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별세한 ‘칸의 대부’ 피에르 르시앙이 주목받는 가운데 그가 타계하기 1주일 전 마지막으로 남긴 제71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버닝’에 대한 글이 공개돼 화제다.

 

 

8일(현지 시각) 프랑스 칸에서 열린 칸 국제영화제 측은 공식 성명을 통해 피에르 르시앙에 대한 추모사를 발표했다.

추모사에는 "고 피에르 르시앙은 5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칸 영화제’란 세계적인 축제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 중 하나였다. 칸영화제에 대해 강렬하고 독창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인물로 우리에게 기쁨과 갈망을 선사했으며 그와 크와세트 거리에서 만나기를 매년 기다리곤 했었다"는 애도가 담겼다.

81세로 세상을 떠난 피에르 르시앙은 프랑스 영화 프로듀서이자 칸 영화제 자문위원으로 '칸의 대부'라 불리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쿠엔틴 타란티노, 마틴 스콜세지 감독 등 세계적 유명인사들과 오랜 유대관계를 유지해오며 영화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특히 한국영화를 유럽에 소개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고 피에르 르시앙은 별세하기 직전 이창동 감독의 ‘버닝’에 관한 특별한 글을 남겼다. 다음은 글 전문.

 

 

<‘버닝’의 운명>

세월이 얼마나 빠른가. 쿠알라룸푸르에서 우연히 우-웨이 빈 하지 사리 감독의 영화 ‘방화범’을 본 지도 벌써 20년도 더 지났다. 윌리엄 포크너의 ‘헛간 태우기’를 말레이시아 문화에 뿌리를 내리게 각색해서 영화화한 그 작품은 매 순간이 예측 불가능성의 연속이었다. 그 영화는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선정되며 큰 성공을 거뒀고 이후 텔루라이드 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그리고 여타 다른 영화제에서도 상영되었다.

카메라가 뒤로 빠지면서 앞으로 걸어 나오는 아이를 오랫동안 잡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심금을 울린다. 영화를 보는 우리 관객들이 순수함을 재발견하게 되는 장면이다. 우리들 안의 순수함 그 자체를. 두어 해 전에 이창동 감독은 내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 단편도 윌리엄 포크너의 ‘헛간 태우기’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었다. 당시는 나는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첫 번째 장면, 인물의 뒤를 카메라가 이리저리 따라가는 긴 쇼트, 그리고 첫 음향들로부터 우리는 우리 주변의 가깝고도 먼, 시끌벅적하고 와글거리는 삶의 현장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영화는 매 순간 예측할 수 없었던 것들로 이어진다.

1952년에 발표된 ‘강의 굽이’(한국제목 ‘분노의 강’)라는 아름다운 제목의 영화는 단순한 서부 영화 이상의 조예 깊은 서사시라고 할 수 있다. ‘버닝’이 꼭 그와 같은 영화다. 영화가 원작자가 꾸며낸 것들로부터 멀어져서 영화 자체로서의 맥박으로 그만의 고유한 생명력을 얻는 순간, 그보다 더 값진 것이 있을까?

이창동은 아주 드문 휴머니스트 영화감독이다. 작품이 결코 메시지로 무거워지지 않으면서도 말이다. 또한 나는 영화 ‘버닝’이, 나 스스로가 놀랍게도, 한국인이 조상의 문화를 복원하면서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을 예견하게 되리라는 꿈을 꾸어본다. 이것은 아마도 과거의 신상옥과 임권택, 그리고 오늘날 이창동의 숨겨진 야망이었을 것이다.

 

 

10일 간의 칸 영화제 기간 중 후반부에 공식 상영이 배치된 ‘버닝’ 감독 및 배우들은 다음주 칸에 입성해 전 세계에 ‘버닝’의 베일을 거둘 예정이다.

영화는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유아인)가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를 만나고, 그녀에게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을 소개 받으면서 벌어지는 비밀스럽고도 강렬한 이야기다. 5월17일 국내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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