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응답하라 1988’, 영화 ‘더 킹’ ‘침묵’ ‘리틀 포레스트’ 등을 통해 다양한 페이스로 변신하며 자신의 능력치를 유감없이 발휘했던 류준열(32)이 ‘독전’(감독 이해영‧22일 개봉)으로 이른 컴백 소식을 전했다.

 

'독전'은 아시아를 지배하는 유령 마약 조직의 실체를 두고 펼쳐지는 독한 자들의 전쟁을 그린 범죄극이다. 극 중 류준열은 마약 조직의 연락책으로 일했지만 버림 받은 조직원 락을 연기한다. 락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마약왕 이선생을 추격하는 형사 원호(조진웅)를 돕는, 서사의 결정적인 열쇠를 쥐고 있는 캐릭터다. 류준열 특유의 몽환적 마스크와 꼭 어울리는 배역이다.

폭우가 쏟아지던 늦봄의 어느 날, 삼청동 한 카페에서 류준열을 마주했다.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영화 재밌게 보셨어요?”라는 천진한 질문을 첫 인사로 전할만큼 연기에 대한 열정이 가득해 보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스스로는 “내 연기를 보는 건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짧은 시간 동안 꽤 많은 작품을 찍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도 제 연기는 늘 부끄럽더라고요. ‘독전’도 참 어렵게 봤어요. 이번 작품이 특히 더 그랬던 것 같아요. 똑바로 못보고 고개를 약간 틀어서 곁눈질로 본 것 같아요.(웃음)”

 

류준열은 평소 작품에 임할 땐 “배역에서 쉽게 헤어나는 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독전’만큼은 유별나게 캐릭터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표정도 없고, 액션도 크지 않은 캐릭터를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기에 얻은 약간의 부작용이었다.

“캐릭터를 분석할 때마다 늘 류준열이라는 사람을 되돌아보고 그 안에서 비슷한 면모를 찾곤해요. 이번엔 제 외롭고 우울한 부분을 챙겼죠. 끊임없이 ‘내가 누굴까?’를 고민하는 캐릭터잖아요. 가끔 저도 배우로서의 모습과 제 실제 모습에서 괴리가 느껴질 때마다 비슷한 고민을 하곤 하거든요. 굉장히 힘든 감정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고민인데, 그걸 몇 달 동안이나 하고 있으니 제 기분도 덩달아 다운되더라고요. 빠져나오는 데 고생깨나 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류준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츤데레’다. 앞에서는 무뚝뚝 해보이지만 어느 순간 환하게 웃으며 감정을 폭발시키는 그의 연기는 숱한 팬들을 ‘류준열앓이’에 빠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 락 역은 러닝타임 내내 시종일관 무표정하고 무디다.

“사실 저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말을 안 좋아해요.(웃음) 늘 제 감정을 말하고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인데, 락이는 절대 그렇지 않죠. 마음 속엔 복잡한 심경을 담고 있지만 절대 드러내지 않아요. 잘못하면 관객분들이 지루하게 볼 만한 캐릭터라서 더 걱정했던 것 같아요. 과연 어떤 방식으로 내 감정을 스크린 너머로 전달할 수 있을까가 이번 작품의 숙제였죠.”

 

그러나 이 고된 작업은 절대 나쁜 기억으로 남지 않았다. 류준열은 “어려운 배역을 한 번 소화하고 나니 많은 것을 배우게 됐다”며 촬영 당시를 회상했다. 꾸며내는 것보다 솔직하게 연기해내는 것의 중요함을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미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 정평이 나있던 그가 ‘독전’에선 그 매력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됐다.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딱 들었던 생각이 ‘어렵겠다’였어요. 그래서 첫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를 많이 했죠. 그런데 제가 준비한 게 (이해영) 감독님께서는 마음에 안 드셨나봐요.(웃음) 1~2회차 때 조언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그 다음부터는 디렉션도 안 주시고 찍을 때마다 ‘OK’ 사인을 주시니까 ‘포기하셨나? 나 놀리시나?’ 싶었는데, 꾸며진 것보다 솔직한 감정이 더 좋았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옆에 계시던 조진웅 선배도 어느 순간 제 솔직한 연기에 고개를 끄덕여주셨어요. 참 많은 것을 배운 현장이었어요.”

류준열의 최근 필모그래피를 돌아보면 유독 대배우들과 함께한 작품이 많았다. ‘침묵’ 최민식, ‘택시운전사’ 송강호, ‘더 킹’ 정우성, 그리고 ‘독전’ 조진웅까지, 충무로의 내로라하는 연기신(神)들과 함께하면서 기가 죽을 법도 한데, 스크린 속 그의 연기는 기가 죽기는커녕 선배들에 뒤지지 않는 존재감을 반짝반짝 빛낸다.

“공교롭게도 너무도 대단한 선배님들과 계속 함께 작품을 해왔어요. 주변에서 ‘마인드 컨트롤은 어떻게 하니?’라고 자주 물어보시는데, 사실 따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진 않아요. 제 마음가짐보단 주위에서 저를 어떻게 대해 주시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늘 선배님들께서 저를 편하게 해주시려고 해주셨어요. 제가 인복이 있는 거겠죠. 사실 조진웅 선배는 뵙기 전에는 참 어려운 분일 줄 알았어요. 그런데 첫 만남 때부터 유쾌하게 분위기 잡아주시더니, 응원을 참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아직도 너무 감사해요.”

 

류준열은 대단한 선배들과 여러 차례 공연하며 성장하고 있다. 어느덧 나이도 3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그는 “선배님들을 보면서 자연스레 미래를 그리게 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오랜 시간 꾸준히 작품을 하시는 선배님들을 보면 늘 존경스러워요. 저도 요즘 ‘왜 이렇게 많이 나오냐’는 질문을 자주 들어요. 그런데 사실 저를 찾아주시니까 일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단순히 연기만 잘한다고 오래할 수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요즘 여러 이슈들을 보면서 느끼는 건데, 연기는 물론이고 인격적으로 완성돼야 하는 것 같아요. 지금 송강호 최민식 선배님 같은 대배우분들이 그런 것처럼요.”

오래오래 사랑 받는 배우가 되기 위해 쉼 없이 고민하고 있다고 밝힌 류준열. 청춘배우로서 지금의 인기에 취할 법하지만 말 한 마디마다 느껴지는 겸손함이 그를 향한 ‘빠심’을 더 깊게 만든다.

“솔직히 아직도 제가 걸어가고 있는 이 길과 목표를 다 알지 못해요. 그냥 똑바로 걸어가는 수밖엔 없는 것 같아요. 잠깐 인기를 얻었다고 거기에 머물면 언젠가는 무너질 것 같아요. 그냥 저는 늘 바르게 걸어가고 싶어요. 그러면 언젠가 이상적인 배우가 돼있지 않을까요?(웃음) 연기를 하는 내내 계속 사랑 받는 배우로 남고 싶어요.”

 

사진=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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