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진웅(40)의 2016년 상반기엔 빈틈이 없다. 드라마 '시그널'에선 우직한 츤데레 형사로 안방극장을, '아가씨'에선 변태 백작으로 스크린을 달구더니 잔인한 쌍둥이 역할로 다시 한번 관객을 마주했다. 지난달 29일 개봉한 '사냥'(감독 이우철)은 우연히 본 금을 캐기 위해 오르지 말아야 할 산에 오른 엽사들과 사냥꾼 기성(안성기)의 추격을 그렸다. 1인 2역으로 두배의 즐거움을 선사한 배우 조진웅을 지난달 30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통찰로 받아들인 영화 '사냥'

'명량' 때 함께 일 한 김한민 감독과의 인연으로 '사냥'에 출연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쉽게 납득이 되지 않고 집중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마음이 이끌리는 지점도 분명 존재했다.

"작품할때 매번 똑같은 거 같아요. 저는 어떤 사람과 어떤 작업을 하느냐가 제일 중요하게 작용해요. 사냥 같은 경우엔 인물간의 맹목적인 모습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지만, 기성이 느끼는 트라우마의 당위성을 좀 풀고 싶었어요. 대립하는 인물로서 자극을 주고 싶었는데 제가 연기한 동근이 직접적인 동기부여가 되는 건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고민이 많이 됐죠"

세밀한 분석으로 사냥꾼 기성의 안타고니스트를 만들어냈다. 탐욕스러운 형사 명근과 엽사들의 우두머리 동근까지 1인 2역이다. 형제 모두 돈을 위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부패한 경찰이란 점에서 '끝까지 간다'의 박창민이 떠오르기도 하다. 하지만 딱히 악역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악역이라기보단 기성의 반대 지점에 있는 인물 같아요. 동근의 당위성은 스트레스가 너무 일상이 된 거죠. 그래서 툭 하고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신경질적인 거예요. 이 산을 그냥 내려가면 다시 지긋지긋한 빚에 시달려야 하니까. 그런데 영감이 자꾸만 동근의 계획을 망치려는 거죠. 잡히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 험난 그 자체, 산에서 우러난 연기

깊은 산을 배경으로 한 '사냥'의 추격신에선 배우들의 고생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체력만으론 감당할 수 없는 현장이었다. 계곡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은 하필 12월에 촬영하게 됐다. 추워서 죽을 것 같은 와중에도 적은 예산을 감당해야 했다.

"사실 저는 스스로를 잘 제어할 수 있는 배우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근데 계곡물이 상상 이상으로 얼음장 같더라고요. 너무 떨어서 카메라를 돌리지 못하겠다는 스태프의 말에 역정을 냈어요. 알아서 할 테니까 일단 시작하라고. 카메라 롤을 돌리고, 컷트 하는 순간까지 작은 미동도 보이지 않았어요. 여러 컷 나눠서 쓰면 좋지만 그럴 여유는 안됐기 때문에 그래야 했어요"

경기도 파주에 있는 고령산에서 대부분의 분량을 촬영했다. 장장 4개월간 수소문해 찾은 곳이다. 서울에서 가깝고 베이스캠프까지 차로 이동할 수 있었지만, 산이 주는 묘한 분위기는 연기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지점으로 이끌었다.

"산이라는 공간이 분위기를 묘하게 바꿔놓더라고요. 제 연기도 많이 영향을 받았어요. 이렇게 틀면 저렇게 보이고, 저렇게 틀면 또 다르게 보였어요. 위험천만하고 낯설기도 했죠. 시나리오보다는 그 공간 안에서 완성된 부분이 많은 영화 같아요"

 

● 안성기, 범접할 수 없는 연기 혼

이번 영화를 통해 하늘 같은 선배 안성기를 '선배님'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전까진 계속 '선생님'이라고 불러왔다. 초반에 안성기가 먼저 문을 열어줬다. 촬영할 때 멱살 잡기 조차 어려워 할 후배의 마음을 이해한 듯 했다. 

"당신 입으로 그러시잖아요. 영화 인생 59년이라고. 저는 59년도 안살아봤는데 말이죠. 선배님께서 절 보자마자 하신 얘기가 뭐냐면, '선배님'이라고 불러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얘기는 우린 이제 동료라는 뜻이죠. 액션도 많을거고, 부딪히는 장면도 많을테니까 동등하게 동료가 되자고"

평소 폭력적인 장면은 촬영을 망설여할 정도로 여린 편이다. 이번 영화에서도 선배인 안성기를 가학하는 장면이 여러차례 나왔다. 두려워하다 영화를 망치긴 싫어 두번 세번 체크해가며 연습을 했지만, 안성기는 마음가짐부터 달랐다.

"선배님을 발로 밟는 장면을 찍을 때였어요. 현장에서 레디 하는데 선배님이 연습할 때 대고 있던 아대가 아닌 얇은 걸로 바꾸신 거예요. '너무 티가 나는 것 같아서'고 하시더라고요. 제 감정을 위해서라도 아대를 바꿔달라 말씀 드렸더니 '티가 나서 그랬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눈물이 나더라고요. 선배님 뜻을 담아 죽어라 밟았죠. 그런데 컷! 외치니까 일어나시면서 '바꿀 걸 그랬나' 하시더라고요(웃음)"

 

 

사진 = 롯데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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