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계절 여름이 도래했다. 한국 공포 장르는 최근 몇 해 간의 부진했었지만, 지난 3월 ‘곤지암’을 시작으로 다시 한 번 비상을 예고한 바 있다. 이번엔 ‘속닥속닥’(감독 최상훈)이다. 다소 투박하지만 올 여름 국내영화계의 유일한 공포영화로 관객들의 호응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 ‘속닥속닥’은 수능을 끝낸 6명의 고등학생들이 여행을 떠나던 중 섬뜩한 소문이 있는 놀이공원에 들어서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귀곡성’이라는 귀신의 집 안에서 죽음의 속삭임과 함께 친구들이 한 명씩 사라지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시작한다.

 

‣ 어른 문턱에 선 고3, 현실 찌르는 ‘학원공포’

아직도 많은 영화팬들은 ‘여고괴담’(1998)을 기억한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효한 한국 고등학생들의 고민과 스트레스를 소재로 삼아 ‘학원공포’라는 장르의 틀을 정립한 작품이라 여겨진다. ‘속닥속닥’도 ‘성적’이라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고등학생들의 면면을 바라보며 ‘여고괴담’이 구축한 장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영화는 초반 시퀀스에서 요즘 고등학생들의 다양한 면면을 보여준다. 수능을 망친 전교1등 은하(소주연)에게선 성적 스트레스를, 그런 은하를 짝사랑하는 민우(김민규)에게선 풋풋함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동일(김태민)과 1인 방송으로 대박을 꿈꾸는 우성(김영)에게선 현실에 짓눌린 청소년들의 현실을 느낄 수 있다. 현실감 넘치는 캐릭터들의 모습은 관객들의 공감을 찌르면서 몰입을 이끈다.

각각의 스트레스와 고뇌를 지닌 이들이 일탈을 꿈꾸며 떠난 여행 또한 순탄치만은 않다. 네비게이션이 고장 나면서 길을 잃고, 우연히 발견한 놀이공원은 20년 전 IMF로 파산하며 미쳐버린 사업가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괴상한 소문까지 나돈다. 어쩌면 이러한 스토리는 학교를 벗어난 학생들이 낯선 어른의 문턱에서 겪을 법한, 사회를 향한 막연한 공포를 은유하는지도 모른다.

 

‣ 연속된 클리셰, 아쉬운 호러 시퀀스

‘속닥속닥’의 극 초반부 몰입감 자체는 합격점이지만, 중반부터 이어지는 본격적인 공포 장면들은 다소 아쉽다. 네비게이션의 고장으로 우연히 소문의 놀이공원에 들어서는 것부터 “누가 마음대로 여기 들어오래?”라고 일갈하는 의문스런 할머니의 등장까지 공포영화 마니아라면 수없이 봤던 익숙한 장면이 이어진다.

또한 놀이공원 내부에서 ‘대박’을 위해 1인 방송을 켜는 우성의 모습은 앞서 ‘곤지암’과 유사하다. 물론 이 익숙함이라는 점은 연출을 어떻게 하느냐로 공포심을 극대화 시킬 수 있지만, 다소 투박한 카메라 워크와 사운드 활용이 이어져 호러 마니아들의 기대치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는 모양새다.

다만 귀신의 집 내부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귀신들의 외형은 충분히 무섭다. 특히 마네킹이, 친구들이 갑자기 귀신으로 변하는 순간엔 뒷목에 소름이 끼친다. 이 비주얼적 강점을 활용해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꽤나 자주 관객들을 놀라게 만드는 데, 압도적인 공포심보단 놀람에 그치는 게 아쉽다. 러닝타임 1시간31분. 15세 관람가. 1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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