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신창용(24)이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폐막한 '2018 지나 박하우어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7월과 8월 국내 연주회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뉴욕에서 날아온 그를 29일 오후 강남 서래마을 카페에서 만났다.

 

 

그리스 출신 피아니스트 지나 박하우어의 이름을 따서 1976년부터 개최해온 이 콩쿠르는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클리블랜드 국제 콩쿠르와 함께 미국 3대 피아노 콩쿠르로 꼽힌다.

신창용은 11세에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 이후 예원학교, 서울예고 수석입학 후 도미, 커티스 음대 장학생 졸업 및 줄리어드 음대 전액장학 입학, 석사과정 졸업 후 아티스트 디플로마 입학 예정이다. 일찍이 이화경향 콩쿠르, 음연 콩쿠르, 국민일보 한세대 콩쿠르, 수리음악콩쿠르, 삼익콩쿠르, CBS콩쿠르 등에서 입상하며 클래식계의 주목을 받아왔으며 2017년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우승, 국내 라이징 스타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2010년 미국 이스트만 영 피아노 국제 콩쿠르 3위와 특별상을 시작으로 2016년 힐튼헤드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 센다이 국제 콩쿠르 5위, 프랑스 그랑프리 아니마토 국제 피아노 콩쿠르 2위 등 국제 콩쿠르에서 꾸준히 입상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고 말문을 연 신창용은 부담과 스트레스 가득했던 이전 콩쿠르와 다른 마음가짐이 좋은 성적을 이룬 원동력인 것 같다고 소개했다.

 

 

“뉴욕에서 콩쿠를 준비하던 당시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생겨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질 못했어요. 참가하지 말까도 고민했고요. 하지만 옛날과 다르게 결과에 대해 많이 생각하질 않았죠. 대신 무대를 즐기자,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내 음악을 들려주고 오자는 마음으로 참가를 했어요. 마음을 비우니 성과가 따라오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콩쿠르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매 라운드 다양한 음악적 색깔을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임했다. 38명 참가자에게 1~2차 연주 기회를 준 뒤 12명이 세미파이널에 진출해 1시간 동안 리사이틀을 하는 형식이었다. 여기서 파이널리스트 3명을 선발했다. 신창용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8번, 쇼팽 폴로네에즈 판타지 61번,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소나타 7번 등 시대별로 한곡씩 편재해 지루하지 않도록 프로그램 짰다. 파이널에서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17번과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소화했고 심사위원단은 “다른 파이널리스트보다 소리 전달력이 뛰어났고 성숙한 연주를 했다”고 우승 이유를 밝혔다.

“제가 이번 콩쿠르 리스트 중 제일 좋아하는 곡인 모차르트 협주곡은 G 메이저이고 프로코피예프 협주곡은 G 마이너예요. 같은 키 안에서 메이저와 마이너라는 대조적인 색채를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조성진과는 예원학교 동기사이다. 학창시절 라이벌로 불리곤 했다. 그의 우승은 기쁜 소식이자 자극제가 됐다. 아직 세계 3대 콩쿠르에 도전해보지 않아서 이후 콩쿠르 노크는 이어질 예정이다. 그가 가장 욕심을 내는 무대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다. 특정 작곡가의 곡을 연주해야 하는 쇼팽이나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달리 작곡가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2014년부터 시니어 콩쿠르에 도전해오고 있는데 나갈 때마다 배우는 게 조금씩 달라요. 잘 몰랐을 때는 내 생각만 했는데 점점 관객, 심사위원들과 소통하고 설득력 있게 연주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요. 내 음악을 공유하려는 생각이 더 많아진 게 가장 달라진 점이죠.”

미국 유학을 통해 얻은 깨달음도 큰 역할을 했다. 담당 교수들은 그에게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연주할 때 너 자신을 오픈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내 음악에 대한 신념, 확신을 가지고 그걸 표현하라는 의미죠. 학생 입장에선 ‘이게 맞는 건가?’ 고민을 하게 마련인데 표현하는 거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주문이었고요. 음악이라는 게 사실은 정답이 없는 거니까요.”

한여름의 문을 여는 7월1일 ‘하루키, 애니메이션 거장을 만나다’(예술의전당 콘서트홀)와 26일 ‘4인의 피아니스트 with KBS교향악단’(롯데콘서트홀) 공연을 앞두고 있다. 1일 무대에서는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들려준다. 26일에는 뿔랑 ‘2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과 모차르트 ‘3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7번’, 바흐 ‘4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연주한다. 처음 시도해보는 특별한 편성의 곡들이라 기대가 크다.

 

 

7월 중순 박하우어 콩쿠르 특전으로 이탈리아 바리에서 열리는 피아노 페스티벌에 참가해 콩쿠르 레퍼토리 위주의 리사이틀을 마련한다. 올 연말에는 자신의 장기인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 라흐마니노프 곡 위주의 무대를 계획하고 있다.

“평소엔 밝고 장난도 잘 치고 그러는데 음악에 몰입할 때는 완전히 반대가 되더라고요. 차갑거나 외로운 느낌? 그래서 비통한 음악을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듯해요.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래지고요. 그래서 러시아 작곡가들 음악에 끌리나 봐요.”

뉴욕 업타운에서의 ‘나 홀로 생활’ 2년차인 신창용은 공연과 연습이 없을 때 집에서 음악을 틀어놓은 채 쉬거나 음식을 테이크아웃 한 뒤 센트럴파크에 가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유로운 시간을 허락한다. 뉴욕의 맛집이나 스팟들을 구석구석 찾아다니기도 한다. 음악은 클래식 외에 팝송과 발라드를 좋아해 윤종신, 에드 시런의 곡을 즐겨 듣는다.

“음악은 절대 혼자 심취해서 하는 게 아니라고 여겨요. 관객 앞에서 연주하는 거니까 소통하는 게 가장 중요하죠. 연주가 끝났을 때 ‘너무 잘한다’는 느낌보다는 ‘또 쟤 연주를 듣고 싶네’ 하는 음악가로 기억되고 싶어요. 내 음악을 통해서 듣는 분들이 얻는 게 있다거나 치유가 된다면 보람차지 않을까요. 여운이 길게 남는 음악가가 되고 싶어요.”

사진= 스톰프뮤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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