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KBS2 20부작 드라마 ‘거짓말’(극본 노희경 연출 표민수)은 국내 최초의 ‘폐인 드라마’ 신조어와 함께 마니아를 양산했다. 2018년 JTBC 16부작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극본 김은 연출 안판석)는 올해 상반기 최고의 화제성 드라마 1위(굿데이터코퍼레이션 집계)로 선정됐다.

 

1998년 폐인을 양산한 드라마 '거짓말'(사진 위)과 2018년 상반기 화제성을 독점한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2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 PC통신과 SNS 시대, 지상파 방송사와 종편환경이라는 시대적 변화 속에서 두 드라마는 흥미로운 평행이론을 제시한다.

연상연하 커플이 열병처럼 겪게 되는 사랑이야기를 다룬 멜로 드라마이며 남자주인공 이름이 서준희다. ‘거짓말’의 여주인공 주성우(배종옥)는 인테리어 회사 매니저인 33세의 싱글여성이다. 남자주인공 서준희(이성재)는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28세 인테리어 디자이너다. 그에게는 아름답고 야무진 공예가이자 남편바라기인 아내 은수(유호정)가 있다.

‘밥누나’의 여주인공 윤진아(손예진)는 35세의 커피회사 가맹운영팀 대리이며 남주 서준희(정해인)는 31세의 게임회사 아트디렉터다. 연애는 늘 ‘ing’라고 자부하는, 경쟁력 있는 싱글남녀다.

 

'거짓말'의 주연배우 배종옥 이성재 유호정(왼쪽부터)

그때나 지금이나 연상연하가 연애와 결혼을 가로막는 결정적 장애물은 아니다. 문제는 간통죄가 폐지되기 전이었던 당시 성우와 준희의 사랑은 ‘불륜’이었다. 반면 법적·제도적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운 30대 성인남녀 진아와 준희의 장벽은 돈에 대한 욕망이었다. 계층적 지위를 공고히 하려는 진아 어머니의 반대가 ‘간통죄’란 법 이상으로 맹위를 떨쳤다.

사랑은 없으나 익숙하고 편한 아내,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뒤로한 채 직장 선배 성우에게 맹렬하게 질주하는 ‘거짓말’의 준희나 양가의 반대와 자존심의 상처에도 누나의 절친에서 연인이 된 진아를 향해 직진하는 ‘밥누나’의 준희는 동일한 얼굴이다. 사랑하는 여자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헌신하는 남자라는 면에서.

반면 여주인공 성우와 진아는 과거 사랑으로 인해 상처받은 유능한 커리어우먼이라는 점에선 동일하지만 성격은 사뭇 다르다. 성우가 가시돋힌 선인장처럼 자긍심 강하고 독립적이나 내면은 여리다면 진아는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따뜻하고 자존감이 낮은 인물이다. 하지만 스스로도 미처 깨닫지 못한 용기를 지닌 인물이다. 두 여자는 ‘준희’를 만나며 변화한다. 세상을 향해 닫았던 마음을 여는가 하면 자존감을 회복한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고감도 연인 호흡을 보여준 손예진(사진 위) 정해인

세기말 분위기에 걸맞게 무겁고 어두운 톤의 ‘거짓말’은 아픈 자신을 점점 닮아가는 준희를 아내에게 돌려보내는 성우의 선택으로 매듭지어졌다. 생동감 넘치는 현실연애를 표방한 ‘밥누나’는 이별 후 3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서로를 잊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한 진아와 준희의 재결합으로 마무리됐다.

'거짓말'이 두 번째 장편 드라마였던 노희경, '밥누나'가 첫 드라마 집필인 김은 작가 모두 신인급임에도 "사랑은 교통사고처럼 다가온다" "사랑은 계절과 같은 것" "금기를 넘어서는 게 프로지" "사랑을 할 땐 서준희처럼" 등의 명대사로 시청자의 마음을 흔들었다. 똑소리 나는 여배우 배종옥과 손예진의 인상적인 연기술, 해당작을 통해 톱스타로 도약한 이성재·정해인의 섬세하고도 눈물 많은 ‘멜로 킹’ 연기, 아름다운 장면과 음악을 비롯한 세련된 연출력 등 두 작품이 한국 멜로드라마 궤도에 남긴 흔적은 선명하다.

무엇보다 인류의 영원한 관심사이자 진부한(?) 소재인 사랑을 동시대의 호흡과 언어로 통찰했다는 점에서 꽤 오래 잔향을 흩뿌릴 것으로 보인다.

사진=KBS, JT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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