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아티스트 강예원이 백희와 영애의 가면을 쓰고 브라운관, 스크린을 또각또각 걸어오고 있다.

지난달 14일 종영한 KBS2 4부작 드라마 ‘백희가 돌아왔다’에선 신분세탁 후 18년 만에 섬월도로 돌아온 밝고 씩씩한 백희 역을 맡아 시청률 10%를 견인했다. 이어 13일 개봉하는 영화 ‘트릭’(감독 이창열)에서 폐암말기인 남편 도준(김태훈)의 병간호를 하다가 욕망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는 영애로 색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 브라운·스크린 종횡무진 활약

“‘백희’의 경우 너무 빨리 촬영에 들어가야 했고, 비진도와 통영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너무 좋아해주셔서 얼떨덜하다. 주로 내 자극적인 작품들만 접하셨던 대중이 착한 드라마에, 이렇게까지 감동을 얻으실 줄 몰랐다. 시즌2가 제작된다면 다시 출연하고 싶다.”

‘트릭’은 시청률에 목을 매는 방송가의 어두운 이면, 인간의 욕망을 다룬 작품이다. 영화뿐만 아니라 방송사 예능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해온 강예원은 소재의 독특함에 매료됐다.

“우리 직업은 관객수와 시청률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트릭’은 방송 다큐멘터리 조작에 포커싱을 맞췄다. 개인적으로 다큐를 매우 좋아하는데 시청자의 눈물과 웃음을 빼기 위한 조작이 개입됐다는 걸 알게 되면 엄청난 배신감을 느낄 것 같다. 이런 소재가 재미나게 다가왔음. 캐릭터상으로는 극 안에 또 다른 앵글이 있는 점, 보통 사람의 삶을 보여주는 연기가 매력적이었다.”

무명 연극배우 출신인 영애는 전업주부로 지내다 남편의 시한부 인생 선고 이후 헌신적인 병구완을 한다. 치료비를 충당하기 위해 남편의 투병생활 소재 다큐멘터리 방송에 출연하게 되고 점점 인기와 대중을 의식하며 변해간다.

“한 번도 카메라 앞에 서보지 않았던 여자가 카메라 앞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사실적으로 연기해내고 싶었다. 연기하면서 재미도 느꼈고. 집안 청소하는 장면에서 카메라를 언뜻언뜻 의식하는 눈빛을 짓는 등 잘 보이지 않는 장면에서 디테일한 연기를 하는 나만의 희열이 컸다. 배우로서 훨씬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캐스팅 전 MBC 휴먼 다큐멘터리 ‘사랑’에서 남편과 아내의 암투병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뒤 아는 방송작가에게 “이런 내용을 영화를 만들 순 없을까”란 소망을 피력한 바 있다. 그 무렵 출연제의가 들어온 작품이 공교롭게도 ‘트릭’이다.

“많이 슬퍼하고 울었던 사연이었는데...운명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순애보 성향이 강한 영애를 연기하기 위해 나의 통통 튀는 느낌을 빼려 노력했다. 기존 말투도 머뭇거리거나 자신 없어하는 말투로 바꿨다. 과도한 변신은 영화에 해를 끼칠 거 같아 화장이나 옷도 수수하게 연출했다. 이 영화를 보고 관객분들이 욕심을 성찰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욕심이 과하면 모든 걸 잃을 수 있다. 남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

■ 오는 12월1일 개인전...유화는 내 소울

강예원은 화가를 겸업하는 연예인 가운데 한명이다. 대학시절 성악을 전공했음에도 5~6년 전부터 그림에 천착하고 있다. 개인전도 몇 차례 개최한 바 있다. 오는 12월1일 신작들로만 꾸민 개인전을 위해 요즘도 틈틈이 작업실에서 유화 그리기와 촛대 만들기에 열심이다.

“나의 내면이 어두운 편이다. 그림은 스스로를 치유하는 방법이다. 누구한테 보여주거나 판매하려고가 아니라 나를 리프레시하려고 그린다. 난 그림을 못 그린다. 하지만 내 작품엔 내 영혼과 감정이 솔직하게 담겨 있다. 색채가 내 소울이다. 나중에 내 감정이 인정 받는다면 내 그림도 인정받지 않을까?”

뉴욕의 갤러리에서 달리 그림을 접한 뒤 색감만 보고 그림 그리기 욕구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빨리 마르고 냄새도 나지 않는 아크릴보다 지독히도 오랫동안 작업해야 하는 캔버스에 유화를 선택했다. 아크릴의 차가움이 익숙하지 않아서였다.

“캐릭터 안에 들어가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 촬영 때 공간에 내 그림을 장치하면 인물에 더 깊이 들어가게 되더라. ‘트릭’에서도 화장실 벽에 작은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연기의 결이 달라진다. 지난달 방한한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 존원이 작업실도 방문해줬는데 덕담을 많이 해줬다. 벽에 그림도 그려줬고, 거울에 나와 콜라보까지 했다. 기회가 된다면 그래피티에 도전해보고 싶다. 가끔 건물 외벽에 그림 그리는 걸 상상하곤 한다.”

스케줄이 없을 때 그림만 그리다보니 연애도, 그 좋아하는 여행도 못하고 있다. ‘트릭’ 홍보활동이 끝나면 친구가 거주하는 먼 해외로 혼여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배우로서의 소망을 질문했다. “아주 슬픈 멜로”란 대답을 돌려보냈다. 사실적이면서도 슬픈 사랑이야기를 스크린에 그려보고 싶단다. 우울한 것만 하면 힘드니까 중간중간 재미난 연기도 계속 하고 싶다.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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