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것만 쫓아가는 배우들이 있다. 늘 해오던 캐릭터나 장르를 선택하는 게 ‘안전’하기 때문. 특히나 대중적인 TV와 영화라는 매체에서는 그런 성향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킹’, ‘~퀸’이라는 수식은 때로 배우에게 족쇄가 되지 않을까. 또래 배우들 중 이렇게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고성희는 매번 변신을 시도해왔다.
 

‘미스코리아’로 데뷔해 퓨전사극 ‘야경꾼일지’, 액션물인 ‘스파이’, 감성액션을 표방한 ‘아름다운 나의 신부’, 판타지 멜로 ‘당신이 잠든 사이에’까지. 겹치는 캐릭터가 없다. 그리고 2018년 고성희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tvN ‘마더’에서 모성과 개인적인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엄마 자영을 보여주더니 연이어 KBS 2TV ‘슈츠(Suits)’에서 이성적인 커리어우먼 김지나로 열연을 펼쳤다.

‘슈츠’는 끝내 시청률 10%의 문턱을 넘어서며 종영을 맞이했다. 화제성에 비해 숫자로 보이는 지표는 다소 아쉬움이 남을 법 했다. 고성희는 “촬영하면서도 시청률이 조금 아쉬웠어요. 그런데 ‘마지막회는 10%를 돌파할 거 같다’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방영 이튿날 일어나자마자 시청률을 확인했는데 10%를 넘겼더라고요”라고 미소 지었다.

고성희는 여전히 종영이 실감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도 그럴 것이 ‘마더’가 끝나자마자 ‘슈츠’에 투입돼 지난 몇달간 ‘열일’을 했다. 그는 “뭔가 끝나지 않은 거 같은 느낌이에요. 정말 역대급으로 실감이 안나는 작품인 거 같아요. 진아의 엔딩이 열린 결말이라 그런 건지, 이상하게 아직 현재진행형같은 느낌이에요. 시즌2를 기대하고 있어요”라고 털어놨다.
 

원작인 동명의 미국 USA Network 드라마가 있기에 부담감도 적지 않았을 터. 특히 고성희가 연기한 김지나는 원작에서 ‘레이첼 제인’이라는 캐릭터로 원작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얼마 전 해리 왕자와 결혼한 메건 마클이 지적이면서도 섹시하고 사랑스러운 캐릭터을 완벽하게 그려냈었다. 하지만 고성희는 이에 발목을 잡히지 않았다.

“처음에는 신경이 안 쓰였다면 거짓말일 거 같아요. 그 분이 연기를 너무 잘 하셨고,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들었거든요. 많은 분들이 레이첼에 대한 애정이 높다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대본을 읽고 레이첼을 머리에서 지웠어요. 레이첼은 굉장히 세련되고, 고급스럽고,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있잖아요. 진아는 톡 쏘고 통통 튀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김지나는 고성희가 지금까지 연기한 배역들 중 가장 배우 본인의 개인적인 성향과 비슷하다고 한다. 그러나 바로 앞서 촬영된 ‘마더’ 속 자영 캐릭터의 무게감이 상당했기에 180도 다른 작품을 소화하는게 힘에 붙였을 수도 있다. 반면 고성희는 “‘슈츠’ 때는 감독님이 오히려 대본을 많이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마더’에 모든 걸 다 쏟아내고 놀러 오듯이 ‘슈츠’ 현장에 와 줬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감독님 생각에는 고성희가 김진아니까 뭔가 하려고 콘셉트를 잡거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요. 그래서 ‘마더’에서 더 불태우려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지나의 분량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욕심보다는, 극 안에서 입체적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슈츠’가 법률용어 대사가 정말 많았거든요. 미국에서 가져온 서사고, 소재 역시 법률이기 때문에 대본을 읽으면서 ‘어렵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진아가 숨통을 트여주는 역할이었으면 했어요. 제가 나오는 신이 재미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어떻게 표현해야 사람들이 웃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진아를 기다리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고성희의 고민은 곧 성과로 이어졌다. 김지나는 고성희 아니면 연기할 사람이 없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캐릭터가 사랑 받으며 고성희의 오피스룩도 화제가 됐다. 몸매가 다 드러나는 타이트한 의상을 주로 소화했기 때문에 촬영 중에도 신경이 쓰였을 것 같다고 하자 그녀는 “생각보다 신축성이 다 좋은 의상들이었어요. 하이웨스트를 많이 입고, 목이 짧으니까 셔츠를 오픈 했어요. 제 단점을 굉장히 많이 커버 해주는 옷이었어요”라고 귀띔했다.
 

(사진=몬스터유니온 엔터미디어픽처스)

러브라인을 그린 박형식 이야기를 뺄 수 없었다. 케미가 어땠냐는 말에 “(박)형식씨가 워낙 사랑스럽고, 귀여운 배우들이랑 작품을 많이해서 사실 걱정을 했었어요”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촬영에 들어가니 이런 고민은 말끔히 해소됐다. 그는 “애드리브를 위트 있게 잘 받아줘서 대사를 핑퐁처럼 주고 받았어요. 형식씨랑 저랑 개그욕심이 많아서 감독님이 자제 시키느라 힘들어 하셨죠”라고 전했다.

박형식의 ‘에너제틱’한 모습을 가리켜 고성희는 “다른 사람한테 힘을 주는 배우인 거 같아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일명 ‘토끼커플’의 러브라인도 예뻤지만, 로맨스로만 다루어진 게 아쉬울 수도 있었다. 법정서사라면 으레 멋진 장면을 기대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고성희는 “알고 선택한 작품이었어요. 배역이나 집중도가 나눠져 있는 작품이 아니었다면 ‘마더’가 끝나자마자 들어가기 힘들었을 거 같아요. 보시는 분들게 재미를 드리는 동시에 제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좋은 타이밍의, 좋은 작품이었던 거 같아요”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②에 이어집니다.

사진=사람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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