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드라마를 보면 “○○가 멋있더라”, “○○가 예쁘더라”라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포털사이트 댓글만 봐도 내용에 대한 이야기 보다 배우들의 연기력, 혹은 ‘얼평’이 주를 이룬다. 서사를 전달하는 매개체였던 캐릭터들이 드라마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너도 인간이니' 서강준, '김비서가 왜 그럴까' 박민영 박서준. 드라마 속 캐릭터로 최근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매력 넘치는 캐릭터들을 앞세운 드라마들이 흥행에 성공하며 드라마 판도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드라마가 종영할 즈음에는 에피소드보다 인기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다. 큰 사랑을 받았던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KBS '위대한 유혹자' 그리고 현재 방영 중인 '너도 인간이니?'와 '김비서가 왜 그럴까'가 이런 유형에 속한다.

하지만 여전히 서사의 힘으로 드라마를 끌고 가는 작품들이 존재한다. 최근에는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 ‘나의 아저씨’, ‘라이브(Live)’ 그리고 현재 방영 중인 JTBC ‘미스 함무라비’가 대표적이다. 이들 작품은 ‘곁서사’가 존재한다. 전체적인 이야기를 이끄는 주인공들이 존재하되, 오롯이 그들만을 위한 드라마가 아니다.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인물들을 더욱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사진=tvN '라이브'(Live)' 포스터)

반면 캐릭터를 내세운 드라마들은 방영 초에 폭발적인 화제성을 가진다. 영화는 물론이고 드라마 역시 한 작품에 기라성같은 스타들을 여럿 기용하며 화려한 비주얼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대중산업인 드라마 시장에서 경쟁작들과의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일 수밖에 없다. 다만 작가의 필력 문제일 수도, 연출자의 역량 부족일 수도 있지만 초반의 화제성을 마지막까지 끌고 가는 경우가 거의 드물다. 일주일에 2회차씩 방송되는 드라마에서 캐릭터의 매력만으로 천편일률적인 서사를 보완할 수는 없다.

‘미스 함무라비’와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현재 화제성과 시청률 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드라마다. 객관적으로 출연하는 배우들의 스타성이나 화제성은 ‘미스 함무라비’가 조금 불리한 출발선에 섰다. 기존 드라마 화법에 익숙하지 않은 문유석 판사가 집필을 맡았다는 것 역시 기대 이면에 불안을 내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존 법정서사가 그려온 형사사건 대신 민사재판으로 눈을 돌려 우리네 군상을 매회 새로운 시선으로 제시하며 탄탄한 지지층을 얻었다.
 

(사진=JTBC '미스 함무라비', tvN '김비서가 왜 그럴까')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철저하게 주인공 김미소(박민영 분)와 이영준(박서준 분)이 돋보인다. 방영 분량 중 거의 80%에 두 사람이 등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지아(표예진 분)와 고귀남(황찬성 분), 봉세라(황보라 분)와 양철(강홍석 분)의 묘한 직장 내 썸이 존재하지만 부수적인 이야기로 다가온다. 다행히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캐릭터 중심의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정통 드라마 화법 대신 시트콤 같은 재미를 부각시켜 꾸준한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다.

캐릭터와 서사, 둘 중 어디에 구심점을 두는 게 맞다고 할 수는 없다. 웹툰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가 인기몰이를 하는 점을 미루어 보았을 때 시청자들이 다각화된 시점으로 드라마를 보는 데 피로도를 느끼고 있을 수도 있다. 변화하는 시청자층에 맞춘 시도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과연 10년, 20년 후에도 회자될 드라마는 어느 쪽일까. 복잡한 서사를 기피하는 현상에만 치우친다면 TV라는 매체가 전달할 수 있는 드라마 고유의 파급력이 웹드라마, 웹툰에 전복되지는 않을까. 어쩔 수 없이 시청자들이 ‘이야기’ 할 만한 거리가 사라지는 드라마들에 아쉬움이 느껴진다. 인물 간의 갈등이 주는 극의 풍성함, 그 자체로 흥미를 제공하던 입체적인 드라마가 그리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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