이규형, 이성욱, 홍광호 등 TV와 스크린을 종횡무진하는 스타들의 산실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작품으로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2005년에는 국립극장 별오름 극장에서 상업 작품으로 정식 초연된 이래 현재까지 꾸준히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 창작 뮤지컬사의 기념비적인 작품 ‘빨래’의 21차 프로덕션 ‘솔롱고’ 역에 배우 진태화가 이름을 올렸다. 그의 데뷔는 연극이나 뮤지컬 무대가 아닌 음악프로그램. 2005년 Mnet ‘Let’s cokePLAY 배틀신화’를 통해 그룹 배틀로 데뷔한 진태화가 군제대 이후 돌연 뮤지컬 무대에 섰다.

홍보단에서 군복무를 한 진태화는 이곳에서 연극영화과, 뮤지컬학과 친구들을 만났다. 제대 이후 뮤지컬 무대 도전을 두고 고민하던 진태화에게 힘을 실어준 사람은 같은 소속사 선배 김준수였다. 진태화는 “김준수 형님께서 제가 고민하던 부분이 해소가 많이 될 거라고 뮤지컬을 한 번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해주셨어요. 정식으로 뮤지컬을 시작한 건 그 때였죠”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가수와 배우로서의 무대에는 간극이 존재하기 마련. 그는 “처음 무대에 섰을 때는 부끄러웠어요”라고 털어놨다. 이어 “뮤지컬을 시작할때 걸음걸이부터 연습했어요. 저도 모르게 노래를 부르면 걸을 때도 리듬을 타더라고요”라고 전했다.

아이돌 가수가 뮤지컬 배우를 한다는 것에 색안경을 낀 시선을 없었냐는 질문에는 “저 혼자 걱정을 많이했던 거 같아요. 작업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꾸준히 작품을 임하는 동안 그의 주변에도 소소한 변화들이 일어났다.
 

“처음 뮤지컬 오디션을 보러 가거나, 연습을 가면 서로 다 아는 사이인 거에요. 저는 혼자였으니까 ‘이게 뭐지?’ 싶었죠. 근데 요즘에는 오디션을 가면 작품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만나서 저도 인사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 반가움이 좋아요. 사람들을 알아가고, 경력을 쌓아 가는걸 느껴요”

진태화는 ‘드라큘라’를 통해 세종문화회관, 그것도 역할 데뷔를 경험했다. 이후에도 ‘도리안 그레이’ ‘나폴레옹’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 규모가 큰 무대에 섰다. 언뜻 보면 운이 좋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름의 애환이 있었다.

‘빨래’ 역시 진태화에게 한 번에 솔롱고 역을 허락하지는 않았다. 진태화는 “예전에도 ‘빨래’ 오디션에 지원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는 오디션도 못 보고 서류 탈락을 했었죠”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사이 진태화는 꾸준히 뮤지컬 무대에 오르며 자신의 이력서를 채워왔다. 그는 “그래서 (기쁨이) 더 커요. 한번 떨어진 작품을 다시 통과한 거잖아요. 합격 소식을 샤워하면서 들었는데 그때 생각하면….”이라며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앞서 해온 작품들과 ‘빨래’는 분명 결이 다르다. 영웅의 대서사도 아니고, 무대가 화려하지도 않다. 하지만 ‘빨래’ 속 20대의 고민과 갈등이 꾸준히 이 작품을 소비되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만큼 관객들도 ‘빨래’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 한 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

진태화 역시 ‘빨래’의 무게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이미 완성돼 있는 작품이다 보니까, 솔롱고의 어떤 매력을 더 보여드릴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많이 해봤어요. 근데 연습을 반복하면서 나만의 솔롱고가 아니라, 극 안에서의 솔롱고가 어떻게 잘 드러나야 할까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라고 설명했다.

이번 작품은 오픈런으로 진행된다. 초연 날짜는 정해져 있지만 최소 6개월 이상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매번 같은 무대, 대본을 연기하는 것이 지겹지는 않을까 걱정하자 “연습 하다가 대본을 정독 해봐요. 다음주가 공연이라 이미 배우들은 숙지가 돼 있고, 연기 합(호흡)을 맞추는데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디테일이 있더라고요”라며 지치지 않는 열정을 드러냈다.
 

“가수로 무대에 설 때는 환호성이 없으면 힘이 안 나더라고요. 뮤지컬은 동료 배우들과 호흡으로 극을 끌어가고, 커튼콜 때 관객들의 박수로 보답을 받는 거 같아요. ‘빨래’가 끝날 때는 ‘내가 성장했구나’라는 걸 느꼈으면 해요. 관객들에게는 단지 ‘가수였던 애가 뮤지컬 하네’가 아니라 ‘얘가 뮤지컬을 정말 진득하게 하려나보구나’ 하는 걸 인정받고 싶고요”

영화나 드라마 매체로 진출할 생각이 없냐는 말에는 진태화는 “오는 기회를 거절한다는 건 아니지만, 아직 욕심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한번에 많은 걸 이루기 보다 자신의 역량을 성실하게 키워나가는 배우 초년생 진태화의 얼굴에서 수줍음 많지만 단단한 솔롱고의 진중함이 느껴졌다.

사진=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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