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정인선(27)은 15년 전 ‘매직키드 마수리’ ‘살인의 추억’ 속 아역배우로 기억돼 왔다. 하지만 이제 그는 팬들에게 과거의 모습이 아닌, 성숙해진 지금의 모습을 더 각인시켰다. 바로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를 통해서다.

  

1996년 데뷔한 정인선은 아역에서 성인 연기자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꽤 오랜 시간 긴 공백을 가져왔다. 스스로 “돌아보니 내 욕심대로 안 돼서 화가 나기도 했다”고 술회했지만, 올해 드디어 운명처럼 ‘으라차차 와이키키’를 만났다. 갓난쟁이 딸 솔이를 키우는 싱글맘 한윤아로 분해 그간 웅크리고 있던 자신의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해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드라마가 끝나니까 굉장히 섭섭해요. 아마 생각보다 너무 큰 사랑을 받아서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으라차차 와이키키’를 통해서 저 스스로도 굉장히 많이 성장했거든요. 물론 막판엔 일정이 타이트해서 배우들, 스태프들 모두 고생했지만, 조금 더 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도 남아요. 이번 기회로 시청자분들과 거리감이 조금 좁혀진 것 같아서 행복하기도 하고요.”

아역 출신 연기자들은 보통 과거의 이미지에 많은 신경을 두곤 한다. 워낙 어린 시절의 모습이 강렬하게 남아있기에 그를 지워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여 슬럼프를 겪기도 한다. 이는 정인선에게도 큰 화두였다.

“제가 성인 연기자로 다시 시작점에 섰을 때, 의지적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했던 것 같아요. 팬분들에게 ‘제가 이런 것도 할 수 있는데, 다시 연기해도 괜찮을까요?’라고 계속 확인 시켜드리고 싶었나 봐요. 그래서 일부러 진솔한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한 것 같아요. ‘으라차차 와이키키’에서는 좀 생각을 바꿔서 그런 강박을 내려놓고 내 모습 그대로 연기를 하고자 했어요. 그게 오히려 더 좋은 반응이 오는 걸 보고 생각을 고치는 계기가 됐죠.”

 

정인선은 그런 의미에서 ‘으라차차 와이키키’에 대해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는 한 마디로 정의를 내렸다. 특히 시작 전부터 많은 고민을 했던 ‘싱글맘’ 역할을 완주해내면서 스스로를 둘러싸고 있는 한꺼풀의 허물을 벗어낸 느낌이라고도 덧붙였다.

“경험해보지 못한 싱글맘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건 걱정이 들 수밖에 없었어요. 심지어 장르가 시트콤인데, 싱글맘이라는 소재가 웃음 소재로 활용되면 시청자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고민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제게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말아라’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때 딱 깨달음이 있었죠. 제가 너무 싱글맘이라는 타이틀에 매달려서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요. 이걸 계기로 캐릭터를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물론 깨달음이 있었다고 해서 연기가 쉽게 느껴지진 않았다. 성인이 돼서 이렇게 긴 호흡의 작품을 한 것도 처음이었고, 말도 할 줄 모르는 아기와 함께 한다는 것도 역시 처음이었다. 모든 것이 ‘처음’의 연속이었다.

“작품 들어가기 전에는 ‘나는 아이들 좋아해서 괜찮아’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참 쉬운 게 아니더군요.(웃음) 촬영의 리듬이 다 솔이에게 맞춰질 수밖에 없었어요. 저는 제가 집중력이 좋은 줄 알았는데, 정말 ‘탈탈’ 털렸죠. 제가 준비했던 건 아무 것도 못해서 첫방때 망했다고 자책했어요. 그런데 막상 방송을 보니까 제가 준비한 것보다 더 자연스럽게 윤아의 모습이 나오더라고요. 얻어걸린 거죠.(웃음)”

 

'으라차차 와이키키'는 각양각색 6인의 청춘 이야기가 유머러스하게 꾸며진 드라마다. 그 중에서 윤아 역할은 진중한 듯 보이지만, 엉뚱하고 눈치 없는 모습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정인선은 “실제 나와 비슷한 모습도 많다”며 웃어보였다.

“윤아에게서 실제 제 모습과 비슷한 부분을 찾아보면서 연기를 하니까 참 재밌었어요. 동구(김정현), 서진(고원희)에게 조언을 건네거나 할 때 굉장히 ‘투 머치 토커’가 되는데, 제가 사실 가끔 말이 많아지거든요.(웃음)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박력있게 확 당기는 모습이나, 만취했을 때의 흥부자 모습도 저와 참 맞닿아 있었어요. 지금까지 이렇게 꼭 맞는 연기를 해본 적은 없었는데, 덕분에 이번에 더 자연스럽게 보였던 것 같아요.”

정인선은 ‘으라차차 와이키키’ 현장에 대해 내내 기분 좋은 상태라고 회상했지만, 최종회를 앞두고 함께 출연하고 있는 배우 이이경과 열애가 알려지면서 ‘멘붕’에 빠졌었다고 말했다. 모든 러브라인이 끝맺음을 해야 하는 타이밍인데, 이 소식이 극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에서 였다.

“막방이 사실 동구-윤아 커플이 서로 마음을 확인하고 마무리 되는 중요한 때였는데, 준기(이이경)와 그런 소식이 전해지면서 굉장히 죄송했어요. 드라마 속에서 윤아가 유독 준기랑 안 겹치는데, 실제로는 사귀는 사이라니까 시청자분들 입장에서 당황스러우셨을 거예요. 걱정스런 마음에 댓글을 봤는데, 다들 축하해 주시는 분위기더라고요. 너무 감사했어요. 세상은 참 따뜻하다는 걸 느꼈죠.(웃음) 종방연에서 스태프분들, 배우들, 작가님도 ‘죄송할 일 아니라 축하할 일’이라고 말씀해 주셔서 마음이 놓였죠.”

  

‘으라차차 와이키키’를 통해 정인선은 어리버리 순수한 모습부터 당찬 로맨스, 꿈을 잃지 않고 전진하는 청춘의 모습까지 다채로운 면모를 뽐냈다. 최근 20대 여배우 기근에 시달리는 연기판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캐스팅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정인선은 이 같은 평가에 대해서 부끄럽다는 듯 손사레를 쳤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면 참 감사해요.(웃음) 하지만 아직 수련해야할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조바심 내지 않고 천천히 걸어 나가고 싶어요. 저는 연기라는 친구와 조금은 얇더라도 길게 함께 가고 싶어요. 나이에 맞는 연기, 또 정인선의 본모습을 꾸준히 보여드리고 싶다는 욕심은 있어요. 제가 작품을 다소 띄엄띄엄하는 편인데, 이제 팬분들과 더 가깝게 소통할 수 있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많이 기대해주세요.”

 

사진 허승범(라운드 테이블)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