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꾼이자 교육자로 삶과 예술을 통찰하며 40여 년의 시간을 켜켜이 누벼온 현대무용가 전미숙(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이 ‘결혼’에 대해 날선 질문을 던진다. 결혼을 포기한 청년세대 증가, 1인가구와 비혼 풍토가 확산하는 현 시대에 그 의미를 곱씹게 하는 무대다.

 

 

◆ 6년 만의 재연...결혼의 의미, 관객 및 스트라빈스키에 질문

그가 안무한 ‘톡 투 이고르: 결혼~그에게 말하다’(7월14~15일·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는 2012년 국립현대무용단 국내안무가 초청공연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음악세계를 펼치며 새로운 예술의 미래를 제시했던 20세기 러시아 현대음악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의 ‘결혼’(1923)을 무대화했다.

이번 작품에서 그는 가족구성을 통한 번식과 혈통의 승계를 위해 사회적 통과의례로 받아들여진 결혼이 현대 사회에서 갖는 의미, 결혼 관계 속에 내재된 혼돈과 광기, 결혼의 시대정서와 진정성에 대한 고민을 관객 그리고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 나눈다.

“생애의 몇 가지 큰 관문이 있는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결혼이잖아요. 하지만 오늘 날 결혼 형태는 유지하지만 결혼을 통한 유대와 결속은 잃어버린 수많은 관계들, 사랑보다 필요에 따라 기능적으로 작동하는 모습이 팽배한 게 사실이고요. 결혼을 둘러싼 의미를 관객과 공감할 수 있게 담아내고 싶었어요. 안무가라면 누구나 도전하고 싶어하는 스트라빈스키 음악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해낼 수 있을까란 호기심도 작동했고요.”

초연 러닝타임이 38분이었다면 이번엔 1시간30분가량으로 대거 늘었다. 미진하게 끝났던 부분들을 수정했고, 절반 이상 바뀐 무용수들의 내밀한 이야기와 무브먼트가 더해지면서 깊이감이 달라질 전망이다. 공연에는 스타 현대무용수 겸 안무가 차진엽, 김영진, 이용우, 김성훈, 임종경을 비롯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 실력파 댄서 정지윤, 김형민, 정태민, 배호섭, 신호영이 출연한다. 제자들과 꾸미는 무대다.

 

'톨 투 이고르' 무대 장면(왼쪽)

“20대 후반부터 40대 무용수들로 구성됐어요. 젠더와 제너레이션이 다르다보니 본인들의 작성한 텍스트가 다 틀려요. 캐릭터의 존재감이 다 다르고요.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나온 캐릭터들도 많아서 고마운 한편 이게 작품의 주제 때문인 건지, 대단한 무용수들이 작업에 임하는 태도가 유난히 틀린 건지 궁금증이 생겨나기도 했어요.”

음악 프레임에 춤을 적용시켜왔던 기존의 안무 매커니즘에서 탈피한 점 역시 두드러진다. 불협화음과 불규칙한 리듬구조로 유명한 스트라빈스키 음악과 함께하는 춤은 독자적인 리듬과 흐름을 확보하며 작품을 관통한다.

“바츨라프 니진스키와 지리 킬리안이 스트라빈스키 음악을 사용해 안무한 작품을 봤는데 그 어렵고 복잡한 박자를 따라가면서 디테일하게 리듬감을 살려 무브먼트를 해내더라고요. 듣고만 있어도 피곤한 음악이지만 그런 난해함이 의외의 상황을 조화롭게 만들어내는 걸 원했어요. 리듬에 순종하고 팔로잉하는 면을 보였고, 어떤 장면에선 들릴 듯 말 듯 배경음악으로만 사용했고, 어떤 대목에선 우스꽝스럽게 사용하기도 했죠. 적절하게 퍼즐을 만들면서 무용수의 무브먼트, 대사, 상황을 잘 흡수시키려고 노력했어요. 음악의 쓰임이 조화롭게 이뤄지도록.”

