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회화 선구자인 고 김환기 작가의 1972년작인 붉은색 전면점화가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다시 썼다.

'3-II-72 #220'은 27일 홍콩 완차이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서울옥션 제25회 홍콩세일에서 85억2996만원에 최종 낙찰됐다. 추상미술 선구자라는 미술사적 지위에 희소한 색조가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직전 최고가는 지난해 4월 케이옥션 서울경매에서 김환기 작가의 푸른색 전면점화 '고요 5-IV-73 #310'(1973)이 기록한 65억5000만원이다. 이로써 김 작가는 13개월 만에 자체 기록을 경신했다.

 

'3-II-72 #220' 캔버스에 유화(1972)

앞서 2015년 10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47억2000만원에 팔린 푸른색 전면점화 '19-Ⅶ-71 #209'를 시작으로 그의 작품은 지난 3년간 6차례 연속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이번 경매로 이중섭 '소'에 잠깐 한자리를 내준 국내 미술품 경매가 1~6위가 다시 김환기 작품으로 채워지게 됐다.

수화 김환기 화백은 일제강점기인 1913년 전남 신안에서 태어나 일본 니혼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한평생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한국적 서정을 세련된 모더니즘으로 승화했다. 일본 유학 시절과 한국전쟁 시기를 거쳐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할 때까지는 주로 구상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줬다면, 미국 체류 당시엔 추상미학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1974년 타계할 때까지 뉴욕에서 활동한 그는 당시 미국 화단을 주름잡던 추상표현주의 화가들과 치열한 경쟁을 통해 한국 추상미술의 가치를 웅변했다.

 

고 김환기 화백 [사진=연합뉴스]

미국 화가들이 액션페인팅, 색면, 미니멀리즘 등을 선보일 때 그는 한국적 서정주의를 접목한 단색화 형태의 점화를 양산했다. 모국의 산천과 가족을 향한 그리움, 예술에 대한 열망을 담아 거대한 면포에 색점을 찍어 나갔다.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했고, 말년에는 치열한 노력과 재능이 만개하면서 빛을 발한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고향에 대한 추억을 포착한 1936년작 ‘집’은 샛노란 바탕에 계단과 문, 항아리 등을 간결하게 담아낸 가운데 원근법을 없애고 배경의 색채를 하나로 통일하면서 집의 형태를 평면화해 추상성을 아울렀다.

매화가 꽂힌 항아리 옆에 서정주 시를 적은 1954년작 ‘항아리와 시’는 달항아리를 스스로 발화하는 하얀 등불처럼 그려 시와 미술의 절묘한 조화를 꾀했으며 57년작 ‘영원한 노래’는 세로로 긴 화폭에 십장생 소재인 학과 달, 사슴, 구름, 산 등을 자유롭게 배치해 균형미를 이뤘다.

 

'영원의 노래'(1957)

1970년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 출품해 대상을 차지한 푸른색 점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와 비슷한 작품 ‘10-Ⅷ-70 #185’는 뉴욕 밤하늘의 별과 은하수의 오묘함을 바라보면서 수많은 고국 사람과의 인연을 점으로 묘사했다. 서양 재료인 유화 물감을 썼지만 캔버스천이 아니라 광목을 바탕으로 해 번짐과 스밈, 농담이 자연스럽다.

이번에 경매 최고가 기록을 세운 '3-II-72 #220'은 김환기 작품 세계가 절정에 이르렀다 평가받는 뉴욕 시절의 전면점화 중 하나다. 세로 254㎝, 가로 202㎝ 대형 면포 위에서 수많은 붉은색 점이 엇갈리는 사선 방향으로 패턴을 이룬 작품 상단에는 푸른색 점들이 작은 삼각형을 이루며 가미된 것이 특징이다. 그의 전면점화 대다수가 푸른 색조인데 반해 이 작품은 투명한 진홍빛 색조라 희소가치가 높으며 화려하면서도 진중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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