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에 이어서...

길을 지나다니며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길 때까지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기약없이 보낸 무명시절 동안 고준 역시 연기를 포기하고 싶다고 마음 먹은 적이 있었다. 실제 필모를 살펴보면 오랜 기간의 공백이 나타났다.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을 때까지 많은 고뇌가 있었던 것이 느껴졌다. 처음 연기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역시 금전적인 영향도 없지 않았다.
 

“20대 후반에 배우를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념일들이 있잖아요.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챙길 수 없는 제자신이 너무 가여워서 그만뒀어요. 가족들 반대가 심하지는 않았는데 친형이 ‘이제 그만해야 되지 않겠냐, 가족에 보탬이 되라’고 말했어요. 나중에 형을 다시 설득했죠”

그러나 몸이 연기를 떠나 있다고 마음까지 접어지는 건 아니었다. 고준은 “(연기를 포기하고) 그렇게 사는 게 사는 거 같지 않았어요. ‘연기를 하면서 살아야 될 운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도전했죠. 대신에 ‘목숨걸고 해보자’고 마음먹고 재진입을 하게 됐어요”라고 털어놨다.

이렇게 목숨걸고 다시 시작한 연기는 결국 지난해 겨울부터 결실을 맺었다. 가족들을 ‘변산’ 시사회에 초대했다는 말에 반응을 물으니 “좋고 재미있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연기가 좋아졌다고 하셨어요. 저희 가족들이 팩트폭행을 잘 하는 편이라 원래 칭찬을 잘 안해요. 보통 제가 나온 작품 봐도 뭐가 이상했는지 먼저 말하는데 이번에는 자연스러운 연기가 좋다고 해주셨어요”라고 말했다.
 

올해는 KBS 2TV 스페셜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 최강희와 함께 주연을 맡기도 했다. 드라마는 이미 촬영이 끝나고 방송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 하지만 고준은 ‘성공’이라는 단어를 한사코 부정했다.

“제가 길을 다닌다고 트래픽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송강호, 황정민 선배님처럼 연기를 잘하는 것도 아니라서 ‘잘 됐다’라는 표현은 이른 거 같아요. 뭔가 아직 못 이룬 거 같은 느낌도 많고, 가야 할 길도 먼 거 같아요. 인터뷰라는 게 있구나 알기 시작한 것도 얼마 안 됐어요. ‘중년의 신인’ 그 말이 맞는 표현인 거 같아요”

배우 개인적으로 분명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을 터. 고준은 “상처가 많은 사람들을 대변해주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실상 배우들이 가장 꿈꾼다는 로맨스도 아니였고, 그렇다고 강한 임팩트로 스타성을 부여할만한 배역도 아니어서 다소 의외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픔이 있는 사람들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신체적인 장애, 그리고 심리적인 질환의 공통분모가 마음이 아픈 거잖아요. 그런 분들을 대변 해드리고 싶어요. 그게 제가 배우로서 느끼는 소명같은 거에요. 독립영화에서 그런 역할을 많이 하기도 했었고요”

혹 이유가 있었을까. 그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에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겼던 영화 ‘나의 왼발’을 언급했다. 서울예대 영화과를 졸업한 그는 “대학 입시 실기시험에 다니엘 데이 루이스 ‘나의 왼발’을 모티브로 연기를 했어요. 저한테 꿈을 줬던 첫 연기였거든요. 옛날에 ‘미아 찾기 방송’ 구성을 따와서 연기를 했어요”라고 설명했다.

‘중년 신인’ 고준이 그리는 청사진은 무엇일까. 고준은 “유명해지는 걸 안 바란다고 할 수 없지만, 유명세보다는 존중받길 바라는 부분이 있는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배우가 바라는 존중은 아마도 연기에 대한 성취, 그리고 인정이 아닐까. 최강희와 함께하는 이번 드라마가 새드 멜로라 조금은 우울한 시간을 지나고 있다는 그의 말에서 또 한 번의 변신에 기대를 걸게 됐다.

사진=싱글리스트DB, 라운드테이블(지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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