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극이 한류의 중심에 서도록 산파 역할을 해온 독립 프로듀서 이희진(36)씨. 새해 벽두부터 미국에 머무르며 K 연극을 알리는데 여념이 없다.

독립 프로듀서들이 모인 공동체 커뮤니티 ‘프로듀서 그룹 도트’ 소속인 그녀는 경력 11년의 해외통이다.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 밤의 꿈’ ‘햄릿’ ‘페르귄트’,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보이첵’ ‘하녀들’,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하륵 이야기’ ‘노래하듯이 햄릿’ 등이 그녀의 손길을 거쳐 해외 유수의 페스티벌과 극장에서 선보이며 한국 연극의 우수성을 입증했다.

“해외에선 한국 연출가들의 작품에 관심이 많아요. 양정웅 연출의 경우 셰익스피어의 한국적 해석, 빼어난 미장센과 속도감이 호평을 받고요. 사라디움직임연구소 작품들은 아시아 신체극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죠. 임도완 연출은 ‘보이첵’을 통해 독창성 있는 재해석으로 인해 인기가 많고요.”

한 작품을 해외에 소개하는 데는 무수히 많은 공정이 뒤따른다. 먼저 현지 극장과 페스티벌이 어떤 색깔이며, 어떤 작품을 원하는 지를 파악한다. 1회성 공연이 아니라 현지 진출 발판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기에 아시아·미주·유럽·남미 권역에 맞는 작품을 선정해야 한다.

다음으로 기획, 펀딩, 기술(조명·무대·장비 등) 협의 및 계약, 스케줄 조정, 홍보 전략 등을 현지 주관단체와 끊임없이 e-메일 혹은 전화통화로 진행한다. 그러고 나선 현지 무대를 마치고 귀국하는 날까지 공연 팀과 동행하며 사전 협의사항 점검, 돌발 상황 대처, 통역, 홍보업무를 벌여나간다.

 

 

 

해외 투어마다 사건사고가 잇따른다. 2009년 ‘보이첵’ 그루지아 공연 당시 운송 담당자가 사라지는 바람에 리허설도 못한 채 무대에 올랐으나 배우들이 오히려 합을 더 잘 맞춰 기립박수를 받았다. 2011년 이란 테헤란 공연 때는 급작스런 사전 검열 탓에 남녀 애정신이 모두 잘려나가고 배우들은 히잡을 쓴 채 연기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해외 프로모션 담당자에게 있어 기본 자질은 언어다. 이 프로듀서는 고교시절 교환학생으로 1년6개월간 미국에서 거주하며 연마하기 시작한 영어실력은 원어민 수준이다. 대학시절 베이징 외국어대학으로 유학, 3년간 중문학을 공부했다. 국내 대학원에선 중국 희곡을 전공했다.

 

2006년 연극 ‘하륵 이야기’의 코디네이터로 참여, 커뮤니케이션을 도우면서 삶이 요동치는 경험을 했다. 2009년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집단 아시아나우 입사 이후 한국 연극의 해외투어를 도맡아서 진행하게 됐다.

지난해 9월 한중일 공연예술축제 ‘베세토 페스티벌’의 국제위원으로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이희진 프로듀서는 ‘프로듀서 그룹 도트’와 함께 올해 국내외 공동 작업에 매진한다.

 

 

 

국내 단체 뛰다와 일본극단 도리노 게키초의 연극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두 아이에 대한 보고서’가 선보인다. 국내 크리에이티브 집단 바키와 호주 멜버른 랜터스 시어터의 ‘쇼트 필름’이 하반기에 현지 초연되며 한·독 합작 연극 ‘이피게니아×5’가 한국 초연을 거쳐 내년 베를린 도이체스 시어터 시즌 공연으로 자리매김한다.

기초 생계비마저 충당하기 힘들다는 연극판에서 1년 중 절반 이상을 해외 출장 강행군을 벌이며 ‘버티는’ 원동력은 무얼까. 진흙에서 피어난 연꽃처럼, 열악한 현실에서 태어난 작품들이 해외 관객들에게 환호를 얻을 때의 짜릿함을 제일 먼저 꼽는다.

“새로운 배우, 제작자, 프로듀서, 아티스트들 그리고 새로운 작업과의 만남에서 기쁨과 흥미를 느끼기 때문”이라는 그녀는 “문화의 기초인 순수예술이 잘 다져져야 타 예술도 융성한다는 소명의식이 우리를 지탱시키는 버팀목”이라고 강조했다.

일하는 재미에 흠뻑 빠져 지내는 나날, 결혼계획이 비집고 들어올 룸이 없어 보인다. 결혼이 통상 요구하는 시기, 통과의례, 복잡다단한 감정적·물리적인 부분에 별반 의미를 두지 않아서다.

 

에디터 용원중 goolis@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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