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은 과연 TV 드라마의 ‘감초’일까. 최근 웰메이드 작품들을 줄줄이 탄생시키며 영화 이상의 ‘인생작’이 많아졌다는 평을 받는 상당수의 TV 드라마들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관찰된다. ‘욕설’과 ‘비속어’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미성년자도 볼 수 있는 15세 관람가 등급의 드라마라 해도, 일상 생활에서 썼을 때 주변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릴 만한 욕설이 담긴 대사가 종종 등장한다. 영화에서는 이런 ‘욕설 대사’가 많이 용인됐지만, TV에서는 몇 년 전만 해도 흔치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여전히 방송 3사로 대표되는 지상파 방송에서는 욕설이 들어간 대사를 듣기 쉽지 않지만, 케이블이나 종편에서는 보다 자유롭게 욕설이 등장하고 있다.

세대를 막론하고 이를 보는 시선 역시 천차만별이다. 최근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예와 함께 ‘욕설 대사’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짚어본다. 

 

♠모진 폭력+욕설로 ‘구설수’…’나의 아저씨’ 

사진=tvN '나의 아저씨'의 장기용.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방영 전부터 끝나기까지 각종 논란으로 몸살을 앓았던 작품이다. ‘나의 아저씨’라는 제목부터 불륜물이 아니냐며 지적을 받았고, 첫 회 방송 뒤에는 사채업자(장기용)가 욕설을 하며 여주인공 이지안(아이유)의 배에 주먹을 날리는 등 심한 폭행을 하는 장면이 일부 시청자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특히 장기용은 이 장면에서 “네 인생은 종쳤어, 이 XX년아. 질질 짜면서 죽여 달라고 빌어봐라”라며 악랄하기 그지없는 욕설을 날린다. 이 장면이 꼭 필요했냐는 시청자 의견과 함께 방통심의위는 지난달 행정지도인 ‘의견제시’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방심위의 전체회의에서조차 드라마 전체 맥락상 주인공들의 악연을 암시하기 위해 필요한 설정이며 문제 삼기에는 곤란하다는 소수의견도 있었다.  

 

♠리얼하고 공감가지만, 욕설은 욕설 ‘밥누나’ '미스 함무라비'

사진=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위), '미스 함무라비'(아래)

배우 정해인의 출세작이자 봄을 로맨스로 물들였던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예의 바르고 스윗한 연하남 서준희(정해인)는 의외로(?) 입이 거칠다. 물론 시도때도 없이 욕을 해대는 ‘입에 걸레를 문’ 스타일은 결코 아니지만, 연인의 전남친인 규민(오륭)에게는 가차없다. “이 새X, 양다리 걸쳤어”라며 분노하는 것은 물론, 주먹까지 나가는 모습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어릴 때부터 친구인 승호(위하준)와도 “이 새X”는 그저 예사롭게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다. 그런데 실제 20~30대 남자들 사이에서 이 정도의 욕설 주고받기는 매우 일상적이다. 욕설 자체가 좋은 것은 결코 아니지만, 평범한 30대 남자들끼리의 실제 있을 법한 화법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지극히 현실적인 연애’를 그린 이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살리는 역할을 어느 정도 담당했다. 

JTBC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25일 방영분에서 열혈판사 박차오름(고아라)은 파렴치한 권력형 비리 범죄자들을 성토하는 과정에서 사무실 안 책상을 서류로 내리치며 "이 새X"를 연발한다. 엔딩 장면에서는 우배석 판사 임바른(김명수)과 달빛 데이트 도중 야외 연인들의 핫스팟에서 가슴에 차올랐던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허공을 향해 시원하게 욕 발사를 한다. 판사와 욕설?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보이나 '똘기' 충만하고 용감무쌍한 박차오름 캐릭터를 살리는 장치였다는 게 현직 판사 문유석 작가와 제작진의 전언이다. 

 

♠’욕쟁이 할머니’처럼 구수한(?) 욕설의 맛

사진=2004년 KBS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에 등장해 기나긴 욕설 대사로 '할미넴'이란 별명을 얻은 배우 김영옥.

욕은 ‘나쁜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막말이 그리워 ‘욕쟁이 할머니’의 식당에 단골로 찾아간다는 손님들이 있듯이 묘한 정겨움을 선사하는 일면이 있다. 코믹함의 재료가 되기도 하고, 시대적인 분위기를 대변하기도 한다.

그 옛날 노배우 김영옥이 히트시킨 ‘할미넴’부터 최근 방영중인 OCN ‘라이프 온 마스’의 쌍팔년도 형사 박성웅까지, ‘정겨운 욕설’을 장착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2018년에서 타임슬립한 형사(정경호)의 행동을 보고 “이놈의 새끼가”, “미친 놈이야, 미친 놈” 등을 연발하는 ‘쌍팔년도 형사’ 박성웅은 차분한 표준말에 매사 냉철한 정경호와 극명히 대비되며 타임슬립물을 더 실감나게 만든다. 

 

♠’욕설 대사’를 걸러내는 심의 기준은? 

사진=OCN '라이프 온 마스'의 '쌍팔년도 형사' 박성웅.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욕설 대사’가 드라마에서 소비되고 있는 가운데, 사람에 따라서는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런 이들은 “심의는 어떻게 하고 있는 거야?”를 외칠 법하다. 그런데 드라마의 대사 수위 등에 대한 심의에는 현재 공통된 기준이 없다.

지상파, 케이블, 종편을 가리지 않고 방송국 심의실에서 ‘15세 관람가’, ‘19세 관람가’ 등의 기준에 맞춰 자체적으로 심의를 하고 있다. 때문에 같은 등급이라도 어떤 방송은 엄격하고, 또다른 방송에서는 ‘심하다’ 싶은 대사가 등장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방통심의위에서는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방송에 대해 사후 시정 권고 등을 내리고 있지만, 심의 단계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 

 

♠더 현실적인 드라마 만드는 ‘감초’ vs 그래도 제한해야 할 ‘독’ 

사실 ‘욕설 대사’ 문제에 정답은 없다. 욕설은 끔찍하게 그려질 수도 있고, 정겹거나 코믹한 요소가 될 수도 있다. 반면 정겹게 그리려는 의도였는데도 불편하고 유해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방송을 보는 개인마다 판단 기준이 다르다. 다만 아직 방송을 보는 데도 제한이 필요한 어린이나 청소년들도 불시에 무방비로 접할 수 있는 매체가 TV라는 점이 ‘욕설 대사’를 감초가 아닌 ‘독’으로 만드는 주된 이유로 보인다. 

이들은 방송의 영향을 받아 무작정 등장인물을 모방하거나 잘못된 가치관을 갖기 쉬운데, ‘15금’, ‘19금’ 타이틀을 붙이고 내보내는 것만으로 혹시 모를 유해성에 대해 완벽히 책임을 졌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욕설 역시 적절히 쓰였을 때는 등장인물에 현실감을 부여하고 작품에 더 몰입하게 해 주는 ‘감초’가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쨌든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분위기 속에 ‘감초’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너무 많이 쓰면 ‘독’이 된다는 진리를 모두가 기억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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