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녹(36)이 뉴욕 브로드웨이를 접수했다. 배우의 꿈을 안고 브로드웨이로 건너온 시골 출신 코러스 걸 페기 소여가 뮤지컬 스타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8월28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노래와 탭에 능란한 바람둥이 매력남 빌리 로러 역으로 활보하는 중이다.

 

 

■ 도전 욕망에 선택...혹독한 연습 끝에 프로 탭댄서로 탈바꿈 

“새로운 작품들도 많은데 굳이...은연중에 올드하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나 봐요. 막상 작품을 대하고나니 내가 너무 가볍게 여겼더라고요. 유튜브 동영상과 영화, 자료들을 찾아보고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간 뒤 탄탄한 쇼뮤지컬임을 깨닫게 됐어요. 음악도 너무 멋있고.”

‘도전’의 그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키워드다. 그래서 올해 상반기 연극 ‘보도지침’에 참여했다. 뮤지컬배우로서 연기와 노래, 무거움에서 탈피해 자신을 새롭게 개발할 수 있는 춤에 대한 갈망도 컸다. 특히 ‘브로드웨이 42번가’는 탭댄스의 진수를 만끽하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나를 바꾸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한 선택이었는데 탭댄스 연습에 들어간 뒤 추천해줬던 지인들을 찾아가 따지고 싶더라고요.(웃음) 몇 달 만에 연습해서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게 오산이었죠. 탭은 시간에 비례하더라고요. 매일, 오랜 시간 동안 연습해서 몸에 익혀놔야 제대로 된 표현이 가능한데 그걸 간과하지 않았나 싶어요.”

지난 3월부터 연습을 시작했다. 발바닥으로 때리면 되는 줄 알았다가 발을 2차례나 크게 다쳐 잠시 연습을 중단했다. 발톱이 빠지고 무릎 통증에 허리 상태도 나빠졌다. 발 움직임과 손동작은 쉽게 정복되지 않았다. 벽에 부딪혔을 때 연습으로 돌파했다.

 

 

다행히 과거 드러머 활동을 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발로 드럼을 치는 느낌을 가져와 차곡차곡 자기 것으로 만들어갔다. 이런 에녹에 대해 연출은 “매일 보여주는 작은 기적”이라고 찬사했다.

지난 6월23일 개막 이후 에녹이 무대 위에서 구사하는 탭은 베테랑 태퍼의 발놀림이다. 특히 ‘머니’를 부를 때 황금색 재킷에 화이트 팬츠로 성장한 채 코인 스테이지 위에서 숨이 턱까지 차도록 두드려대는 태핑에 객석에선 열광적인 환호가 폭죽처럼 터진다. 배우와 관객 모두 희열로 혼연일체가 되는 순간이다.

음악에 맞춰 땀을 흘리다보니 절로 8kg이 내려 182cm에 70kg의 슬림 미남으로 거듭났다. “다이어트에 이만한 게 없다”며 탭 예찬론을 꺼내든다.

 

■ 페기 역 임혜영과 꿀호흡...밝고 유쾌한 캐릭터 변신

 

 

국내 초연 20주년을 맞은 ‘브로드웨이 42번가’에는 매력적인 연출가 줄리안 마쉬 역 송일국 이종혁, 왕년의 인기 여배우 도로시 브록 역 최정원 김선경, 페기 소여 역 임혜영이 출연한다.

과거 ‘팬텀’ ‘레베카’에서 공연했던 에녹과 임혜영은 극중 동료애와 연애감정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너무나 귀여운 한편 깃털 같은 탭으로 케미스트리를 이룬다는 평을 얻고 있다.

“한 달 동안 하루 종일 붙어있다시피 탭 연습을 하면서 굉장히 가까워졌어요. 과거 작품에서 봤던 혜영이가 아니에요. 이번에 굉장히 통통 튀고 귀엽거든요. 가장 돋보일 수 있는 캐릭터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연습 때는 온갖 걱정을 하다가 다음날이면 안무과제를 다 해가지고 오는 독한 친구에요. 괜히 정상의 자리까지 온 게 아니더라고요.”

에녹의 빌리는 역대 빌리 역 국내 배우들과 비교했을 때 미국 오리지널 공연의 빌리 느낌과 가장 잘 맞는다는 평가다. 시원한 체격조건과 성량, 밝고 유쾌하며 쇼맨십 강한 이미지가 그렇다.

 

 

“꽤 오랫동안 억눌린 역할을 하다가 밝다 못해 천진난만한 모습까지 드러내요. 처음엔 빌리답게 하는 걸 찾지 못해 머리를 비운 상태에서 접근했다가 점차 빌리와 친해졌고, 지금은 좀 더 빌리화 돼가고 있어요. 전 엉뚱하게 진지한 부분이 있어서 주변 사람들이 ‘다큐 그만 하라’고 하는데 빌리는 언제나 예능이죠. 요즘엔 빌리처럼 많이 웃고 다정해졌어요.”

줄리안, 도로시, 페기는 각각 야망, 사랑, 꿈과 같은 드라마가 명확한데 비해 빌리는 그게 없어 걱정했다. ‘그냥 쇼를 잘하는 멋쟁이’ 이미지만 남을 거 같아 고민했으나 바람둥이처럼 보이지만 페기 소여에 대한 감정이 잘 보이길 바랐다. 순간순간 내비치는 감정을 통해 존재감이 드러내게끔 공들이고 있다.

쉽지 않은 도전에 선뜻 나서 값진 결실을 거두고 있는 에녹은 “미국 대공황 시기에 만들어진 이 작품의 메시지가 힘든 현실을 살아가는 관객들 가슴에 희망의 불씨를 일으켰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사진 권대홍(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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