공연 포스터에는 삭발한 남성 무용수가 드레스를 입은 모습이 담겨 눈길을 붙든다. 이에 대해 전 교수는 “남성과 여성이 만나 이루는 결혼의 제도나 룰, 고정관념이 많이 바뀌어가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 '아모레 미오' 춤인생 터닝포인트..."무용은 운명이 허락한 것"

이화여대와 대학원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한 뒤 영국 런던 컨템포러리 댄스스쿨에서 수학한 전미숙은 국내 '현대무용계 대모' 육완순의 제자다. 1981년부터 98년까지 현대무용단 탐 상임안무자를 역임했고, 98년부터 한예종 무용원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전미숙무용단을 이끌면서 LDP무용단 책임고문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의 작업은 결혼, 인사, 관계 등 일상의 소재를 통해 인간의 본성과 삶의 양면성을 성찰하는 점이 두드러진다. 그 위에 주제의식과 긴밀한 관계를 이루는 풍부한 움직임, 섬세하게 조율된 음악적 해석과 사용으로 관객과 공명을 이룬다. 한 평론가는 “현대인의 삶을 독특한 관점으로 묘사하는 대표적인 컨템포러리 아티스트”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평가가 ‘쿨’하다 못해 ‘콜드’하다. 그는 “젊었을 때 평론가들이 나를 눈여겨봤던 건 예술가로서의 전형적인 외모나 신체조건, 성향이 아님에도 작품은 굉장히 반전 있고 스펙터클해서였다”며 “지금 생각하면 그게 전술 같은 거였나 싶어서 부끄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 역시 긴 예술의 길을 걸어오면서 터닝 포인트를 경험했다. 2010년 ‘아모레 아모레 미오’를 작업하면서였다. 주제는 흔해 빠진 사랑 이야기였다. 고도의 춤 테크닉을 구사할 필요도 없었다. 그럼에도 관객들에게 가장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이야기, 무용수들이 프로페셔널하지 않으면 나오지 못할 깊이감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남녀의 사랑뿐만이 아니라 잊혀져간 사랑에 대한 기억들을 선사하고 싶었던 마음은 열렬한 호응으로 보상 받았다.

 

 

“무엇이 나다운 것인가를 계속 고민해오다 ‘아모레 아모레 미오’를 만들면서부터는 컨템포러리 아트라는 게 결국은 작가나 안무가가 던져주는 게 아니라 제시하고 펼쳐놓는 거라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관객이 그것에 대한 생각을 다양하게 할 수 있는 여지를 줄 수 있는 게 중요한 거죠. 생각이 바뀌니 작업방식도 달라졌어요. 젊었을 땐 주고자 하는 힘이 컸다면 지금은 공유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게 된 셈이죠.”

그러면서 작품을 대하는 여유가 생겼다. 젊은 창작자들은 사회고발, 비판적 시각, 메시지에 대한 의무감에 천착하고 장면 장면에 의미를 담아내거나 반전을 기하는 등 힘을 쏟아내려 애를 많이 쓴다. 그런 시절을 건너온 전미숙은 이제 지나온 시간에 대한 흐름이나 깊이를 펼쳐내고, 관객이 그 길을 걸으면서 추억에 젖으며 사유하기를 원한다. 나이에서 오는 변화상이자 힘이 아닐까.

인터뷰 끝자락은 절절한 자기 고백 그리고 춤에 대한 무한 애정으로 수놓아졌다.

“2001년 ‘아듀 마이 러브’를 끝으로 무용수로서 결별을 고했는데 약속을 깨고 지금까지도 간혹 무용수로 무대에 올라요. 현대무용에서 고도의 테크닉은 1순위가 아니에요. 표현의 도구인 몸의 움직임을 통해 철학을, 삶의 깊이를 엿볼 수 있어 내 솔로작품에 가장 적절한 무용수가 나라고 여기게 된 거죠. 춤은 운명이 허락한 것, 운명적으로 내게 주어진 것이에요. 내가 스스로 설계하지 못할 정도의 것이 운명이라면 '잘 수행해야 한다'는 마음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게 성실하게 무용작업을 해왔던 힘인 거 같아요.”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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