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정진(38)의 손과 발놀림이 리드미컬하다. 방송사 다큐멘터리 조작 스캔들을 다룬 영화 ‘트릭’ 개봉(13일)을 앞두고 만난 잘 생긴 빅 토커의 입에서 거침없는 직설과 은유, 유머가 펑펑 터졌다.

 

 

■ “석진은 대한민국의 씁쓸한 자화상”

석진은 ‘쓰레기 만두파동’ 오보로 업체 사장을 자살로 몰고 갔으나 일말의 가책조차 느끼질 않는다. 보도국에서 퇴출된 이후 한직을 전전하다 낙하산 사장의 부름을 받고 교양국 PD로 복귀, 재기를 노린다. 폐암말기 환자 부부를 주인공으로 한 ‘병상일기’ 제작을 맡게 되면서부터 시청률을 담보로 한 욕망 게이지를 급상승시킨다.

“석진은 시청률을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못되게 굴면서 성과를 달성한다. 사회는 그런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고속 승진시킨다.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난 석진처럼 살진 않을 거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 비난을 하면서도 그와 같은 인물이 되고 싶어들 한다. 석진은 씁쓸한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누구나 욕망은 있겠으나 이정진은 성격상 그렇게까지는 못한다고 자평한다. 그랬기에 “최대한 이정진을 배제시키자”가 목표였다. 자신이 개입되면 상대 배우인 김태훈 강예원이 친절하게 대할 거 같단 판단 때문이었다. 연기하는 순간엔 악인이 아니라 목표를 향해 저돌적으로 밀고 나가는 자신감 넘치는 인물로 여기고 임했다.

 

 

■ 젠틀가이에서 욕망의 화신으로

그간 드라마와 영화에서 부드러운 젠틀맨 이미지를 어필했던 이정진이 냉정과 비열함의 화신으로 탈바꿈했다.

“말을 하지 않고 있으면 차가운 느낌이 난다고 한다. 실제 날 겪고 나면 사람들이 막 대한다.이번에 착하지 않게 나오지 않았나? 그 얘길 듣고 싶었다. 단순히 나쁘다는 이야기라면 실패고, 다른 수식어를 들을 수 있기를 원했다. ‘저거 어떻게 해야 하지. 아우 씨~’하는 느낌을 주면 성공이라고 여겼다.”

그런 느낌을 살려내기 위해 말투에도 신경을 썼다. 디렉팅 때 “한 번 더 가시죠? 안되나? 다시? 어우 좋았어!” 존댓말과 반말을 오가며 아이 다루듯 툭툭 긁어대는 말투였다. 한양대 연극영화과 선배인 김태훈이 존중인지 무시인지 헷갈릴 정도로 거슬렸다고 해 쾌재를 불렀다.

 

■ 또 다른 타이틀 ‘사진작가’

이정진은 4년째 사진작가로 활동 중이다. 25명의 사진작가 그룹에 속해 몇 차례 그룹전과 개인전을 열었고, 올해 가수 닉쿤과 함께 포토에세이 ‘여행, 바람을 품은 지도’를 발간했다. 최근엔 걸그룹 트와이스 멤버 쯔위 화보집을 촬영해 화제를 뿌렸다. 8월에는 부산국제사진페어에 초청받아 전시를 하고, 해외 전시일정도 잡혀 있다.

 

 

“봉사활동(사실은 내가 배우러 가는 거다) 차 케냐, 네팔, 아프리카 등 저개발 국가를 다니면서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게 뭘까’를 고민했다.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 가면 대청 마루에 가족사진이 걸려있지 않나. 그래서 이들에게 가족사진을 찍어서 걸어주자, 결정했다. 엄마에게는 아이들 사진을 찍어 주고, 아이들에게는 부모 사진을 찍어주는 식이다.”

처음엔 취미로 시작했던 사진이 이젠 제2의 직업이 됐다. 올해 인사동 그룹전에서 사진을 감수해준 구본창 작가로부터 사인을 받았는데 ‘이정진 작가에게’란 글씨를 보고는 색다른 감동이 밀려들었다.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워졌다.

“배우다보니 촬영 현장에서 사진을 찍곤 한다. 내가 눈으로 보지 못했던 배우들의 표정 눈빛을 카메라는 담아내더라. 그러면 배우들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된다. 지금 ‘배우가 찍은 배우 사진전’을 기획 중이다. 노배우들인 선생님들의 사진을 찍어서 방송사 로비에 걸고 싶다. 올해 말이나 내년쯤 열 몇분 정도 촬영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그간 상업사진 의뢰는 고사했는데 앞으로는 적극 나설 생각이다. ‘기부’에 대한 방법론이 바뀌어서다.

“이제까진 내 작품이 팔릴 경우 그 금액을 기부했는데 광고 등 기업으로부터 제안 받은 프로젝트의 경우 스태프 인건비, 스튜디오 렌탈비를 제외한 전액을 나와 기업의 이름으로 전액 기부하려 한다. 재능기부가 아닌 현금기부. 그게 더 낫지 싶다.”

 

 

■ 즐거운 후기

인터뷰 사이 짧은 휴식시간마다 카페 밖으로 나와 계단참에서 자연스레 담배를 피워댄다. 기자, 매니저, 홍보 관계자와 스스럼없이 잡담을 나누며. 주변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은 채 여기저기 잘 다니는 평소 스타일이란다.

“촬영이 없을 땐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사진 작업하러 해외로 떠나고, 운동하며 지낸다. 머리를 싸맨다고 문제가 풀리는 게 아니며, 천만 영화를 찍는 게 아니잖나. 여러 사람을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공감해야 표현의 폭이 넓어진다. 이제 100세 인생이니 앞으로 열심히 하다보면 좋은 기회가 오지 않을까 싶다. 올해는 찌질한 부잣집 아들(욱씨남정기), 성공에 눈먼 PD 등 평범한 역할이 없어서 즐겁다.”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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