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전체 이혼 건수 가운데 황혼이혼이 차지한 비율은 무려 31.2%에 달한다. 이렇게 백년해로 대신 이혼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가면서 이혼 대신 부부관계를 회복시켜줄 대안의 하나로 떠오른 것이 졸혼(결혼으로부터 졸업)이다. 이제까지 해온 부부로서의 의무를 줄이고 각자 독립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졸혼. 그런데 막상 졸혼하면 어떤 삶이 펼쳐지는지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다.

 

 

27일 오후 11시5분 방송된 'SBS 스페셜'은 졸혼의 민낯을 알아보기 위해 ‘가상 졸혼 프로젝트’를 시도했다. 먼저 결혼생활 23년 동안 남편인 배우 차광수에게 10첩 반상을 차려낸 강수미씨(49)는 젊은 시절 거문고 연주자로 활동했지만 결혼 이후 자신의 꿈은 접고 남편을 내조하며 살아왔다. 스스로 90점짜리 아내라고 평할 만큼 현모양처로 열심히 살아온 삶이지만, 어느 날, 그녀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강수미 대신 '배우 차광수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로만 살아온 자신의 인생이 정말 괜찮은 걸까. 지금이라도 자신의 이름 아래 서보고 싶은 강수미씨는 갈등과 고민 끝에 남편에게 졸혼을 제안했다.

 

 

1년에 한 번씩 해외여행을 데려가겠다는 결혼 초 약속을 23년 동안 지키며 살아온 차광수는 중견 배우로 자리잡기까지 어려움도 많았지만, 항상 가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 그는 갑작스러운 아내의 이런 제안에 당혹스러워하고 화를 내기도 했으나 고민 끝에 잠시 동안 각자 따로 생활하기로 결정했다.

가구가 갖춰진 작은 오피스텔에서 서투른 빨래, 요리, 청소를 하고 고독을 감내하며 나홀로 생활을 시작하는 남편, 그간 엄두도 내지 못했던 친구들과의 여행길에 나서고 제빵 기술에 도전하는 아내는 따로 떨어져 지내면서 “결국 자신이 변해야 상대가 변화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독립된 인격체로 대하는 것과 더불어 졸혼 대신 필요에 따라 며칠씩 남편, 아내로서의 의무에서 벗어나는 휴혼을 합의하며 다시 합쳤다.

이안수씨(61)와 강민지씨(58)는 10년 넘게 따로 또 같이 살고 있다. 남편은 경기도 파주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아내는 서울에서 일하며 일주일에 한 번, 혹은 예정 없이 즉흥적으로 만난다. 지금이 자신의 삶에서 절정기라고 말하는 강민지씨는 최근 정년퇴직을 앞두고 6개월 휴가를 받아 남미로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고, 현재 필리핀에서 어학연수 중이다. 부모의 이런 삶을 보아온 아들은 여전히 사랑표현을 즐기는 부모님의 졸혼생활에 장점이 더 많다고 말한다.

 

 

서울에서 중소기업 CEO로 활동했던 임지수씨(59)는 13년 전, 아무 연고가 없는 전라도 산속에 홀로 들어가 황무지였던 땅을 아름다운 꽃밭으로 일궈냈다. 여전히 도시에서 일하는 남편과 한 달에 한 두 번 보지만, 부부관계는 함께 살 때보다 오히려 좋아졌다. 그는 남편과 떨어져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다보니 삶이 충만해지고, 남편의 성향을 있는 별다른 갈등 없이 받아들이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졸혼’과 관련해 독립할 철저한 준비와 스스로 혼자의 삶을 꾸려나가는 고생을 기꺼이 감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결혼과 동시에 전쟁처럼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부부들은 막상 삶에 여유가 생기는 중년 이후 오히려 부부관계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부부 사이에 대화는 줄어들고 사랑해서 해오던 일들이 의무로만 느껴지며 갈등이 커지는 것이다. 이날 방송은 졸혼이라는 ‘새로운 결혼의 형태’를 경험하는 다양한 부부의 모습을 통해 함께 성장하고 늙어가는 행복한 부부가 되는 방법을 고민하는 시간을 선사했다.

 

사진= 'SBS 스페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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