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송계는 검사·변호사·판사 등 법조인들이 주인공인 법정드라마 일색이다. 촛불시민혁명 이후 정권교체와 더불어 적폐청산이 시대의 좌표로 정해지면서 검찰·사법부 개혁이 대중의 관심사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회성 짙은 스토리,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로 변주된 드라마 등 다양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며 긍정적인 면과 함께 장르의 편향성이라는 문제점이 공존하는 중이다.

 

 

이 가운데 JTBC 월화드라마 ‘미스 함무라비’(극본 문유석 연출 곽정환)는 여러 면에서 두드러진다. 문유석 부장판사의 2016년 소설을 바탕으로 작가가 직접 대본을 집필했다. 20년 판사생활이 농축됐기에 캐릭터들과 인물관계, 사건이 생생하다. ‘가상의 도시를 지배하는 권력비리’ ‘정경유착한 법비’ 구도에서 벗어나 일상에 자리한 소소하면서도 다양한 케이스들이 법원 내 공간과 법정에서 사실적으로 펼쳐진다.

‘미스 함무라비’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무대로 음대를 중퇴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상주의 열혈 초임판사 박차오름(고아라), 원칙주의 엘리트 판사 임바른(김명수), 비주류 현실주의 부장판사 한세상(성동일)로 이뤄진 민사 제44부 재판부가 극을 주도한다.

 

01. 사법농단 파동 시대에 ‘사법의 길’ 묻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자행된 사법행정권 남용과 재판거래 의혹이 불거지며 소장 판사를 중심으로 한 일선 법관들은 성역 없는 수사와 진상규명을 연이어 의결했다. 부장판사들 역시 온도의 차이는 있지만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국 법원장들은 수사에 반대의사를 피력하고 있다.

사회 정의를 판단하는 최후의 보루이자 3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를 향한 개혁의 목소리가 안팎으로 높아가는 시대에 ‘미스 함무라비’는 사법부의 가치와 존재 이유, 가야할 길은 어디인지를 곱씹어보게 만든다.

 

 

주인공 박차오름은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한 법원을 꿈꾸며 사법부에 발을 내딛는다. 좌충우돌을 겪으며,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며 사건을 사람으로 보려는 자세, 법복을 입으며 표정은 지워야하지만 마음은 지워서는 안 되는 태도, 판단하기에 앞서 많이 들어야 하는 중요성, 정의와 복수의 경계에 대한 인식, 작은 가치가 모여 큰 구조를 이뤄내는 그리고 웃으며 철수하는 의미를 웅변한다.

 

02. 공감과 눈물의 케이스들

‘미스 함무라비’에는 매회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아픔과 사연을 장착한 사건들이 등장한다. 의료사고로 아들을 잃은 뒤 법원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던 할머니는 항소심에서도 증거부족으로 패소한다. 광고회사 간부에게 지속적인 성희롱을 당한 인턴사원은 사측의 조직적인 은폐로 벼랑 끝까지 몰렸다가 인턴 출신 정규직 여직원의 반전 지원으로 명예를 회복한다.

고깃집 불판에 얼굴을 데인 아이의 엄마 소송에서는 정신지체 아이의 트라우마, 타국에서 힘들게 돈을 벌고 있는 중국동포 종업원,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버텨나가는 자영업자 사장의 사연이 교차하며 눈물샘을 자극한다.

 

 

대학 운동권 시절 사진을 포털에서 삭제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하며 잊혀질 권리를 주장하던 스타 국회의원의 사연 등 현실과 맞닿아 있는 케이스들은 하이퍼 리얼리즘으로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미드처럼 검사와 변호사의 불꽃 튀는 공방이 없더라도 감정의 스펙터클은 대단하다.

 

03. 입체적인 구성의 법원피플

검찰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지검장, 부장·차장검사, 검사, 수사관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법원의 경우 법원장, 부장판사, 판사가 등장인물로 나오는 게 고작이다. 법조인 출신 작가가 아니므로 취재의 한계 탓이다.

하지만 ‘미스 함부라비’는 법원 내부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작가의 작품답게 판사뿐만 아니라 잘 몰랐던 속기실무관, 참여관, 실무관, 법원경위 등 다양한 직업군이 등장한다. 이들은 장식적으로 배치되는 것이 아닌 각자의 개성과 스토리로 이야기를 풍성하게 일군다.

 

 

뿐만 아니라 출신성분에 따라 갈리는 법원 내 인맥, 출세지향주의와 법관 본연의 업무에 충실한 대조적인 인물군,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는 배석판사들의 고충, 임신과 육아문제로 고민하는 여성판사 등 내부 인물들의 민낯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사진=JT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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