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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탐구] ‘미스터 션샤인’ 김태리, 서른 잔치는 시작됐다

올해 스물아홉, 20대의 끝자락에 선 여배우가 충무로에 이어 안방극장에 자신의 시대를 알리고 있다. 김태리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콤비인 김은숙 작가와 이응복 PD의 tvN 토일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여주인공으로 안방극장에 본격 입성했다. 43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구한말 조선을 배경으로 한 24부작 시대물이다. 회당 18억원을 들인 때깔 좋은 드라마에서 김태리는 영화 데뷔작 ‘아가씨’부터 ‘1987’ ‘리틀 포레스트’에서 자기 몸에 꼭 맞는 옷처럼 소화했던, 시대를 가로지르는 주체적인 여성상을 연기한다.

지난 7일 시작한 ‘미스터 션샤인’의 고애신은 조선 최고의 명문가 영애다.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을 여의고, 할아버지 품에서 자라게 된 그는 일반 사대부 가문의 규수와 달리 조보에 관심을 두고 한성순보와 독립신문을 읽으며 조국을 위한 뜻을 가다듬는다.

‘어차피 피었다 질 꽃이면 제일 뜨거운 불꽃이고 싶다’는 마음가짐으로 나약한 글보다는 총을 배워 격변의 시기로부터 조선을 구하려는 뜻을 품는다. 이후 명포수로부터 총기 다루는 법과 사격술을 익혀 열강 틈바구니에서 무너져가는 나라를 살리려 애쓰는 강인한 정신력의 인물이다.

지난 1, 2회에서 김태리는 고유의 이미지와 지난 세월 동안 연마해온 배우로서의 능력을 몇 겹씩 꺼내놓았다. 소녀의 청순함부터 여인의 고혹적인 분위기, 자연스러움과 강단 있는 이미지를 고애신에게 덧씌웠다. 아리땁고 청순한 모습이지만 그 누구보다 당찬 데다 소신 뚜렷하고, 때로는 위엄과 기품 가득한 캐릭터 고애신은 배우 김태리와의 간극이 느껴지질 않았다.

 

 

붉은 댕기머리의 한복으로 성장한 고운 자태부터 상투를 틀고 복면을 쓴 채 머리부터 발끝까지 남장으로 변신한 의병 비주얼, 장총을 들고 사격하는 모습은 어색함이 없다.

또한 안정적인 발성과 정확한 발음은 호흡 짧고 혀 짧은 발음이 난무하는 20대 여배우들 사이에서 두드러지는 덕목이다. 대학(경희대 언론정보학부) 연극동아리 시절부터 졸업 후 대학로 극단 이루에서 연기술의 기본기를 탄탄하게 벼린 덕분이다. 영화 ‘아가씨’ 1부의 화자, ‘리틀 포레스트’의 내레이션을 맡았을 만큼 목소리 연기가 좋은 그는 ‘미스터 션샤인’에서도 대사와 독백, 내레이션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대사 전달력이 떨어진다"는 일부 비판도 존재하나 캐릭터를 잡아가는 과정에서의 옥에 티로 보인다.

이 배우는 감정이 좋고, 힘(에너지)이 좋다. 상당수 젊은 여배우들의 경우 감정은 풍부하나 힘이 부족해 아쉬움을 사곤 하는데 내공을 켜켜이 쌓은 여배우들처럼 감정에 힘까지 실어냄으로써 시청자의 가슴으로까지 화살을 날려 보낸다.

이런 장점으로 인해 이 드라마에 첫 등장하는 순간부터 영화적 깊이감, 극의 완성도를 확 높여준 이병헌과 맞대결하는 장면에서조차 밀리질 않는다. 좋은 목소리, 깊은 눈빛과 감정이 부딪히다보니 절로 시너지가 형성되고 관극의 재미가 커질 수밖에 없다. 아무런 대사 없이 눈빛만 주고받는 장면들은 두 배우의 장점을 활용할 줄 아는 똑똑한 극작이자 연출이다.

 

 

운도 따르는 듯하다. 대중적으로는 최고의 반열에 올랐으나 작품성으로 인정받지 못해왔던 김은숙 작가가 칼을 갈고 덤빈 묵직한 주제의식의 시대극(현재 이 작품을 둘러싼 논란은 차치하고라도)이라는 점, ‘아가씨’에서 일제강점기 소매치기 하녀 역을 미리 경험한 점 등이 그렇다. 무엇보다 액션, 멜로, 드라마 모두가 ‘되는’ 연기장인 이병헌을 파트너로 맞게 된 점은 베스트 오브 베스트다. 이병헌은 노비로 태어났으나 미국으로 건너가 검은 머리의 미국인으로 살게 된 미 해병대 대위 유진 초이 역을 맡아 고애신과 운명적인 인연을 엮어간다.

현재 국내 영화·방송계를 주도하는 4050 남자배우들 상당수가 연극무대에서 출발해 30대 중후반에 영화에 출연하며 전성기를 맞이한 뒤 현재 ‘연기신’ ‘국민배우’로 추앙받고 있다. 남자배우 독식 시대이자 척박한 여배우 시대에 김태리는 특이하게 20대에 연극무대를 거쳐 스크린에서 주목받은 뒤 안방극장까지 밀고 들어온 특별한 행보를 그리고 있다.

‘미스터 션샤인’이 역대 최고의 시청률을 사냥하든,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든 대세에는 지장을 주지 못할 듯 보인다. 김태리의 서른, 잔치는 시작됐다.

 

사진= 화앤담픽처스 제공

 

에디터 용원중  goolis@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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