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휴... 나이 생각하면 이 연기 못했죠. 하하. 스스로를 많이 내려놓았던 것 같아요.”

한예리(32)가 29일 개봉한 영화 '사냥'(감독 이우철)으로 스크린에 컴백했다. '사냥'은 우연히 발견된 금을 독차지하기 위해 산에 오른 엽사들과 그들의 악행을 지켜본 사냥꾼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다룬다. 한예리는 극 중 엽사들에게 쫓기는 팔푼이 소녀 김양순을 연기했다. 삼청동길 카페에서 만난 한예리는 팔푼이라기엔 너무 아름다운 ‘여배우’였다.

 

고생의 아이콘

‘해무’를 찍을 땐 바다에서 고생하더니 ‘사냥’에선 산에서 고생했다. 이쯤 되면 고생의 아이콘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그래도 홍일점이라 동료들의 적극적인(?) 보살핌과 화기애애한 현장 분위기 덕에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산전수전 겪고 있죠(웃음). 그걸 해낼 수 있다는 이미지가 있으니까 배역이 들어오는 거 같아요. 감사한 일이죠. 제게 강렬한 에너지가 있다는 의미기도 하니까요. 물론 힘들었지만 조진웅 선배님이 ‘배우가 고생해야 관객들이 좋아한다’는 말을 해주셔서 굉장히 힘이 됐어요. 앞으로는 고생해도 이 말을 생각하면서 웃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디테일한 바보 연기

‘해무’에선 조선족 밀항인, ‘육룡이 나르샤’에선 최강 검객, ‘코리아’에서 북한 탁구선수까지 다양한 배역을 맡아봤지만 양순이 같은 역할은 처음이었다. 천진난만한 탓에 ‘팔푼이’로 불리고, 생소한 강원도 사투리까지 구사하는 통에 캐릭터를 잡는데 여느 때보다 내밀한 고민이 필요했다.

“사투리를 쓰다 보니 애드립은 없었고요, 다 대본이에요. 말을 새로 배우는 기분이었죠. 그래도 대사가 많지 않아서 다행이었어요. 대신 행동은 디테일하게 고민했어요. 양순이가 많이 느린 캐릭터라서 관객분들이 불편하지 않게끔 연기하는 게 최우선 과제였죠. 잘했는지는 모르겠지만(웃음)... 아! ‘웰컴 투 동막골’ 속 강혜정 선배님의 밝고 순수한 모습을 많이 참고 했어요.”

 

32살에 시도한 양갈래머리

양갈래 머리와 화장기 없는 수수한 차림... 32살 여배우가 영화에서 시도하기엔 부담스러울 법한 도전이었다. 망설임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양순이 캐릭터를 더 잘 보여주기 위해서는 예뻐 보여야한다는 욕심을 버릴 필요가 있었다.

“제가 눈썹도 옅은 편이라 화면 속 모습이 좀 걱정되기도 했어요. 그래도 예쁜 모습을 가져가려고 했다면, 팔푼이 양순이가 제대로 나오지는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양갈래 머리는 좀 부담스럽더라고요. 그래도 그 모습이 아이 같은 양순이를 잘 표현하는 상징이니까 괜찮아요. 제가 또 어디서 그런 머릴 하겠습니까.(웃음)”

‘사냥’ 속 양순이는 19살이다. 무려 13살의 나이를 건너뛴 연기지만 의외로 관객들 반응은 나쁘지 않다. 실제로 30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관객들이 많지 않다. 실제 나이가 아니라 얼굴 나이로 평가 된다는 게 좋다. 더 다양한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양순이가 19살이란 걸 들었을 때, 흠칫하긴 했어요. 너무 많이 차이가 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20대로 넘어가는 그 성장의 아슬아슬함이 양순이의 캐릭터와 잘 맞는 것 같지만, 30대로 10대를 연기한다는 게 어색했죠. 근데 현장에서 다들 아무렇지 않다고 해주시니까 꽤 신나서 연기했던 거 같아요. 10대 배역부터 30대 배역까지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라고 봐야겠죠.”

 

안성기와의 호흡

여러 힘든 점에도 ‘사냥’을 선택한건 온전히 배우 안성기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넘치는 에너지와 자상함에 배울 점이 많았다. 무려 59년이나 한 우물만 판 ‘국민 배우’와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었다.

“비 오는 신 촬영 이후에 안성기 선배님께 업히는 신이 있었어요. 그때 옷도 젖고, 총도 들어야해서 무거우셨을까봐 죄송했어요. 건강하게 끝나서 정말 감사하기도 하고요.(웃음) '가벼웠다'고 말씀해주신 건 마음 부담 덜어주시려고 거짓말을 하신 거 같아요. 그만큼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자상하게 챙겨주세요.”

 

30대 여배우, 연애? 이상형?

30대에 접어든 만큼 아직은 일에 대한 욕심이 많다. 연애도 물론 하고 싶지만, 언젠가 때가 되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꾸준히 좋은 작품이 들어오는 요즘은 일하는 즐거움에 치어 산다.

“얼마 전에 소속사 대표님이 ‘결혼은 10년은 더 있다가 해도 되겠다’며 농담(?)을 하신 적이 있어요.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저도 오래오래 일하고 싶은 욕심은 있어요. 또 언제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이상형은 신체 건강하고,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에요. 생각보다 그런 사람을 찾기가 무척 힘들더라고요. 같이 촬영한 배우 중에선 안성기 선배님이 제일 이상형에 가까워요. 아무래도 당분간은 연애도 하기 힘들겠죠? 하하.”

 

날 위로해주는 것들...

바쁜 활동 가운데서도 가끔 시간을 내 TV를 즐겨본다. 요즘엔 예능과 드라마가 다 재밌다. 간혹 탐나는 배역도 눈에 들어온다.

“드라마는 요즘 ‘디어 마이 프렌즈’를 즐겨봐요. 정말 재밌죠. 어떻게 좋은 배우분들을 한 자리에 다 모아놨을까요. 연기력이 다들 대단하세요. '또! 오해영'도 재밌게 봤구요. 그리고 예능은 역시 ‘무한도전’이죠.”

 

사진=한제훈(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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